사소한 분노가 낳는 비극적 결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1일 03시 00분


21일 개봉 ‘와일드 테일즈’

영화 ‘와일드 테일즈’는 허망한 분노에 우리가 얼마나 쉽게 빠지는지 보여준다. 무비앤아이 제공
영화 ‘와일드 테일즈’는 허망한 분노에 우리가 얼마나 쉽게 빠지는지 보여준다. 무비앤아이 제공
한적한 시골 도로. 고급 차를 몰고 가는 남자 A 앞에 고물차가 알짱거리며 길을 비켜주지 않는다. 화가 난 남자는 어렵게 고물차를 앞지르면서 운전자 B에게 욕설을 퍼붓는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다리 바로 앞에서 A의 차가 펑크가 나면서 멈추고, B가 곁을 지나게 되는데….

별 기대 없이 봤다가 마음속에 진한 무언가가 남는 작품이 있는데, ‘와일드 테일즈’가 꼭 그렇다. 모두 6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옴니버스 영화 ‘와일드 테일즈(Wild Tales)’의 키워드는 부제 ‘참을 수 없는 순간’이 암시하듯 분노다. 보통 영화 속의 분노는 이야기를 극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과장되고 증폭되기 마련인데 여기서는 일상 속에서 느끼는 현실적인 분노들을 보여준다.

영화는 도로 위 사소한 시비에서 비롯된 분노(분노의 질주 18), 국가 공권력의 어이없는 단속이 유발한 분노(합법주차 불법견인), 자신의 약점을 이용하려는 타인에 대한 분노(뺑소니의 최후), 동료의 아픔에 공감하며 느끼는 분노(원수는 식당에서),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분노(이판사판 결혼식) 등 다양한 분노의 형태를 보여준다.

사소하지만 극에 달한 분노는 복수로 끝장을 보고야 만다. 심지어 조금 전까지 꿈조차 꾸지 않았던 살인마저 불사할 정도다. 되돌아보면 툭툭 털어버리고 넘어갈 수 있고, 여러 차례 그만둘 기회가 있었는데도 불빛을 쫓는 나방처럼 맹목적으로 돌진한다.

영화 홍보자료에는 ‘통쾌 복수극’이라고 돼 있지만 이게 통쾌할까? 그보다는 분노에 휘둘리는 인간 존재의 어리석음을 절감하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연민을 갖게 된다.

아르헨티나 출신 다미안 시프론 감독이 기발하고 묵직한 작품을 만들었다. 지난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후보작. 전미비평가협회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21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가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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