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MBC 예능 프로그램 ‘일밤-복면가왕’에서 호루라기 모양 가면을 쓴 ‘상암동 호루라기’가 달콤한 미성으로 발라드 ‘인형’을 불렀다. 잠시 뒤 공개된 그의 정체는 강렬한 비트의 댄스곡을 주로 부르는 힙합 아이돌 그룹 ‘블락비’의 태일.
출연자가 복면을 쓰고 가창력을 겨루는 ‘복면가왕’이 화제다. 또 지난주 KBS가 드라마 ‘복면검사’를 시작하는 등 대중문화 코드로 ‘복면’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복면가왕’의 경우 복면 뒤에서 항상 예상 밖의 인물이 나타났다. 애절한 고음을 선보였던 1, 2대 가왕 ‘황금락카 두통썼네’의 정체는 걸그룹 ‘f(x)’의 루나였고, 폭발적인 가창력과 무대 매너를 선보인 3대 가왕 ‘딸랑딸랑 종달새’는 1990년대 ‘난 괜찮아’ 등으로 인기를 모았으나 한동안 잊혀졌던 가수 진주였다.
프로그램 시청률도 일밤의 이전 코너 ‘애니멀즈’보다 높아졌다. 24일에는 7.5%, 17일에는 9.6%(닐슨코리아 전국 기준)였다. 동시간대 강자인 KBS2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는 20%에 육박하다 최근엔 10%대 초반으로 떨어졌다. 인터넷에는 “복면가왕 보느라 ‘삼둥이’(슈퍼맨이 돌아왔다)를 못 봤어요”라는 글도 심심찮게 올라온다.
복면은 출연자의 얼굴을 감추면서 외모나 명성을 감춘 것은 물론이고 선입견도 막아줬다. 복면을 쓰지 않았다면 시청자들이 편견을 가지고 볼 수 있던 출연자에게 가창력만으로 승부를 하게 한 것. 평가단에게 ‘타고난 소리꾼’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꽃 피는 오골계’는 자신이 아이돌 그룹 ‘B1A4’의 산들이라는 것을 공개한 뒤 “아이돌이라는 이유로 나를 가뒀던 편견을 가면이 벗어나게 해줬다”고 말했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복면이 음악과 창법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고 복면의 주인공이 누구인가 궁금증을 자아내 오디션 프로그램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인간은 기존의 고정된 이미지를 통해 외부 자극을 한 번 걸러 인지하는데, 얼굴을 가리면 고정관념 없이 출연자의 진면목을 볼 수 있게 된다”라고 말했다.
프로그램의 인기는 편견 없는 세상을 바라는 대중의 열망을 반영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사회에 만연한 선입견에서 비롯된 불공정함에 대한 불만을 프로그램이 건드렸다는 것이다. 인터넷 블로그 등에는 “이 프로그램처럼 채용에서도 스펙보다 실제 능력을 위주로 점수를 매기는 ‘블라인드 전형’이 확대돼야 한다”는 등의 글이 다수 올라왔다.
김혜순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는 성 연령 출신지 출신학교 인종 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강한 편”이라며 “개인의 능력보다 학벌 스펙 배경 연줄이 더 크게 작용하는 세태에 대중이 반감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20일 첫 방영한 KBS 수목 드라마 ‘복면검사’도 평소 속물 검사지만 실제로는 복면을 쓰고 악인을 처벌하려는 하대철(주상욱) 검사가 주인공이다. 대철은 “법이 못 잡으면 내가 잡는다”라고 말하며 검사 신분으로는 모을 수 없는 증거들을 복면을 쓰고 확보한다. 곽 교수는 “성격(personality)과 가면(persona)은 어원이 같다”며 “복면은 누구나 갖고 있는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드러내는 장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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