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극비수사’는 소신(所信)에 관한 영화다. 겉으로는 형사 공길용(김윤석)과 도사 김중산(유해진)이 유괴된 아이를 찾는 수사물이지만 그 안에는 세상이 모두 아니라고 할 때도 자신들이 믿는 바를 굳건히 지켜나가는 이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 중 김중산은 자신에 대한 세상의 비난을 인내하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런 김중산을 연기하기 위해 유해진(45)은 관객의 기대를 배신해야 했다. 코믹 연기로 이름난 그지만 이번엔 웃음기를 덜어냈다.11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더하기보다 빼는 과정이었다”고 했다. “유괴 사건인데 웃기기는 어렵지 않겠어요. ‘담백한 연기’라는 평을 듣고 싶었어요. 아쉽다는 분들도 있던데 그건 다른 작품에서 채워드리면 되죠. 허허허….”
현재 생존해 있는 인물을 연기한다는 부담감도 있었다. “전화통화만 몇 번 하고 촬영 끝날 때까지 (김중산 씨를) 직접 뵙지 않았어요. 안 그러면 제가 그분 행동을 따라할 것 같더라고요. 부산 출신이신 분을 충청도 출신으로 바꿨는데, 그 역시 제 억양이 영화를 보는 데 걸림돌이 돼선 안 된다고 생각해서였어요.”
묵묵히 공 형사를 돕는 영화 속 김중산은 최근 출연했던 TV 예능프로 ‘삼시세끼-어촌편’에서 비친 유해진의 평소 모습이나 주연보다는 조연을 맡아왔던 그의 이력과도 닮아 있다. 그는 “누가 뭘 강요하면 아무것도 못 하는 성격인데 나영석 PD가 워낙 편안하게 해줬다”고 했다. ‘삼시세끼’에 나온 등산 취미는 평소 늘 고집하는 습관이기도 하다. “지방 촬영장에 도착하면 매니저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숙소와 가장 가까운 산을 조사하는 거예요. 산을 오르면서 저를 다잡고, 다음 촬영 생각도 좀 하고…. 등산은 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에요.”
그는 18일 개봉하는 ‘극비수사’ 외에도 올 여름 ‘소수의견’(25일) ‘베테랑’(7월 중)의 개봉도 앞두고 있다. 법대 출신 도사를 맡은데 이어 ‘소수의견’에서는 변호사, ‘베테랑’에서는 기업 상무를 연기했다. 양아치, 트럭운전사 등을 연기했던 예전과 사뭇 다르다. 이미지 변신을 노리는 걸까. “억지로 그렇게 하려다 오히려 깡통 차죠. 그냥 제가 나이를 먹었다는 얘기일 겁니다. 지금 나이에 제가 양아치를 하면 안 어울리잖아요.”
1999년 ‘주유소 습격사건’으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해 15년이 넘도록 그는 한 해에 두세 작품 이상 출연하며 쉼 없이 달려왔다. 지난해는 ‘해적’으로 800만 관객을 넘겼고 ‘삼시세끼’로 화제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올해로 마흔 다섯인 그에게 50대를 물었다. “모르겠어요. 요즘이 두렵기도 하거든요. 일로는 좋은 평을 얻고 있는데 실제로는 잘 살고 있는 건가 고민이 많아졌어요. 너무 예민 떨지 않았나, 그릇이 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꼭 도 닦는 사람 같은 대답이다. 조연보다는 주연을 맡고 싶은 욕심은? 더 강렬한 역할을 맡아보고 싶은 생각은? “지금도 충분해요. 그냥 이대로 갔으면 좋겠는데 그것도 욕심이겠죠. ‘달도 차면 기우나니 얼씨구절씨구 차차차’ 그런 가사 있잖아요. 어찌됐든 연기를 하면서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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