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가사’ 에 힘준 영화들, 자막으로 ‘맛’ 살리려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2일 15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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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화를 볼 때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자막이다. 특히 음악영화나 코미디영화 같은 장르영화에서 가사나 대사 속 농담을 제대로 번역하지 못하면 영화의 ‘맛’이 떨어지기 마련. 최근 자막 작업에 공을 들여 차별화를 꾀하는 영화들이 늘어나고 있다.

9일 개봉한 영화 ‘러덜리스’(12세 이상 관람가)의 자막 작업에는 가수 호란이 참여했다. ‘러덜리스’는 총기 난사 사고로 아들을 잃은 아버지 샘이 생전에 아들이 작곡한 노래 CD와 작곡노트를 발견한 뒤 뒤늦게 아들을 알아가며 상처를 치유한다는 줄거리. 그만큼 노래 가사는 중요하다.

호란은 전문 번역가가 번역한 자막을 바탕으로 영화 속 노래 가사를 가수답게 수정했다. ‘그 천사와 악마는/남몰래 친한 사이/날 가운데 끼고/밤새도록 앉아있네’(전문번역가 번역)라는 가사는 ‘천사와 악마는/사실은 한패야/날 가운데 끼고/밤새도록 앉았네’(호란 번역)로 바뀌었다. 또 ‘아끼는 신발을/신고 깨어나/벌써 해가 넘어 갔어’(전문번역가)는 ‘아끼는 신발을/신은 채로 깨어나니/해는 져서 벌써 오후’(호란)처럼 운율을 살리는 방향으로 자막이 ‘업그레이드’ 됐다.

영화의 수입·배급사인 그린나래미디어는 “영화 클라이맥스에서 주인공이 부르는 ‘마이 선(My Son)’ 후렴구에서 원래는 ‘내 아들’이라고 번역됐던 가사를 ‘내 아들아’라고만 바꿨는데도 곡 분위기가 다르게 느껴진다”며 “가수이면서 전문적인 영어 책 번역 경험이 있는 호란 씨가 가사의 맛을 살렸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개봉한 ‘도쿄 트라이브’는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배틀-랩 뮤지컬’을 표방한 영화. 일본 도쿄의 갱단들이 영역 쟁탈전을 벌인다는 줄거리로 할머니부터 어린 소년까지 대부분 배역의 대사가 랩이다. 실제로 일본에서 래퍼로 활동 중인 영다이스, KOHH 등이 배우들의 랩을 지도하고, 출연도 했다.

이 때문에 일본어 랩 가사를 한국어로도 랩처럼 느껴지도록 번역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번역을 맡은 정구웅 번역가는 “일본어 랩 가사의 내용을 반영하면서 한국어로도 라임을 느낄 수 있도록 번역했고, 가사에 맞춰 배우들이 취하는 동작까지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원문을 그대로 번역할 경우 ‘놈들에게 들리지 않도록/이곳을 선택했다/지금이야말로 단결해/우리들이 나설 차례다’라는 가사를 ‘놈들 눈에 띄지 않게/여기서 뭉친다/오늘 만은 단결해/우리가 덮친다’라고 수정해 ‘~친다’로 가사가 끝나도록 운율을 살렸다. 또 ‘패트롤, 수고하는 경찰, 감사/그자들이 관리하는 건 아냐, 도로’로 번역되는 가사를 ‘순찰하며 고생하는 경찰들의 노고/그자들이 통제하는 건 아니야 도로’로 라임을 맞춰 바꿨다.

또 자막을 한꺼번에 화면에 띄우는 대신 배우 동작과 가사에 맞췄다. 가령 ‘경찰들의 노고’ 부분의 랩 가사 자막을 경찰에게 거수경례를 하는 동작에 맞춰 내보내는 식이다.

여기에 랩의 속도에 맞춰 자막의 색깔이 바뀌고, 자막이 커졌다가 다시 작아지게 하거나 심지어 자막이 화면 바깥으로 날아가는 특수효과 식 ‘액션 자막’도 도입했다.

자막에 공을 들였다 오히려 ‘역풍’을 맞는 경우도 있다. 5월 개봉했던 영화 ‘스파이’는 코미디영화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tvN 코미디 프로 ‘SNL’의 작가진이 함께 자막 작업을 했다. 하지만 극중 여성 성기를 뜻하는 영어 욕설인 ‘썬더컨트’(thundercunt)를 ‘개창녀’라고 번역한 점, 남성은 여성에게 반말하고 여성은 남성에게 존댓말을 하는 것으로 번역한 점, 몸매와 관계없는 대사에서 주인공을 ‘뚱땡이’로 부르는 것으로 번역한 자막에 대해 누리꾼들이 “여성 중심의 코미디 영화라는 영화의 진의를 왜곡했다”고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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