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피 못잡던 연기, 시대 이해하니 저절로 내가 좋아하는 작품 택해야 후회가 없어 배우에게 중요한 건 마켓…할리우드 꿈
“지금은 덤덤해요.”
영화 ‘암살’(제작 케이퍼필름) 개봉을 하루 앞둔 21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전지현(34)은 설렘이나 부담 대신 담담하게 관객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앞서 열린 시사회를 통해 긍정적인 평가를 얻은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15년 동안 여러 영화를 경험한 데서 자연스레 갖게 된 자신감인 듯 보였다.
“20일 저녁 VIP시사회를 찾아온 지인들에게 영화에 대해 집요하게 물었다. 좋은 말도 필요하지만 냉정한 평가도 중요하다. 중반에 조금 지루했다는 사람, 하정우와 로맨스가 엉뚱했다는 반응도 있더라.”
전지현은 이제 대중이 미처 상상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자신을 이끄는 배우가 됐다. 그 시작은 2012년 영화 ‘도둑들’이다. 이어진 영화 ‘베를린’과 중국 한류의 부활을 알린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까지 전략적인 선택으로 보이지 않는데도 모두 성공했다.
“많은 분이 믿지 않겠지만(웃음), 예나 지금이나 내가 좋아하는 걸 택해왔다. 최근 몇 년 동안 나와 대중의 눈높이가 딱 맞은 건 아닐까. 앞으로 어떤 눈을 가져야 하는지 호기심도 생긴다. 그래도 내가 좋아서 할 수 있는 작품을 택하는 게 맞다. 그래야 후회가 없다.”
‘암살’에서 전지현은 1930년대를 강한 의지로 견뎌낸 항일 독립군의 삶을 펼친다. 영화에는 일제강점기를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낸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지만 신념과 의지가 가장 강한 주인공은 전지현이다. 다른 여배우를 떠올리기 어려울 만큼 적역이란 평가를 받지만 그는 “촬영 초반 잘 풀어내고 있는지 모른 채 갈피를 잡지 못했다”고 돌이켰다.
“솔직히 답이 안 나왔다. 수많은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1930년대를 겪지 않은 나로서는 그 시대 사람의 마음이 쉽게 짐작되지 않는다. 독립군? 어쩌면, 나라면 못할 것 같다. 그래서 시대를 먼저 이해해야만 했다. 시대를 알고, 인물을 받아들였다.”
전지현은 표현에 꽤 솔직한 편이다. “시나리오가 재미있고 역할도 멋진 데 욕심이 안 날 수 있겠느냐”며 ‘암살’을 선택한 배경을 설명한 그는 한편으로는 “일할 때 간혹 부끄럽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고도 했다.
“이제는 그런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조차 사치라고 여긴다. 10년 넘게 연기자로 살아왔다. 내 감정보다 주어진 일을 당연히 잘 해내야 할 때이다. 그래서 더 거침없이 하려고 한다. 이런 마음을 자신감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암살’을 통해 전지현은 ‘예쁘다’보다 ‘멋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보이시한 매력이 엿보인다’고 말을 건네니, 그는 놀란 말투로 “아직 모르셨어요?”라고 되물으며 “사실 어릴 때부터 멋있게 생겼다는 말을 더 많이 듣고 싶었다”며 웃었다.
여전히 할리우드를 향한 열망도 품고 있다.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건 마켓”이라고 말하는 표정이 단호하다.
“연기자로 좋은 모습을 보이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연기자가 어떤 시장을 갖고 있는지 중요하다고 본다. 할리우드도 꿈꾼다.”
가정이 있어 “일을 하지 않을 때 더 바쁘다”는 그는 “근심걱정이 없어야 연기에 더 집중하는 타입”이라고 설명했다. 2012년 결혼 이후 선보인 세 편의 작품이 연달아 흥행한 것을 두고 ‘결혼과 동시에 근심이 없어졌나 보다’고 말을 건넸다. “그렇게 되나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