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M밸리 록 페스티벌의 사설경호원과 장기하 사이에 벌어진 ‘과잉대응’ 논란은 록 페스티벌의 성과와는, 어쩌면, 아무런 상관없는 가십에 불과할지 모른다. 몇 년 사이 부쩍 대중적 관심권에 들어온 록 페스티벌이 조금씩 정착의 단계로 들어선 게 아니냐 혹은 지나친 상업성이 록 페스티벌의 의미를 훼손하고 있다는 평가와 지적이 나온다.
1999년 오늘, 인천 송도 시민공원의 16만5290여m2(5만평)의 너른 공간에서 트라이포트 록 페스티벌이 막을 올렸다. 한국 대중음악 사상 최대 규모이자 최초의 록 페스티벌이었다. 쟁쟁한 록 아티스트가 대거 공연에 나선 트라이포트의 ‘헤드라이너’는 전설적 록그룹 딥퍼플이었다. 또 록과 랩을 접목시킨 레이지 어게인스트 머신, 영국 테크노 음악의 대표주자 프로디지, 한국의 김종서, 김경호, 윤도현밴드, 노바소닉, 크라잉 넛, 델리스파이스 등이 참여했다. 일본의 하드코어 록밴드 매드캡슐마켓 등도 나섰다. 이 같은 라인업에 당시 하루 7만원의 ‘비싼’ 관람료에도 수많은 음악팬들이 송도로 달려갔다.
이튿날인 8월1일까지 펼쳐질 예정이었던 트라이포트 록 페스티벌은 그러나 집중호우에 결국 하루의 공연에만 만족해야 했다. 첫날 무대도 폭우로 중단되기 일쑤였다. 절정은 이날 밤 딥퍼플의 무대였다. 질퍽해진 진흙땅 위에서 1만6000여 관중은 환호했다. 딥퍼플은 ‘어메이징 그레이스’ ‘스모크 온 더 워터’ 등을 열창한 뒤 예정에도 없던 앙코르 요청에 ‘하이웨이 스타’를 선사했다. 무대 옆 800여개의 텐트가 들어찬 야영지 역시 뜨거운 밤의 열기로 가득했다.
하지만 다음날 무대는 결국 열리지 못했다. 프로디지와 레이지 어게인스트 머신의 공연은 취소됐다. 우드스톡 등 해외의 유명 록 페스티벌이 악천후 속에서 더욱 열기를 뿜어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아쉬운 대목이다.
그래도 대부분 20대들인 관중은 댄스음악이 대중가요 시장을 장악했던 시절, 탈출구 없는 외환위기의 어두운 시기에 자기만의 개성을 중시한 청춘으로, 송도의 너른 마당을 위로 삼았다. 그리고 록음악의 거칠면서도 강렬한 리듬을 타고 머리를 흔들며 젊음을 발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