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8월은 영화계에서 특별한 달이다. 13일 개봉하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의 이정현, ‘협녀, 칼의 기억’의 전도연, ‘미쓰 와이프’의 엄정화, 20일 개봉하는 ‘뷰티 인사이드’의 한효주까지 모두 여자 배우가 주연을 맡았다. 장르도 코미디, 무협, 멜로까지 제각각이다.
‘여배우 기근’이라는 표현이 상투적으로 들릴 만큼 남자 배우 중심인 한국 영화계에서 이상 현상이 일어난 셈이다. 과연 이들은 스크린에서 관객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까. 정지욱 강유정 윤성은 영화평론가와 영화 담당 기자 2명이 △둔갑술지수(연기 변신) △자체발광지수(미모) △고생 지수 △은신술지수(작품과 상대 배우와의 조화)로 나눠 배우들을 평가해봤다.
● 고생왕-‘성실한…’의 이정현
이정현은 변신과 고생 양면에서 5명 평균 각각 4.8점과 4.2점을 받으며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가 연기한 영화 속 수남은 손재주가 좋아 손으로 하는 무슨 일이든 달인 수준으로 해내는 인물이다. 손이 부르트도록 일한 끝에 달동네에 집 한 채를 마련한 그에게 재개발 소식은 인생역전의 기회. 재개발에서 제외된 옆 동네 주민들이 불공평하다며 반대 시위를 벌이자 손재주를 이용해 주민들을 하나씩 ‘처리’하기 시작한다.
이정현의 원맨쇼에 가까운 이 영화에서 그는 신문 배달, 판촉 명함 뿌리기, 주방 보조, 청소 등 각종 ‘알바’를 소화해내고, 감금과 고문 장면을 촬영할 때는 직접 대형 공업용 세탁기에 들어가 물을 맞기도 했다. 영화 말미 궁지에 몰린 그가 보여주는 신경질적이면서 애처롭고, 한편으론 천진해 보이는 표정 연기는 영화의 압권이다. 윤성은 평론가는 “상황은 심각해도 관객은 웃을 수 있도록, 부담스럽지 않게 잘 조절해냈다. 그 동안 보여줬던 것 중 최고의 연기”라고 말했다.
● 조화왕-‘협녀, 칼의 기억’의 전도연
고려 말 무신정권 시대가 배경이다. 같은 스승을 모시는 풍천(배수빈), 유백(이병헌), 월소(전도연)는 새 세상을 만들기 위해 민란을 일으킨다. 하지만 민란이 성공하기 직전 유백의 배신으로 풍천은 죽고, 풍천의 아이를 데리고 월소는 사라진다. 18년 뒤 고려 최고 권력자가 된 유백 앞에 월소의 검술을 빼닮은 소녀 홍이(김고은)가 나타난다.
영화 개봉 전부터 세간의 관심은 전도연이 맹인 검객 연기를 했다는데 쏠렸다. 그는 “운동복을 짜면 땀이 나올 정도로” 액션 기본기를 연습하고 동작을 우아하게 하기 위해 고전무용을 배우기도 했다. 하지만 노력(4.0점)과 작품과의 조화(4.1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반면 연기 변신에 대한 평가는 평균 3점에 그쳤다. 클로즈업과 슬로우 모션이 과도하게 사용되고 줄거리의 개연성이 떨어지는 등 영화 자체의 허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강유정 평론가는 “전도연이 이병헌 김고은을 탄탄하게 받쳐줬다. 영화에 억지스러운 장면이 많았지만 내공 있는 배우들이 연기해서 감정이 살아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미모왕-‘뷰티 인사이드’의 한효주
동명의 광고를 원작으로 한 ‘뷰티 인사이드’에서 한효주는 매일 생김새, 성별, 인종까지 모든 것이 바뀌는 남자 우진과 사랑에 빠지는 이수 역을 맡았다. 우진 역을 연기한 배우만 123명에 달한다. 영화는 이 설정을 제외하고는 만남부터 이별, 재회까지 전형적인 연애의 과정을 밟되 매 순간을 아름답고 세련되게 그려내며 사람들이 연애에 갖는 환상을 조금씩 자극한다.
화면 속의 한효주는 말 그대로 투명하게 빛나지만 그 동안 ‘감시자들’ 외에는 늘 맑고 예쁜 역할을 맡아왔다는 점에서 미모(평균 4.2점) 외에 연기변신(1.5점), 노력(2점), 상대와의 조화(2.7점)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뷰티 인사이드’는 설정의 독특함으로 승부하는 영화다. 배우들이 보여줘야 할 연기의 난도가 높은 작품은 아니다”라고 평했다.
● 아차상-‘미쓰 와이프’의 엄정화
결혼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는 여자 변호사 연우(엄정화)는 뉴욕 지사 발령을 앞둔 어느 날 교통사고를 당해 저승에 간다. 그곳에서 만난 이 소장(김상호)은 연우에게 한 달 동안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면 원래의 삶으로 돌려보내주겠다고 제안한다. 팔불출 남편(송승헌)과 두 아이와 부대끼며 온갖 사고를 치던 연우는 누군가의 아내, 엄마로서의 삶에 조금씩 적응해나가기 시작한다.
1인 2역에 가까운 연기를 해낸 엄정화는 ‘츄리닝’ 패션을 한 평범한 엄마의 모습으로 웃음을 자아내면서 아이와 남편을 위해 가슴 아파하는 모습으로 눈물샘을 자극하기도 한다. 하지만 평범한 주부와 댄스 가수를 오갔던 ‘댄싱 퀸’(2012년) 속 그의 모습을 떠올리는 관객도 적잖을 듯 하다. 어디서 본 듯한 영화의 줄거리도 아쉬움을 남기는 대목이다. 이 때문인지 연기변신(평균 2.6점), 미모(2.6점) 등 전반적으로 2, 3점대의 저조한 평가를 받았다. 정지욱 평론가는 “엄정화의 능청스러운 연기는 물이 올랐지만 작품 자체의 한계를 극복하기는 힘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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