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 클럽’에 나란히 가입한 ‘암살’과 ‘베테랑’은 여러 모로 닮았다. 그동안 한국영화가 좀처럼 시도하지 않았던 여주인공을 앞세운 독립군 이야기로 큰 성공을 거뒀고(암살),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한 형사 장르(베테랑)로 처음 1000만 관객 흥행을 이뤘다.
하지만 무엇보다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다. ‘연출자 남편’, ‘제작자 아내’로 역할을 분담한 영화인 부부의 이색적인 성공 사례라는 사실이다. ‘암살’의 최동훈 감독과 제작사 케이퍼필름의 안수현 대표, ‘베테랑’의 류승완 감독과 영화사 외유내강의 강혜정 대표다.
최동훈 감독은 아내를 ‘안수현 프로듀서’라고 부른다. 안 대표가 2012년 ‘도둑들’을 통해 본격 제작자로 변신하기 전까지 ‘4인용 식탁’ ‘너는 내 운명’, ‘그놈 목소리’ 등 프로듀서로 더 활발히 일한 덕분에 아직도 불리는 호칭이다.
이들은 2007년 결혼한 뒤 ‘도둑들’과 ‘암살’을 차례로 내놓았고 두 편 모두 1200만 관객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이들의 합작은 대체로 최 감독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다. 이에 대한 제작 가능성과 흥행 여부를 면밀하게 검토하는 책임은 안 대표의 몫이다. ‘암살’의 제작비가 180억원으로 꾸려졌다는 사실 역시 최 감독은 가장 나중에 전달받았을 정도로 제작과 연출자로서 역할 분담이 철저하다. “연출에만 신경 써 달라는 제작자의 마음 아니겠느냐”고 최 감독은 말했다.
물론 일에서는 냉정하다. 안 대표는 ‘암살’이 1000만 관객을 동원하고 나서야 기획단계에서 가졌던 우려의 마음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독립운동 이야기를 그리겠다는데, 여주인공이었다. 다들 흥행이 안 될 거라고 여기는 것 아닌가. 감독에게 이유를 물었다. 남자들의 독립운동은 지나친 활극이 될 것 같다더라. 여성의 이야기로 뭉클한 의미를 주고 싶다는 감독의 뜻에 동의했다.”
‘베테랑’의 류승완 감독과 강혜정 대표는 부부가 아닌 연출자와 제작자로서 총 네 편을 함께 했다. 첫 작품은 2006년 개봉한 ‘짝패’. 2년 뒤 ‘다찌마와 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를 만들었지만 흥행에 실패했다. 그 뒤 서울 암사동으로 영화사 사무실을 옮겨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주로 서울 강남구나 종로구 일대에 영화사 사무실이 밀집한 사실과 비교해 영화계에서는 이들을 ‘유일한 강동 영화인’이라는 애칭으로도 부른다. 영화사 이름인 ‘외유내강’은 각각 남편과 아내의 성씨에서 따와 튼실한 영화를 만들자는 의미이기도 하다.
류 감독과 강 대표는 1997년 결혼했다. 1990년대 초반 독립영화 워크숍에서 만난 연상연하 커플로, 슬하에 세 아들을 두고 있다. 이들 부부도 분업이 확실하다. 특히 류 감독은 제작비에 관한 한 누구보다 제작자의 입장을 고려하는 연출자. ‘베테랑’의 순제작비 60억원에서 1원도 넘기지 않았다.
최동훈·안수현 부부가 지금까지 영화 두 편에 머문 것과 비교해 이들의 움직임은 전방위에서 이뤄진다. 외유내강이 현재 제작 중인 영화는 김하늘이 주연하는 ‘여교사’다. 이에 참여할 배우를 캐스팅하는 과정에서 류 감독은 물밑 지원자로 적극 나섰다. ‘여교사’에 출연하는 한 중견배우는 “감독과 제작자인 부부가 동시에 달려드니 당해낼 수가 없었다”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