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이 “트로트 이단아? 시대가 낳아주는 가수 되고파”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9월 12일 10시 00분


트로트 가수 지원이. 사진제공|젤러스엔터테인먼트
트로트 가수 지원이. 사진제공|젤러스엔터테인먼트
가수의 외모가 화려하면 가끔 손해 보는 일이 생긴다. ‘실력보다 외모로 승부한다’는 선입견을 주기 때문이다. ‘쿵짜라’란 노래로 활동중인 트로트 가수 지원이(함지원)는 외모와 퍼포먼스가 튀어도 ‘너무 튀는’ 가수다. 키 169cm의 ‘쭉쭉빵빵’ 볼륨 넘치는 서구형 몸매에, 몸에 완전 밀착하는 타이즈 의상, 그 ‘비주얼’에 어울리는, 트로트 가수라고는 상상도 못할, 섹시 퍼포먼스. 웬만한 섹시 걸그룹을 능가하는 ‘포스’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 ‘흔적’도 오랫동안, 강렬하게 남는다. 한번 다녀간 행사는 재방문 요청을 반드시 받는다. 군부대를 초토화시켜, 트로트 가수로는 이례적으로 ‘군통령’으로 불린다. 타이즈 의상을 입고 나선 야구장 시구는 클라라 못지않은 화제를 남겼다. 트로트 관련 프로그램 중 최고로 꼽히는 민영방송 공동제작 프로그램 ‘전국 TOP10 가요쇼’ 진행도 맡고 있다.

육상·연식정구, 체육 유망주였던 학창시절

‘가수 지원이’의 이력을 살펴보면 참 특이하다. 강원도 평창 출신인 지원이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육상선수로 활약했다. 단거리부터 중장거리까지 뛰었고, 심지어 마라톤 선수로 뛰기도 했다. 그야말로 전천후 육상선수. 시민체전에서 단거리 선수로 은메달을 땄다. 도민체전에선 상위권이었다. 고교 입학 얼마 후까지 육상선수를 하다, 연식정구를 시작했다. 선수생활 3년 하다 특기생으로 대학에 입학했다. 집안 일로 휴학을 하게 됐고, 그러다 운동을 그만두게 됐다.

지원이는 운동신경이 좋았고, 신체적 조건이 훌륭했던 덕분에 여러 종목으로부터 권유를 받았다. 주변에서는 “골프를 하면 어떠냐” “쇼트트랙 해보라” 권했다. 그러나 “또 전학을 해야 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등 여러 상황이 싫어서” 결국 운동을 포기하게 됐다. ‘만능 스포츠우먼’의 캐리어는 거기에서 멈추고 말았다.

● 어머니의 한마디에 새로운 꿈을 꾸다

엔터테이너의 끼도 운동신경만큼 많았다. 학창시절엔 치어리더도 하고, 교내 장기자랑은 물론 여러 행사의 사회를 도맡았다. “알고 보면 낯도 가리고 보수적”이지만, 끼도 넘쳐 무대에 나서는 걸 좋아했다.

그러나 지원이에게 가수는 “어릴 적 꿈이 아니”었다. 고교시절 밴드 활동을 했었고, 막연하게 ‘가수하면 재미있겠다’고만 생각했다. 그가 가수가 된 건 그의 어머니 때문이었다.

지원이 어머니는 “크게 한 번 아프셨던 적”이 있었다. 어머니가 그 병으로 인해 “죽음의 문턱”까지 가게 됐고, 어머니는 그때서야 지원이에게 고백했다.

“엄마 꿈은 가수였다. 너를 밀어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하고 싶었던 걸 도전 못했던 것이 너무 아쉬웠다”며 펑펑 울었다. 지원이는 그때 다짐했다. 엄마 꿈도 이루고 나의 꿈도 이루자고. 그러다 어머니가 치유됐고, “가수는 내가 해야 할 운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는 노래를 하면 항상 트로트로 불렀다. 트로트는 모든 세대가 즐기는 음악 아닌가. 춤도 잘 추고 노래 잘하는 트로트 가수가 되어서 기존 트로트의 틀을 깨고 싶었다.”

지원이는 가수가 되리라 결심한 후 오디션을 많이 봤지만 가는 곳마다 실패했다. 자책했다. 그러나 “운동을 많이 해서 단순무식해서인지 독하게 준비”했다. 어느 기획사에 트로트 가수 연습생으로 들어갔는데, 막상 자신을 댄스가수와 연기자를 시키려고 했다. “나는 트로트 가수”라는 주관이 뚜렷했던 지원이는 당시 기획사를 박차고 나왔다.

트로트 가수 지원이. 사진제공|젤러스엔터테인먼트
트로트 가수 지원이. 사진제공|젤러스엔터테인먼트

● 트로트에 대한 무한애정으로 걸그룹·연기자도 거절

충북 제천에서는 매년 ‘박달가요제’가 열린다. 트로트 가수들의 등용문으로 통하는 가요제다. 지원이는 이미 몇 차례 출전했고 대상까지 받았다. 그 인연으로 가요제의 진행을 수년간 맡았다. 4년째 진행을 맡았던 2012년 행사에서 현 소속사인 관계자를 만났다.

이미 KBS 1TV ‘전국노래자랑’에서 최우수상, 연말결선에서 장려상까지 받았던 지원이는 2012년 9월 첫 음반을 냈다. 정통 트로트부터 세미트로트까지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지원이는 트로트와 댄스를 접목한 ‘댄스 트로트’로 전국을 누비고 있다. 트로트를 위해 민요까지 배운 지원이. 자신이 지향하는 바는 정통 트로트이지만, 폭 넓은 세대에 친근함을 주고자 내세운 전략이다.

“트로트는 정답이 없는 것 같다. 그 가수에 맞게끔, 듣기 편하고 흥이 나면 그게 답인 것 같다. 처음에 내 색깔을 못 찾아서 힘들었는데, 민요든 트로트든 발라드든, 내 색깔대로 부르고 사람들이 좋아하면 그게 좋다.”

● “우리도 지원이처럼” 트로트계 벤치마킹 사례 잇따라

춤과 노래, 패션 등에서 독보적인 스타일을 갖춘 지원이가 트로트 시장을 강타하면서 다른 기획사에서 지원이를 벤치마킹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이미 장윤정과 홍진영이 트로트에 대한 고정관념을 많이 바꿔놓았지만, 지원이의 등장 이후 소유미, 홍자 등 걸그룹 멤버 같은 트로트 가수들이 줄이어 가요계에 등장하고 있다.

지원이는 트로트 가수로서 경력이 “2년 반 밖에 안 되고” 또한 “히트곡이 없는 상황에서도” 그는 ‘행사의 여왕’으로 주목받는다. 트로트계에서는 전후후무한 일이다. 지원이 소속사가 밝힌 지원이의 한 달 행사출연 횟수는 “같은 경력의 트로트 가수들의 5~6배 수준”이다. 지원이가 나서는 행사도, 돌잔치와 고교 신입생 환영회부터 각종 동문회, 군부대 축제, 지역문화축제, 대학행사까지 모든 행사를 망라한다. 특히 남자고교 동문회와 동창회는 “싹쓸이 수준”이다.

“레깅스 입고 트로트 무대를 하면서 처음엔 욕도 많이 먹었다. 트로트가 변질됐다고 안 좋게 보는 분도 많았다. 실력으로 보여주는 수밖에 없었다. 또 ‘트로트도 이럴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다. 트로트는 특정세대에 국한된 게 아니라, 여러 세대가 즐기는 음악이길 바랐다. 처음엔 트로트에 대한 진정성을 인정받지 못했지만, 이제 조금씩 좋은 시선으로 봐주신다. 한 분 한 분 인정해주신다. 이제 내 색깔을 좋아해주시는 분들도 많아지고, 내 색깔을 보려고 불러주는 곳도 많다. 처음엔 남자팬들이 많았는데 이젠 어머니 팬들, 젊은 여자팬들도 많아졌다. 나는 전혀 걸그룹이 안 부럽다.”

● 철저한 자기관리, 무대에 대한 신념

지원이는 자기관리가 철저하다. 지원이는 체력관리를 위해 틈만 나면 산에 오른다. 산을 오를 때 제일 힘든 구간에서 노래를 해본다. 그 때의 힘든 느낌을 기억해두면 무대에서 도움이 많이 된다. 이런 노력 덕분에 지원이는 “무대 올라서 음이 떨어지지 않고 호흡도 길어”진다.

트로트 가수로서 무대에 대한 자기만의 신념도 확실하다. “어느 무대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신념이다. 한 번 다녀간 행사를 또 하게 되는 원동력도 그 신념을 지키는 것 때문이다.

“나는 같은 축제에서 또 불러줬을 때 제일 기분 좋다. 다른 모습 보여야하니까 더 많이 준비해야 하게 된다.”

지원이는 끼가 넘치는 무대로 인해 행사 관계자들로부터 “지원이는 ‘비방송용 무대’가 뛰어나다”는 말을 듣는다. 지원이는 이런 평가를 두고 “비방송용이 아니라, 관객용 무대”라고 말한다.

“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 지금 할 수 있을 때 뭐든 잘하자는 생각이다. 레깅스도 지금 아니면 언제 입느냐. 매 무다마다 다른 퍼포먼스를 한다. 그러면 입소문이 퍼지고 또 애프터(추가방문 요청)도 들어온다.”

● 트로트의 새로운 신화를 위해

지원이의 꿈은 “트로트의 새로운 장을 열고, 트로트계에 큰 획을 긋는 것”이다. 트로트 가수로는 처음으로 ‘군통령’으로 인정받고, 히트곡이 없어도 빠른 성장세로 행사업계를 주름잡는 것은 그 새로운 신화를 위한 예고편이다.

“어느 선배가 저를 보고 ‘너는 초고속 리무진을 탔다’고 하셨다. 나는 반드시 된다. 왜냐하면 될 때까지 할 거니까. 나는 될 수밖에 없다.”

트로트계가 전반적인 침체를 겪고 있어, 늘 새로운 스타의 탄생을 기대하는 분야다. 지원이는 자신이 “트로트의 세대교체를 이끄는 가수”이길 바랐다. 자신과 같은 스타일의 트로트 가수 1호가 됐으면 좋겠고. 자신을 롤모델로 따라하는 후배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스타는 시대가 만든다고 생각한다. 나도 이 시대가 아니었으면 힘들었을 것이다. 나를 받아줄 수 없는 시대였다면 나는 엄청난 반감이었을 것이다. 지금 이 시대에 내가 통한다는 건 나 같은 사람을 기다린 게 아닌가 생각된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고 하는데, 나는 시대가 낳아주는 트로트가수가 되고 싶다.”

김원겸 기자 gyumm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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