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성년(20회)을 맞는 부산국제영화제가 10월1일 막을 올린다. 1996년 닻을 올리고 영화의 바다로 출항한 부산국제영화제는 20년 동안 아시아 최대 규모로 자라났음은 물론 세계 유수의 영화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그 만큼 영화제는 개최 기간 다양한 화제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1996년 오늘 역시 그랬다.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하루 전인 9월13일 개막해 본격적인 영화축제를 이어가던 때였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작품으로, 월드시네마 부문에 초청된 ‘크래쉬’가 밤 9시 부산 중구 부영극장에서 10여분가량이 삭제된 채 상영되며 논란을 모았다.
영화 ‘크래쉬(사진)’는 기계문명의 발달 속에서 파멸해가는 인간군상과 그들의 욕망을 그린 작품. 이 가운데 동성애를 묘사한 장면이 삭제되는 수난을 겪었다.
당시 영화진흥법이 영화제 상영작도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를 받아야 한다고 못박은 것이 사태의 원인이 됐다. 세계적으로 유례 없는 규정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에 앞서 공연윤리위원회는 ‘크래쉬’의 수입심의를 보류했다. 하지만 수입사인 대우측이 일부 분량을 삭제한 채 영화제에 출품했고 영화제측은 이에 대한 정밀한 확인을 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었다.
이는 아직 경험이 전무하다시피했던 이들이 이끈 첫 영화제에서 벌어진 시행착오였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이용관(현 공동집행위원장)을 비롯해 전양준(아시아필름마켓 운영위원장), 김지석(수석프로그래머) 등 부산 지역 대학교수와 소장파 평론가들이 추진해 성사됐다. 박광수 감독(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이들의 후견인으로 다양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김동호(명예집행위원장) 전 영화진흥공사 사장 등도 이들과 손잡고 영화제의 닻을 올렸다. ‘크래쉬’ 삭제 상영 같은 시행착오 속에서도 이들은 31개국 167편을 초청 상영하고 연 인원 20만여명의 관객을 부산으로 불러들이며 비교적 성공적인 첫 축제를 마쳤다.
그리고 20년 뒤. 이제 부산국제영화제는 제20회 영화의 항해를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벌어진 숱한 논란을 딛고 일어선 부산국제영화제는 최근까지도 외부의 불필요한 간섭에 맞서며 순수한 영화축제로서 우뚝 섰다. 많은 관객 역시 스무번째 항해의 성공을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