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롯이 아비와 아들에 초점 맞춘 이야기 정통성 갖길 바랬던 정조가 이해되기도 이준익표 정공법 …진심은 관객에 통해
송강호(48)만큼 믿음을 주는 배우는 드물다. 대부분의 출연작이 흥행했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16일 개봉작 ‘사도’(제작 타이거픽쳐스)에서 송강호가 그려낸 영조는 낯설고, 새롭고, 그래서 더욱 압도적이다. 그 모습을 극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기회, 관객에게는 어쩌면 행운이다.
-‘사도’를 내놓는 마음이 어떤가.
“조마조마하다. 그동안 담담한 척했다. 과연 ‘사도’가 관객에게 오롯이 전달될까, 궁금하다.”
-출연 제의에 망설임은 없었나.
“세상에 많이 나왔던 이야기구나, 그러고는 시나리오 첫 장을 펼쳤다. 놀랍게도 이준익 감독의 ‘사도’는 아주 정공법이었다. 비극을 간결하게, 힘 있게 그려내 신선했다. 가장 인간적인 필치로 영조를 그렸다. 곧바로 하겠다고 답했다.”
-기교 없는 ‘정공법’이 오히려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는데.
“요즘 영화가 얼마나 역동적인가. ‘사도’는 너무나 정직하게 간다. 그 진심이 전달된다면, 어떤 수식과 수사보다 더 깊이 관객과 통할 거라 믿었다. 그것이 우리 모두의 지향점이다.”
흔히 ‘사도’에는 ‘정통사극’이란 설명이 따라붙는다. 송강호는 “정답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정치역학적 저변이 담겨야 정통사극으로 볼 수 있지 않겠느냐”며 “오롯이 아비와 아들에 초점을 맞췄으니 정공법으로 다뤘다고 보는 게 맞다”고 했다.
‘사도’는 조선 21대 왕 영조와 아들 사도세자, 그리고 22대 정조에 이르는 3대의 비극에 주목한다. ‘조선왕조실록’ ‘한중록’ 등 기록에 철저히 입각해 완성했다. 팩션과 판타지 사극이 유행인 분위기에서 반대의 길을 택했다.
-영조를 어떻게 받아들였나.
“중고교 때부터 영조, 사도세자 이야기 접했고, 아주 표면적으로 알고 있었다. 다들 그렇지 않나. 자신의 말을 안 들어 ‘네 이놈!’ 하고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인 왕. 이번에 역사 공부를 하며 영조에게 연민이 들었다. 천민 출신 모친, 형 경종을 독살했다는 의혹, 각종 민란까지. 어마어마한 울화가 있지 않겠나. 그래서 내 아들 사도만큼은 왕좌의 정통성을 갖길 바랐을 것이다. 혹독한 교육을 시키면서 옥죄었을 것이다.”
-사료에 남은 영조의 말들이, 대사로 쓰였다.
“아무래도 결정적 장면은 사도의 대리청정 장면 같다. 실제론 수년간 이뤄졌지만 영화에서는 단 두 장면으로 표현했다. 그래서 (관객은)더 히스테릭하게, 괴팍한 노인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일정부분 맞다. 가령 ‘너, 1년에 책 얼마나 읽니’라는 대사 역시 사료 그대로다. 정교하게, 잘 짜여진 ‘조직’처럼 완성하고 싶었다.”
-자연인 송강호로서, 사도세자를 보며 흔들린 순간이 있었나.
“영화의 첫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나 역시 아버지라서 그렇다. 물론 태생적인 콤플렉스를 가진 영조의 마음은 이해한다. 그럼에도 자연인 송강호는 흔들린다. 나 같았으면 뒤주에 하루쯤 가둬놓고 바로 풀어주겠지.(웃음).”
-실제로는 어떤 아버지인가.(그는 1남1녀를 두고 있다. 맏아들은 축구선수 송준평으로, 연세대에 재학 중이다.)
“다정다감하지 않지만 그래도 까다롭고 엄한 아버지는 아니다.”
영화에서 영조는 ‘아들이 살아야 아비가 산다’고 말한다. ‘아들 사도 역의 유아인이 잘 해내야 송강호가 살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손뼉까지 치며 웃던 그는 “둘 다 살아야 한다”고 했다.
“흔히 광기에 찬 광인의 모습은 국내외 영화에서 많이 봐 왔다. 그래서 배우들은 욕심을 내고 유혹에 빠진다. 아주 기술적으로 표현하려는 유혹이다. 그러나 유아인은 이를 경계하며 자신의 감정에 집중했다. 20년 전, 나라면 어땠을까. 돌아봤다.”
-‘콤플렉스’가 있나.
“완벽한 건 없다. 부족하고 미흡한 건, 사람이기에 당연하다. 더 중요한 건 스스로 얼마나 채찍질하느냐이다. 그걸 유지해오지 않았나 싶다. 그럼에도 또 부족하겠지. 다만 긴장을 놓지 않을 뿐이다.”
‘사도’는 촬영을 마치고 개봉까지 1년간 후반작업을 했다. 그 사이 체코에서 진행된 영화 음악 녹음작업에까지 동행했다. “내 돈 내고 따라갔다. 다른 작품을 하고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정말 할 일이 없었다. 하하!” 말이 그렇지, 영화를 향한 애정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