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활발한 활동은 물론 출연작의 잇단 흥행과 인상 깊은 연기로 새롭게 주목받으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배우들이 있다. 이경영과 이정재다. 두 사람은 각각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 데뷔해 한때 스크린의 개성 강한 주역의 자리를 꿰찼다. 이들은 지나간 한때 굴곡진 인생과 작품의 흥행 실패 등이 이어지면서 대중의 시선을 온전히 독차지하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두 사람이 1997년 오늘, SBS 수목드라마 ‘달팽이’(사진)에서 호흡을 맞추며 자신들의 위상을 과시했다. 이날부터 방송을 시작한 ‘드라마’는 두 사람과 함께 전도연, 이미숙 등이 출연해 ‘스타들의 경연장’으로 불릴 정도로 화려한 출연진을 자랑했다. 이경영은 자신의 첫 드라마이자 1993년 작품인 SBS ‘머나먼 쏭바강’ 이후 4년 만에, 이정재는 자신의 출세작 SBS ‘모래시계’ 이후 2년여 만에 출연한 드라마이기도 했다.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네 남녀의 이야기를 각자의 시선으로 각 4회씩 담아낸 드라마에서 이경영과 이정재는 이전과는 뚜렷하게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며 새로운 면모를 표출하며 시청자의 시선을 모았다. 주로 스크린에서 개성 강한 역할을 연기하며 당대 젊은 연기자를 대표하며 활약한 이경영은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나서 신분상승을 꿈꾸는 부하 여직원 전도연을 사모하는 역할로 나섰다. ‘모래시계’의 경호원 백재희의 잔영을 여전히 기억하는 시청자에게 부모의 교통사고가 안겨준 충격으로 11살 지능에 머문 청년을 연기한 이정재의 모습도 새로웠다.
특히 이정재는 연기를 위해 비슷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 등을 보며 공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연출자 성준기 PD의 눈에는 “아직 힘이 덜 빠진” 연기로 비쳤다. 성 PD는 이정재와 함께 어린이놀이터를 찾아 그가 어린이들과 거리낌 없이 놀게 했다. 그리고 이를 이정재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촬영해 보여줬고 이정재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비로소 캐릭터의 길을 찾아내기도 했다.
이 같은 노력 속에서 드라마는 그해 방송담당 기자들이 뽑은 베스트 프로그램의 드라마 부문에서 KBS 1TV ‘용의 눈물’과 2TV ‘파랑새는 있다’에 이어 3위에 올랐다. ‘모래시계’의 송지나 작가가 젊은 후배들과 함께 쓴 정제된 대사와 깔끔한 화면 연출 덕분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