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대본에 ‘노래를 부른다’ 같은 지문만 있고 더 구체적인 내용은 없었어요. 그래서 아는 이탈리아어, 이탈리아 노래를 외워가며 추임새로 썼죠(웃음).”
16%가 넘는 시청률로 수목드라마 1위를 달리고 있는 MBC ‘그녀는 예뻤다’의 ‘신 스틸러’를 꼽는다면 단연 황석정(44)이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귀국해 패션잡지 ‘더 모스트’에 낙하산으로 편집장이 된 회장 여동생 김라라 역을 맡았다. 금발 염색 머리에 특이한 말투로 ‘맘마미아!(맙소사)’를 연발하는 4차원 캐릭터지만 위기의 순간 구원투수 역할을 톡톡히 하는 인물을 제대로 소화해냈다.
요즘 황석정은 드라마뿐 아니라 예능, 영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존재감을 드러낸다. MBC 예능프로 ‘나 혼자 산다’에서는 소탈한 동네주민으로, 케이블채널 KBS W의 추리 프로 ‘빨간 핸드백’에서는 여성 범죄자 심리를 따라잡는다. 22일 개봉하는 영화 ‘더 폰’에서는 주인공(손현주)의 조력자 역할로 등장한다.
12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그의 개인 작업실을 찾았다. 그는 지하실이라 춥다며 오후 3시에 대뜸 테킬라와 치즈 안주를 내놓았다.
“지인들과 어울리려고 작업실을 만들었어요. 요즘은 바빠져서 제가 없는 날이 많지만 언제든 찾아오도록 문을 열어뒀죠.”
3개월 전에 꾸민 30m² 공간엔 탁구대와 바가 있어 작업실보다는 놀이터에 가까워 보였다. 전기과 출신인 그룹 ‘장미여관’의 보컬 육중완이 천장 조명을 달아줬고 배우 서현진은 스페인에서 사온 그림을 기증했다. 아이돌그룹 비스트의 멤버 윤두준은 탁구대를 마련해 왔고 잔나비밴드 멤버들은 대문을 빨간색으로 칠해줬다.
서울대 국악과를 졸업한 황석정은 평소 친분 있던 배우 설경구의 밑도 끝도 없는 ‘넌 연기를 해야 돼’라는 한마디에 20년 넘게 연극판에서 활약했다.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를 비롯해 수십 편의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으나 카페 주인, 간호사, 동네 아줌마 등 대부분 단역에 그쳤다. 그러다 지난해 방송된 tvN 드라마 ‘미생’에서 재무부장으로 출연하면서 ‘하회탈 웃음’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 덕에 지금은 ‘여자 이경영’으로 불릴 정도로 감초 조연을 맡아 바쁘다. 심지어 ‘그녀는 예뻤다’에서도 김라라 외에 최근엔 강원도 사투리를 하는 고깃집 사장으로도 나와 1인 2역을 했다.
“감독님이 고깃집 사장 역 섭외가 잘 안됐다며 저한테 맡아 달라더라고요. 강원도 사투리 쓰는 친구의 말을 녹음해 억양을 익혔죠. 호흡이 다른 작품들, 성격도 다른 역할을 여러 개 해서 가끔은 스스로 ‘다중 인격’ 같다는 느낌도 들어요(웃음). 그 모든 캐릭터가 중복되지 않게 열심히 준비하죠. 새로운 역을 할 기회가 생긴다면 언제든지 도전할 겁니다.”
그는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tvN 드라마 ‘치즈인더트랩’, 뮤지컬 ‘천변살롱’ 출연도 확정됐다.
그의 20대 못지않은 반전 몸매도 화제를 모았다. ‘미생’에서 변요한이 황석정의 뒤태만 보고 반한다는 설정이 등장했고 ‘나 혼자 산다’에선 미니스커트 입은 모습으로 눈길을 끌었다. 그는 “항상 쉬지 않고 움직여 살찔 틈이 없어서 그렇지 몸매 관리라는 단어는 생각도 못해봤다”고 말했다.
아직 미혼이지만 그는 “결혼 생각이 있고 지금 만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배우가 직업이지만 의식해본 적은 없어요. 시청자들도 제가 그냥 흔한 옆집 누나, 언니, 아줌마 같아서 저를 아껴주시는 것 아닐까요? 앞으로 그런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어요. 그런 사람이 가끔 즐거움도 준다는 마음으로 사람들과 거리감 없는 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