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부자들’ 개봉을 앞두고 취재진과 마주앉은 배우 이병헌(45)은 “첫 걸음이 힘든 것 같다”고 했다. 3일간 쉼 없이 이어진 인터뷰를 5일 오후 5시에 모두 마치면서 그는 “영화에 참여한 배우로서 내 의무를 다하자고 다짐했다”며 “어렵게 앞으로 나왔지만 입을 열고 마주보니 나아지는 기분”이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한 시간가량 이어진 인터뷰에서 이병헌은 영화나 연기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웃음기 있는 얼굴로 말의 속도를 높였다. 반면 7개월 전 얻은 첫 아들, 아빠가 된 소감을 꺼낼 때는 쉼표가 더 많았다. “(아들을 얻고)연기자로 어떻게 변화할지 좀 더 지나야 느낄 것 같다. 아빠가 된 마음은, 뭔가, 되게 다른…, 분명한 뭔가가 있다.” 이병헌은 아들을 얘기할 땐 한쪽 손을 들어 자신의 가슴에 댔다. “아주 커다란 게 가슴에 생긴 기분이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부모가 된 변화와 더불어 18일 개봉하는 ‘내부자들’(감독 우상호·제작 내부자들문화전문회사) 역시 그에게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영화라는 전망이 많다. 사실 복잡다단한 상황이 그를 둘러싸고 있기도 하다. 지난해 연루된 스캔들의 잔향, 8월 개봉작 ‘협녀:칼의 기억’의 흥행 실패 여파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협녀’ 직후 일부에서는 ‘이병헌의 위기’라는 지적도 꺼냈던 터다.
“다들 고생하고 정성 들여 영화를 만든다. 전부 흥행하면 다행이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 연연하고 미련 두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렇구나’ 하며 넘어가곤 한다.”
일단 ‘내부자들’을 향한 분위기는 긍정적이다. 최근 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영화의 완성도, 이병헌의 활약을 두고는 호평이 압도적이다. “돗자리 깔아놓고 한바탕 노는 분위기에서 찍었다. 누군가는 우리 영화를 ‘구강 액션’이라고 하더라. 캐릭터들의 말싸움이 세다보니까.”
“무조건 재미있는 이야기”를 선호하는 탓에 때로는 “즉흥적인 선택”을 해왔다는 이병헌이 ‘내부자들’의 세계로 진입한 이유도 순전히 매력적인 이야기 때문이다. 그가 연기한 인물은 권력의 심부름꾼을 자처하는 주인공 안상구. 1988년에 시작해 현재까지 구르고 부딪혀 성공을 일구지만 배신당한 뒤 다시 복수를 꿈꾸는 처절한 삶을 산다. 정치와 언론, 재벌이 어우러진 권력의 적나라한 욕망은 이병헌의 복수극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사회고발성 영화는 처음이다. 내가 안상구와 비슷한 면이 있다면 음식 빨리 먹는 것 정도?(웃음) 시간에 따라 변하는 인물, 왜 그리 되는지 더 관찰해 봐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병헌은 “내년에 한국영화 한두 편, 미국영화 한두 편에 참여할 계획”이라고 했다. 전부 성사되면 1년에 4편의 영화를 소화한다. “미국에선 내 스케줄 같은 건 고려하지 않으니까 이럴 땐 시간이 아주 아깝다”고 했지만 어쨌든 앞으로 왕성한 영화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듯 보였다.
“한국과 할리우드를 선택한다면 당연히 한국영화다. 할리우드 활동은 내게 주어진 부수적인 선물이랄까. 미국에선 연기자로 핸디캡이 있다. 상대배우에게 하는 말도 ‘내 액센트가 어때’라는 식의 아주 1차원적인 질문일 뿐이다. 당연히 한계를 느낀다.” 그럼에도 넓은 시장을 향한 도전을 당장 멈출 생각은 없어 보였다. 내년 2월엔 ‘미스 컨턱트’, 9월엔 ‘황야의 7인’을 차례로 개봉하면서 다시 할리우드로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