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개봉한 영화 ‘맥베스’(15세 이상)는 원작 희곡 ‘맥베스’에 깃든 셰익스피어의 숨결까지도 화면에 옮기겠다고 작정한 듯한 영화다. 스코틀랜드 현지에서 촬영이 진행됐고 건물이나 의복 등에 대한 철저한 고증을 거쳤다. 각본 작업에는 셰익스피어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과연 영화는 450년 전 고전에 제대로 숨결을 불어넣었을까. 안병대 한양여대 영문학과 교수(한국셰익스피어학회장)에게 원작과 영화의 차이점, 주목할 만한 결정적 장면 등에 대해 물어봤다. 안 교수는 “전체적으로 원작의 분위기와 대사를 잘 살렸다. 원작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나온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반란, 대규모 전투, 국왕 시해 장면 등이 나오는 ‘맥베스’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중에서도 유난히 피비린내가 진하다. 안 교수는 “원작에 ‘블러디(Bloody·피투성이의, 피비린내 나는)’라는 단어가 최소 100번 이상 나올 것”이라며 “영화에도 대규모 전투 장면이나 시해 장면 등이 직접적으로 나오지만 예상했던 것 보다는 피가 덜 나오는 편”이라고 말했다.
영화는 대신 시각적으로 원작의 분위기를 살려낸다. 특히 도입부와 마지막의 전투 장면이 압도적이다. 영화 도입부 맥베스가 반역자 맥도널드를 처단하는 전투는 새벽녘 푸른 안개가 내려앉은 가운데 치러진다. 하지만 맥베스가 죽는 마지막 전투 장면은 자욱한 핏빛 노을 속에서 펼쳐진다. 용맹하고 충성스러웠던 맥베스가 권력욕에 사로잡힌 ‘블러디 맥베스’가 되는 과정을 색감의 변화로 형상화한 것이다.
안 교수는 “원작과 영화 속 대사의 일치율은 99.5%”이라고 말했다. 빠진 대사는 있어도 대사를 알기 쉽게 변형하거나 새로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덕분에 희곡 특유의 운율과 장중함이 살아있다. 이전의 다른 영화화된 ‘맥베스’에서는 없었던 시도이기도 하다. 영미권 관객 사이에서도 “자막이 필요하다”는 평이 나올 정도로 대사를 따라가기 어렵다는 단점도 있지만 두 주연 배우의 연기가 이 거리를 메운다. 최근 할리우드에서 각광받는 마이클 패스벤더(맥베스)와 마리옹 코티야르(맥베스부인) 은 스코틀랜드 억양을 살려 대사를 정확히 소화하면서도 진폭이 큰 감정을 제대로 담아내 ‘연기 보는 맛’만으로도 충분히 러닝타임이 지나간다.
영화에는 원작과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다. 전투 장면으로 시작하는 원작과 달리 영화에는 맥베스와 맥베스 부인이 자신들이 낳은 아기의 장례식을 치르는 장면이 맨 처음 삽입됐다. 안 교수는 “맥베스 부부에게 자식이 있었는지 여부는 논문 수백 편이 나올 정도로 중요한 연구 주제”라며 “맥베스 부인의 대사 중 ‘아이에게 젖을 먹여봤다’는 말이 나오는데, 자식이 있었지만 죽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영화 속에서 맥베스에게 ‘왕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는 세 마녀는 원작과 달리 어린 소녀와 함께 갓난아기를 안고 등장한다. 안 교수는 “맥베스 부부에게 자손이 없다는 사실, 부부의 상실감을 상기시키는 수단으로 볼 수 있다”며 “원작을 창조적으로 해석한 훌륭한 각색”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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