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홍파 “‘암살’ 후 넋이 나갔고…‘내부자들’ 후엔 앓아누웠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12월 3일 07시 05분


김홍파는 영화 ‘암살’에서는 독립운동가 김구(위 사진), ‘내부자들’에서는 탐욕적인 재벌회장 역을 맡아 실감나는 연기를 펼쳤다. 사진제공|케이퍼필름·내부자들 문화전문회사
김홍파는 영화 ‘암살’에서는 독립운동가 김구(위 사진), ‘내부자들’에서는 탐욕적인 재벌회장 역을 맡아 실감나는 연기를 펼쳤다. 사진제공|케이퍼필름·내부자들 문화전문회사
■ “나를 비워내고 인물을 채운다”|배우 김홍파가 사는 법

‘암살’선 김구 선생 내면의 깊이 채웠고
‘내부자들’선 재벌회장 악의 힘에 괴로워
절친 최민식과 ‘대호’…나와 가장 비슷


때로 배우가 그려낸 극중 인물이 실제인지 연기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심지어 실존인물을 그려낼 때조차 그렇다. 배우의 연기가 실제보다 더 진짜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다. 그 인물에 완벽히 녹아든 배우만이 보여줄 수 있는 세계다. 배우 김홍파(53)의 연기가 그렇다.

이런 평가에 수긍하기 어렵다면, 한 번 떠올려보자. 테러 생중계를 소재로 해 흥행에 성공한 ‘더 테러 라이브’의 주진철 경찰청장, 올해 여름 1200만 관객을 모은 ‘암살’의 김구, 그리고 현재 400만 관객을 넘긴 ‘내부자들’의 미래자동차 오너 오연수 회장까지. 김홍파를 통해 탄생한 인물들은 각각의 영화에 없어선 안 될 ‘결정적 한방’으로 통한다.

법대에 가길 바랐던 어머니의 뜻이 완강해 연기할 엄두를 내지 못하던 그는 대학 조교로, 직장인으로 20대를 보냈다. 서른살을 앞두고 더는 미룰 수 없어 극단 목화의 오태석 연출을 찾아갔다. 1992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막을 올린 연극 ‘백마강 달밤에’로 데뷔했고, 연기를 시작한 지 23년 만인 올해 다양한 영화로 그 저력을 드러내고 있다. ‘암살’ ‘내부자들’의 연속 흥행에 이어 또 다른 출연작 ‘대호’의 16일 개봉까지 앞뒀다.

“‘암살’ 촬영을 끝내고는 넋이 나가 버렸다. ‘내부자들’이 끝났을 땐 사나흘 정도 앓아누웠고. 두 영화 속 인물은 그렇게 달랐다. 김구 선생에게서 내면의 깊이를 느꼈다면 오 회장은 외향부터 강하다보니, 힘에 부쳤다.”

김홍파는 백윤식, 이경영과 함께 ‘내부자들’ 흥행의 주요 동력으로 인정받는다. 그동안 재벌 회장 캐릭터는 여러 영화에 양념처럼 등장해왔지만 김홍파는 달랐다. “나를 완전히 비워내고 인물을 채우는 방식으로 연기했다”는 그는 “촬영 동안 오직 오연수 회장으로서 숨을 쉬었고, 말했고, 살았다”고 돌아봤다. 그러다 스크린에서 확인한 자신의 모습에 적잖이 놀랐다고 한다.

“아, 저런 인간을, 살아냈구나.(웃음) 징그럽기까지 했다. 원래 내가 제안 받은 역할은 오회장이 아니었다. 그런데 우민호 감독이 나를 처음 보자마자 회장 역을 맡아달라더라. 카리스마와 포스가 있다고, 나한테 반해버렸다나? 하하!”

김홍파가 존재감을 드러낸 출발점은 ‘더 테러 라이브’이지만 영화를 처음 경험한 때는 한참 앞선 1995년이다. 그해에 촬영돼 이듬해 개봉한 ‘미지왕’을 통해서다.

“당시 태흥영화사가 대대적인 오디션을 진행했다. 극단 친구인 손병호가 나 몰래 오디션을 접수해 같이 시험을 봤다. 7차까지 이어진 오디션에서 손병호는 떨어지고 나만 붙었다. 그 때 처음 경험한 영화가, 나는 조금 무서웠다. 준비 없이는 한순간에 사라질 것 같았다.”

배우 김홍파. 스포츠동아DB
배우 김홍파. 스포츠동아DB

연극으로 돌아온 김홍파는 20년 가까이 대학로 무대에만 섰다. 그 시간을 “공부”라고 표현했다.

“무대 위에서 늘 괴로웠고 그 고뇌가 나를 무대에 오르지 못하게 할 정도로 어두웠다. 4∼5년간 대학로 거리에서 사람들만 쳐다보며 살기도 했다. 사람들 마음도 모르면서 연기를 할 수는 없다고 믿는다.”

다음 무대는 일제강점기가 배경인 ‘대호’. 실제로 절친한 친구 최민식과 함께 했다. 영화에서도 둘도 없는 친구 사이다. ‘신세계’를 연출한 박훈정 감독은 당시 처음 만난 김홍파를 떠올리며 ‘대호’ 속 인물을 구상했다. 극중 이름마저 ‘홍파’ 그대로다.

“지금껏 여러 인물을 연기했지만 나와 가장 비슷한 역할을 만날 수 있을까, 그건 불가능하지 않나, 여겼다. 그런데 ‘대호’를 만났다. 아무런 힘 들이지 않고 역할에 들어갔다 나온 기분이다.” 영화에서 그가 운영하는 약재상에는 한자로 쓰인 ‘홍파상회’라는 간판이 붙어있다고 한다. 촬영이 끝나고 그는 간판을 선물로 받았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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