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여배우다!⑤] “영화와 배역이 어울릴 때 여배우 캐스팅”

영화 ‘암살’의 전지현-‘차이나타운’의 김혜수·김고은(아래). 사진제공｜케이퍼필름·폴룩스픽쳐스

다시 여배우다｜영화제작자 20인 설문조사

“화려하게 보이는 이면에서 힘들다는 말을 할 수 없다. 공주처럼 보여야 하니까. 예뻐야 하니까.”

1970년대 ‘고교얄개’ 시리즈 등으로 발랄하고 깜찍한 이미지를 발산하며 대중의 사랑을 받은 배우 강주희. 이제는 은퇴한 그가 2009년 여배우들의 솔직한 속내를 들여다본 SBS 스페셜 ‘여우비(女優悲)’에 출연해 한 말이다. 일반적 편견의 뒤에 감춰진 여배우들의 아픔이다. 하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그렇게 이미지가 소비되길 원하는 그들의 욕망은 아닐까.

여배우! 그들은 “(작품 혹은 배역을)선택받아야 선택할 수 있다”(엄지원, 위 다큐멘터리)고 말한다. 남성중심적 사회와 남성이 주도하는 문화적 환경 안에서 그들의 설 자리는 여전히 작아 보인다. 최근 몇 년 사이 그런 징후는 더욱 뚜렷해졌다. 다양한 한국영화의 한 축을 든든히 책임져야 할 여배우의 존재감은 남성 위주 영화의 강세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스포츠동아가 20인의 영화제작자들에게 그 원인과 대안을 물었다. 이들이 꼽은 역대 가장 뛰어난 활약상을 보여준 여배우와 내년의 유망주는 이 시대 여배우들의 또 다른 희망일 터이다. 여배우! 파이팅!

■ 여배우 캐스팅, 최우선 고려사항은?

영화를 기획하고 만드는 제작자들이 여배우를 캐스팅할 때 가장 고려하는 조건은 ‘영화와의 어울림’이다. 나이, 외모 같은 외형이나 연기력이 아닌 해당 영화와 배역에 얼마나 조화롭게 어우러지는지가 최우선 조건으로 꼽혔다.

설문에 참여한 영화제작자 20명 가운데 13명(복수응답)은 ‘영화 및 배역과 얼마나 어울리는지’를 여배우 캐스팅에 있어 제1의 조건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올해 돋보이는 여성 캐릭터를 내세워 작품을 완성한 제작자들의 선택도 이와 같았다. 배우 전지현을 통해 여성 원톱 주연의 외연을 넓힌 ‘암살’의 제작자 안수현 케이퍼필름 대표를 비롯해 김혜수와 김고은이 나선 ‘차이나타운’의 안은미 폴룩스픽쳐스 대표의 선택이 그렇다.

뒤를 이어 ‘상대 배우와의 조화’를 꼽은 제작자는 4명으로 집계됐다. 여배우 활용에 있어서 상대역이 누구인지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또한 여배우의 ‘티켓파워’를 고려 대상으로 짚은 제작자 역시 4명이다. 하지만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이는 파급력’을 뜻하는 티켓파워는 실제로 여배우보다 남자 배우들을 평가할 때 더 자주 거론되는 사항이다. 실제로 설문에 참여한 한 제작자는 “티켓파워에 영향력을 미치는 여배우는 없다”고 부연했다.

설문 응답자 가운데 여배우의 ‘나이 및 결혼 여부’를 고려한다는 의견이 전혀 없다는 점도 눈에 띈다. 전지현이나 전도연처럼 결혼과 출산 이후 활발한 활동으로 흥행에도 성공하는 30대∼40대 여배우가 늘어나는 추세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 설문응답 영화제작자 명단(가나다순)

권영락 (씨네락픽쳐스), 김무령 (반짝반짝영화사), 김성우 (다이스필름), 김장욱 (펀치볼), 김태영 (인디컴미디어), 김현택 (M2컬쳐), 김효정 (필름라인), 나경찬 (인벤트스톤), 신범수 (영화사 수박), 안동규 (두타연) , 안수현 (케이퍼필름), 안은미 (폴룩스픽쳐스), 이유진 (영화사 집), 임성원 (동물의왕국), 정태진 (모인그룹), 주필호 (주피터필름), 조선묵 (활동사진), 최낙권 (초이스컷픽쳐스), 최윤진 (영화사 꽃), 최선중 (로드픽쳐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