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은 콘텐츠의 생명과도 같다. 창작자를 비롯해 콘텐츠 생산에 관련된 모든 이들의 피와 땀이 녹아든 만큼 그들의 온전한 권리를 인정하는 것은 또 다른 고품질의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데에도 필수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또 이는 유무형의 콘텐츠를 만드는 이들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이기도 하다.
1995년 오늘, 저작권과 관련한 한국 대중음악사에 중요한 법적 판단이 나왔다. 그룹 마로니에의 히트곡 ‘칵테일사랑’의 코러스 부분에 참여한 편곡자의 권리를 법원이 인정한 것이다. 국내 최초의 결정이었다.
이날 서울민사지법 합의50부(권광중 부장판사)는 가수 신윤미가 ‘칵테일사랑’과 관련해 음반제작사를 상대로 낸 음반 등 제작 발매 배포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음반에 편곡자가 신윤미임을 표시하라”고 결정했다. 이는 원 저작물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새 저작물의 창작성, 즉 2차적 저작물로서 인정하던 것을 대중음악 코러스와 배경음악 등으로도 확대 적용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당시 재판부는 ‘칵테일사랑’ 코러스의 주요 멜로디가 독창성이 있다면서 이 같이 밝혔다.
이 같은 결정은 그 한 해 전 ‘칵테일사랑’가 몰고 온 파문의 결론이기도 했다. ‘칵테일사랑’은 1994년 봄 예상치 않은 히트를 기록하며 3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한 노래. 프로젝트 그룹 마로니에가 발표한 곡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해 여름, 신윤미가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자신이 노래한 부분을 마로니에의 멤버가 립싱크한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이었다. 신윤미는 1993년 가을 이 노래를 녹음한 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노래가 수록된 음반은 그 이듬해 3월 세상에 나왔다. 하지만 자신이 노래한 부분은 그대로인 채, 마로니에의 새로운 멤버가 립싱크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후 신윤미는 음반사 등을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섰다.
사태는 가요계에 상당한 파장을 몰고 왔다. 립싱크에 대한 제재 등 구속력 있는 규제 기준이 없었던 상황이었다. 외모나 현란한 안무에만 의존하는 일부 가수들의 립싱크 관행에 대한 비판도 쏟아졌다. 결국 1990년대 후반 각 방송사들은 가수가 립싱크를 할 때에는 화면 구석에 테이프가 돌아가는 모양을 넣은 관련 표시를 하기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