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들던 들지 않던, 미국이 세계 1위 강대국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많지 않다. 미국을 아는 것은 세계를 아는 것과 직결된다. 21일 개봉한 ‘빅쇼트’(18세 이상)와 ‘스티브 잡스’(12세 이상)는 2016년 현재 미국에 대한 서로 다른 해답을 내놓는다. ‘빅쇼트’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낳은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뒷얘기를, ‘스티브 잡스’는 천재 스티브 잡스(마이클 패스벤더)의 탄생을 통해 당대 미국의 자화상을 그렸다.
● 금융위기의 진실 ‘빅쇼트’
2005년 부동산 시장 붕괴를 미리 예측한 캐피탈회사 대표 마이클 버리(크리스찬 베일)는 부동산 대출금을 사람들이 갚지 못할 경우에 대한 보험금을 받는 새로운 금융상품을 만든다. 비슷한 시기, 대형은행 트레이더 자레드 베넷(라이언 고슬링), 펀드매니저 마크 바움(스티브 카렐) 등도 낌새를 채고 유사한 상품에 투자한다.
시간이 흘러 부동산 대출을 못 갚는 이들이 속출하는데도 관련 금융상품의 신뢰도는 떨어지지 않는다. 평가사도 대형은행과 한통속이었기 때문이다. 영화 말미 주인공들은 막대한 돈을 벌고도 웃지 못한다. 자기들이 돈을 번 건 미국 금융 산업이 거대한 사기극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며, 서민들이 그 손해를 모두 떠안았다는 것을 알아서다.
어려운 금융용어가 수시로 등장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제작진도 관객의 고충을 이해했는지 영화에는 섹시 여배우 마고 로비, 팝스타 셀레나 고메즈 등이 깜짝 출연해 친절하게 용어 설명을 해준다.
영화는 지금도 부실한 금융 산업이 제도의 비호 아래 건재하며, 언제든 서민을 등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을 알리며 끝난다. 한때 ‘블링블링’이 유행했던 버블 시기의 미국 사회 분위기를 보여주면서, 여전히 그 거품 위에 떠 있는 미국의 허상을 날카롭게 풍자한다. ● 아이폰 이전의 ‘스티브 잡스’
“넌 누구야? 뭐 하는 사람인데?”
애플의 공동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세스 로건)의 영화 속 대사는 ‘스티브 잡스’를 관통한다. 여기에 답하기 위해 영화는 잡스의 인생, 그리고 컴퓨터의 역사에서 클라이맥스라 할 만한 세 번의 신제품 프레젠테이션을 골라 3막 연극처럼 구성했다. 1막은 1984년 매킨토시, 2막은 1988년 넥스트 큐브, 3막은 아이맥 출시 설명회다.
각 막의 구성은 비슷하다. 신제품 발표 직전의 숨 막히는 긴장감 속에서 사람들이 잇달아 잡스를 찾아온다. 잡스의 오른팔이자 파트너 호프만(케이트 윈슬렛), 공동 창업자인 워즈니악, 애플의 CEO인 스컬리(제프 다니엘스), 대학시절 여자친구 브레넌, 그리고 브레넌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 리사다. 회사 경영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자신의 성과를 인정해달라거나, 양육비를 내달라거나, 요구하는 것도 제각각이다. 이들에게 잡스는 대중의 욕구를 섬뜩할 정도로 정확히 이해하지만 동시에 인간을 불신하는, 이기적이고 오만한 천재이며, 딸에 대한 부성애란 감정을 어떻게 처리할 줄 모르는 나약한 인간이다.
영화는 막과 막 사이, 시대를 반영한 배경음악과 애플에 관한 당시 뉴스 영상, 당대 대중문화 아이콘 등을 통해 보수적이었던 1970, 80년대를 지나 개인주의의 시대인 1990년대로 향한 미국의 공기를 콜라주처럼 보여준다. 영화 ‘소셜 네트워크’ 등에서 비범한 인물의 복합적 측면을 보여주는 데 능력을 발휘한 작가 아론 소킨은 이번에도 세상을 바꾸는 비범한 개인에 대한 미국적 신화를 뻔하지 않게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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