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말 종합편성채널(종편) 4개가 한꺼번에 개국한 이후 새로운 직업군이 생겨났다. 뉴스 프로그램에 단골로 등장하는 ‘토론자 그룹(패널)’을 두고 하는 말이다. 토론자들은 언론사의 현직 기자 그룹과 언론사 밖의 전문가 그룹으로 나눌 수 있는데 후자가 새로운 직업군이다. 이들은 다시 정치평론가, 전직 언론인 및 교수, 남녀 변호사 그룹으로 분류할 수 있다.
여자 변호사 그룹 중에서는 최단비(38), 임윤선(38), 손정혜(34), 임방글 변호사(38) 등 30대 4인방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지성과 미모를 겸비했다는 점에서 ‘판타스틱 4’라고나 할까. 임윤선 변호사만 미혼으로 일과 가정, 육아 등에 쫓기는 이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게 쉽지 않았다. 가까스로 3·1절 오후에 서울 청계천로 채널A 오픈스튜디오에 모여 ‘미녀변호사들, 종편을 말하다’라는 가상 토크쇼를 열었다. 사회는 채널A ‘신문이야기 돌직구 쇼’와 ‘먹거리 X파일’ 앵커를 맡고 있는 김진 기자에게 부탁했다.
첫 질문부터 예상을 빗나갔다. 이들 모두 종편을 통해 방송에 데뷔한 것으로 짐작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최 변호사는 법률방송 ‘주홍글씨’, MBC 무한도전 ‘죄와 길’로 이름을 알렸고, 임윤선 변호사는 SBS 예능프로그램에서 노홍철의 맞선녀로, MBC ‘최강연승퀴즈쇼’에서 7연승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손 변호사도 리빙TV ‘최창호의 헬프미’, 법률방송의 ‘생방송 무료법률상담’으로 데뷔했다. 임방글 변호사만 종편 출범 이후에 ‘이름이 방송친화적’이라는 덕도 보며 MBC의 소비자 고발프로 ‘불만제로UP’에 발탁됐다.
처음으로 방송에 나와 달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느낌을 물었다.
“당시는 로펌 소속이었는데 회사는 무한도전이 오락프로여서 자칫 변호사로서 신뢰를 잃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가상 재판의 진행만 도와주면 된다는 담당PD의 설명을 듣고서 출연을 허락해 줬다.”(최단비·이하 괄호 안에서는 경칭 생략)
“로펌 소속 변호사는 업무 시간에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 최소한의 프로에만 출연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파트너 변호사가 된 뒤에야 시간 제약이 없어졌다.”(손정혜)
두 사람이 ‘업무적으로’ 대답한 것과는 달리 두 임 변호사는 신이 나서 대답했다.
“‘재밌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당시엔 로펌 소속 변호사(어쏘 변호사)로 격무에 시달릴 때여서 변호사 업무가 아닌 것은 다 재미있다고 느낄 때였다.”(임방글)
“‘바로 이거구나!’했다. 나는 ‘표현욕’을 타고난 사람이다. 그 표현 수단은 연극이기도 했고, 글쓰기이기도 했으며, 춤일 때도 있었다. 그런데 변호사는 내 이야기를 숨기고, 남의 이야기를 대신 해야만 하는 직업이다. 아주 답답했다. 그래서 방송에 나오라는 제의를 받았을 때 고마웠다. 표현욕을 충족시키며 사는 요즘, 비로소 변호사 일도 사랑하게 되었다. 내 삶의 균형을 맞춰주니까.”(임윤선)
종편에서 자주 부르는 이유를 묻자 모두 ‘겸손 모드’로 들어갔다. 그래서 여자 변호사 전체로 질문을 넓혔다. 여자 변호사들이 방송에서 많이 활약하는 이유는?
“여성 법조인 중에는 똑똑하고, 말 잘하고, 외모까지 출중한 분이 많다. 방송계도 좋아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앞으로 방송에서 활약하는 여자 변호사는 더 늘어날 것이다.”(임방글)
“변호사들은 좀 딱딱하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여자 변호사는 시청자들에게 편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게 장점인 듯하다.”(최단비, 손정혜)
“‘출제자’와 ‘제작자’의 의도를 빨리 간파해서 짧은 시간 내에 어느 정도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때문일 것이다. 인풋과 아웃풋이 안정적이라고나 할까.”(임윤선)
당사자들이 ‘본인의 가치’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위에서 나온 ‘여자 변호사’의 장점들은 모두 본인의 장점으로 생각하면 된다. 덧붙이자면 방송 경력이 꽤 길기 때문에 제작진에게 안심감을 준다나 뭐라나.
그렇다고 이들이 방송을 ‘날로’ 먹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자신들의 본업은 변호사이며, 재판이라고 강조했다. 이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아 참, 그렇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방송 준비는 생각처럼 많이는 못한다고 한다. 생방송 시사프로에 출연하는 경우가 많기에 시간 날 때마다 신문과 방송을 꼼꼼히 챙겨보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시사는 어렵다. 이들의 ‘공공의 적’은 생방송 도중 불쑥 들어오는 속보다.
자신의 방송을 자평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단점과 장점이 뚜렷하다. 잘 맞는 곳에서는 시청률이 드라마틱하게 오르지만, 잘 안 맞는 곳에서는 시청자 게시판이 온통 내 욕으로 도배가 된다.”(임윤선)
“복잡한 이야기를 쉽게 설명한다거나 목소리와 발음이 좋다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 반면 컨디션이 안 좋거나 가끔 정신이 안드로메다에 가 있을 때는 말도 더듬고 빨라지고, 해야 할 말은 안 하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런 날은 종일 마음이 무겁다.”(임방글)
“강점은 특별히 없는 것 같고, 단점은 말이 너무 빠르다는 것. 매번 천천히 하자고 다짐을 하지만 잘 안 된다. 그래서 임방글 변호사가 부럽다.”(최단비)
방송이 힘들다고 느낄 때도 적지 않다. 역시 ‘진영 논리’가 문제다. 손 변호사는 “시청자들이 나와 다른 의견을 갖고 비판할 때는 위축될 때가 있다”고 했다. 임윤선 변호사도 “양쪽 진영이 모두 비판할 때가 가장 힘들다. 임윤선의 생각은 조금도 인정하지 않고, 양쪽이 축구공 차듯 뻥뻥 차는데, 그게 꽤 아프다”고 토로했다.
그래도 방송에 나가면서 달라지는 게 있으니 힘을 얻는다. 최 변호사는 “가끔 주차장 주인이 알아보시고 주차비를 안 받는다거나, 택시기사께서 택시비를 안 받는 경우도 있어 개인 경제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손 변호사도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에서 알아보시는 분들이 늘어 쑥스럽기도 하고 책임감도 느낀다”고 했다. 임방글 변호사는 전혀 다른 얘기를 했다. “방송에 출연하기 전에는 민낯이 내 얼굴이었으나 지금은 풀메이크업을 한 ‘이 귀신같은 얼굴’이 내 얼굴이 됐다. 화장을 안 한 얼굴은 자아이탈이다.”
여기서 생계와 관련된 돌발 질문 하나. 방송 출연은 사건 수임에 도움이 되나. 로스쿨 교수인 최 변호사를 제외하고 세 명의 응답을 종합하면? “방송에 자주 나온다고 사건을 싸들고 오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사건 소개를 받을 때는 구구하게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니 간접적으로는 도움이 된다.”
종편의 뉴스 프로그램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단골 출연자들이어서 그런지 평가와 제안이 놀랄 정도로 비슷했다. 종합하면 이렇다.
장점은 생생한 날것 뉴스를 깊이 있고, 상세하게, 오랫동안 전달해 주는 새로운 포맷을 정착시켰다는 것. 단점은 작은 이슈를 너무 확대하거나 정제되지 않은 의견과 언어가 그대로 나갈 때가 적지 않다는 것. 종편의 미래에 대해서는 낙관을 하면서도 보수 편향이라는 선입견을 불식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으며,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갖췄으니 뉴스가 아닌 다른 프로그램에도 도전해 볼 만하다고 제안했다.
종편 개국 이후에 기자가 들었던 평가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이거다. “자식들이 ‘그것도 모르느냐’식으로 던지는 말에 예전에는 대꾸를 못했으나 지금은 반박할 수 있게 됐다.” 2012년 대선국면에서 들었던 말이다. 종편이 이런 평가를 받기까지에는 패널들의 개성도 주요한 역할을 했다. 근엄한 뉴스, 틀에 박힌 뉴스가 아니라 쉬운 뉴스, 친근한 뉴스를 지향한 결과이고, 변호사 그룹도 긍정적 평가를 얻는 데 많이 기여했다. 변호사들에게 종편은 ‘종일 편애하는 방송’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인터뷰를 통해 ‘판타스틱 4’의 생각은 그럭저럭 전달한 것 같다. 그런데 개성이 안 보인다. 분명 개성들이 강한데 말이다. 그래서 이렇게 표현해 봤다(본인들이 수용할진 모르지만). 꼼꼼하게 처리할 일이 있다면 손정혜 변호사를, 고민을 털어놓고 위로를 받고 싶다면 임방글 변호사를, 주변으로부터 주목받는 방법을 알고 싶다면 임윤선 변호사를, 술 한잔하며 기분을 풀고 싶다면 최단비 변호사를 만나보는 게 좋겠다.
실력은 기본이고 뚜렷한 개성까지 갖고 있는 그들은 ‘30대 여자 변호사’라는 건조한 이름으로 묶이는 걸 거부한다.
▼뉴스토론 중 北미사일 발사 속보… 미사일 종류가 뭔지 알아야지 ㅠㅠ▼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방송중 머릿속이 하얘졌을때 최단비 변호사
어느 프로에서 사건사고 뉴스를 토론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속보가 들어왔다. 북한 전문 패널을 급히 섭외해서 오는 중이니 그때까지 자리를 지켜달라고 했다. 내가 미사일 종류가 뭔지, 대공포가 뭔지 어떻게 아나. 몇 분간이 정말 길∼게 느껴졌다. 나에게 질문을 하면 어쩌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준비한 내 답변은 ‘미사일은 남북관계에 정말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그런 대답을 했다면 무식이 드러나 더 위험했을 것 같다.
△사법시험 46회(연수원 36기) △고려대 법학과 △고려대 일반대학원(상법 전공) △원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채널A 돌직구쇼, 직언직설, TV조선 박대장, 신통방통, MBN 빅5 등 출연
임윤선 변호사 국회방송에서 ‘입법데이트’를 진행할 때였다. 그날 출연자는 ‘사진 검색’으로 물의를 빚은 심재철 의원.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자 PD에게 “혼자서 이상한 사진이라도 검색하시는 것 아니에요?”라고 농을 던졌다. 곧 심 의원이 왔고, 인터뷰도 잘 마쳤다. 그런데 나중에 알았다. 심 의원이 대기실 모니터에 연결돼 있던 MC 마이크를 통해 내 농담을 똑똑히 들었다는 사실을. 뇌의 혈액순환이 멈추는 듯했다. 심 의원은 대인이셨다! 아, 이놈의 주둥이!!
△사법시험 47회(연수원 37기) △서울대 불어교육과 △버클리로스쿨 IP&IPSL과정 수료 △법무법인 민 변호사 △채널A 돌직구쇼 패널, MBC 언니가 돌아왔다, TV조선 강적들 등 MC
손정혜 변호사 어느 방송에서 생방송 중이었는데 국무총리 인선에 관한 속보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완구 총리가 사퇴했다는 뉴스와 함께 국무총리 후보자 7, 8명의 이름이 줄줄이 나왔다. 이들이 국무총리로서 적합한지를 놓고 바로 토론에 들어갔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개인의 신상 정보와 경력 정도는 알고 있어야 토론을 하든지 평가를 하든지. 어찌어찌 토론은 진행됐고, 방송은 그럭저럭 끝났다. 내 목소리는 개미 목소리였다. 자신이 없으면 개미가 된다.
△사법시험 47회(연수원 37기) △경희대 법학과 △비앤아이법률사무소 공동대표변호사 △채널A 시사인사이드, 돌직구쇼, TV조선 강적들, 신통방통, MBN 빅5, 아침의 창 매일경제 등 출연
임방글 변호사 채널A에서 오후 2시 프로에 나와 달라고 했다. 서초동 사무실에서 여유 있게 오후 1시에 택시를 탔다. 기사 아저씨가 지름길이 있다며 호기롭게 골목길로 들어섰다. 아뿔싸! 20분 후에도 택시는 사무실 앞 반대편 도로. 독촉을 해서 남산 3호터널을 빠져나왔다. 작가에게 “정각에 도착한다”고 말하고 자료에 눈을 돌렸다. 아뿔싸! 이번엔 왼쪽에 창경궁이 보였다. 동아일보가 이사를 왔나. 노메이크업으로 간신히 세이프. 방송출연 때는 여유 있게 갑시다.
△사법시험 50회(연수원 40기) △이화여대 법학과 △비앤아이법률사무소 △채널A 돌직구쇼, TV조선 법대법, jtbc 크라임씬, MBN 아침의 창 매일경제, MBC 생방송 오늘아침, YTN 이슈오늘 등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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