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기둥 뒤에서 담배 한대를 물고 있었다. 기자가 접근하자, 매니저로 보이는 사람들이 당황한 듯 앞을 막는다. “동아일보 기자”라고 이야기 한 후 유시진 대위를 코앞에서 만났다. 그의 목소리는 강모연(송혜교)에게 말하듯 부드러웠다. ‘귀’로 먹는 초콜릿이라고나 할까. “아. 그냥 가시게요. 점심이라도 드시고 가시지 말입니다.”
15일 정오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호텔 앞. 14일 종영된 KBS2 드라마 ‘태양의 후예’(이하 태후) 주인공 유시진 역의 송중기(31)가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태후’ 최종회 시청률은 38.8%(닐슨코리아 전국)에 달했고 방영 내내 국내 뿐 아니라 중국, 일본 등 아시아권에서도 화제가 됐다. ‘송중기 앓이’란 말까지 생기면서 그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대전 세차장과 고향집에 팬들이 몰려 가족들이 불편을 겪는 일까지 발생했다. 가장 핫한 스타가 된 소감부터 물었다.
“최근 홍콩에서 드라마 프로모션을 하고 팬들을 만났어요. 언론보도로 해외 반응을 듣고 있었지만 직접 몸으로 느낀 것은 처음이에요. ‘정말 많이 사랑받는 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되게 얼떨떨했고, 놀랍고 기쁘기도 하고… 책임감도 커지더군요.”
정돈된 말투, 절제된 표정이 보였다. 이날 그는 줄무늬 니트와 면바지를 입었다. 그럼에도 사복을 입은 유시진으로 보였다. 때론 거칠고 때론 자상한 미소를 짓는 그는 여성들에게는 ‘판타지 스타’, 남성에게는 ‘적’ 아닐까?
“결혼한 친구들도 저보고 많이 뭐라고 합니다.(웃음) 그런데 유시진 같은 남자가 현실에 있을까요? 판타지 같아요. 그래도 저도 유시진에게 많이 배웠어요. ‘아, 이렇게 행동하거나 말하면 여자가 좋아하겠구나’란 거. 모든 여성들이 내 남친, 내 남편에게 꼭 듣고 싶어 하는 말이 있잖아요. 유시진은 참 멋진 놈 같아요.”
‘유시진에게 한수 배웠다’는 그의 말을 듣다보니 달달하다 못해 오글거리는 ‘태후’ 속 대사들이 생각났다. 송중기 기억에 남는 ‘태후’ 대사는 무엇일까?
“사적으로도 많이 받은 질문이인데요. 사전제작 하다보니 집에서 방송을 보면서 이런 저런 것을 느낄 때가 많아요. 어제 광고 촬영 중 TV를 켜니 ‘태후’가 방송되던데, 유시진이 강모연에게 ‘졌다고 생각하지 맙시다. 어차피 제가 더 좋아하니까’란 대사가 나오더군요. 정말 좋게 들리더군요. 15회에서 ‘그 어려운 걸 제가 해냈습니다’란 대사도 와 닿았구요.”
다만 그런 대사는 ‘아무나 해서는 안 되지 말입니다’라고 여성 팬들은 항변한다. 샤방한 꽃미남에 멜로연기가 되는 송중기 만이 소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멜로 연기의 비결이요? 비결이라기보다는 대본을 중시해요. 장면과 장면, 각 회를 연결해 생각하면서 작가 입장에서 ‘왜 이런 대사를 썼을까’라고 고민합니다. 그러면 감정이 이해되죠. 평소 제 모습대로, 멜로도 웬만하면 느끼하게 하지 않으려고 하고요.”
하지만 ‘태후’가 사전 제작이라는 설명이 무색할 정도로 극 후반 스토리가 개연성이 없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사전 촬영’했기 때문에 저도 반응이 너무 궁금했어요. 중학교 동창들 집에서 함께 본 적도 많아요. 그래서 여러 비판도 잘 알고 있습니다. 조만간 김은숙 작가와 소주 한잔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그런 비판은 사실 제 권한 밖이라 뭐라고 이야기해도 오해만 생길 것 같아요. 전 제가 할 수 있는 ‘유시진’ 역할에 충실했고 만족스럽게 끝냈다고 생각합니다. 나머지는 작가, 감독, 제작진이 대답할 기회가 있을 것 같아요.”
다만 송중기는 극중 오글거리는 대사에 대해서는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김은숙 작가 대사는 취향 차이 같아요. 오글거린다다는 분들도 있고, 아닌 분들도 있고…. 그냥 저는 ‘대사에 나의 색깔로 융화시키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어요. 성격상 누군가가 단점이 있으면 제 장점으로 보완하고, 제 단점이 있다면 누군가의 장점으로 보완하면 된다고 봐요. 이 일(드라마) 자체가 ‘조직의 예술’이라고 보거든요.”
곤란한 질문도 능숙하게 답하는 모습에서 또 다시 유시진이 떠올랐다. 더구나 유시진은 몇 번 씩 총으로 쏴도 살아나는 불사조 아닌가?
“불사조 맞는 거 같아요.(웃음). 정말 많이 살아났죠. 유시진을 연기한 제 입장에서는 사실 그런 부분이 마음에 들어요. 이 드라마 장르는 멜로잖아요. 멜로를 강화시키기 위핸 설정이라고 봅니다. 실제 15회(전사한 줄 알았던 유시진이 강모연과 재회)를 집에서 봤는데 뭉클했어요. 그 장면 보면서 같이 출연한 배우들에게 카톡 메시지까지 보냈습니다.”
송중기는 ‘태후’를 계기로 한류 스타로 급부상했다.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영화 ‘늑대소년’ 등을 통해서도 인기를 끌었지만 한류스타 급은 아니었다. 순식간에 해외에서까지 알아보는 스타가 됐으니 자칫 어깨에 힘이 들어가진 않을까?
“요즘 제 머릿속에 스스로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에요. 그런데 잘 모르겠어요. 초심을 잃지 않으려는 생각도 들고, 거꾸로 그런 초심은 변해야 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상업적 배우로서의 제 그릇은 커졌는데, 제가 초심에 머물러 있다면 이를 제대로 담을 수 없는 부분도 있다고 봐요. 회사 매출도 달라졌잖아요. 초심도 변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다만 제 본질은 그대로 있어야겠죠. 한류스타는 공감이 잘 안가요. 같이 연기한 혜교 누나처럼 꾸준히 활동해온 분들이 진정한 한류스타죠. 혜교 누나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저런 선배도 계속 노력하는구나, 괜히 송혜교가 아니다’라고 느꼈죠. 연기하다보면 상대에게 무언가 주면서 연기하는 사람이 있거든요. 저는 잠깐 드라마로 인지도가 올라간 것뿐이라고 봐요.”
그릇이 커졌다는 건 그만큼 자신이 거물이 됐다는 뜻으로 들렸다. 송중기는 자칫 주변의 오해가 조심스러운 듯 설명을 더했다.
“건방지게 들릴 수도 있겠죠. 어쩔 수 없이 책임져야 하는 것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잖아요. 제가 열심히 해야 저희 매니저들도 먹고 살고, 같이 일하는 스태프들도 월급을 받을 수 있고…. 저를 응원하는 해외 팬들도 생겼고, 제 주변 분들을 절대 실망시켜드리면 안되죠. 그런 의미에서 그릇이 커졌다고 말한 겁니다. 결국 저는 배우이기 때문에 좋은 작품으로 보여드려야 한다고 봐요.”
‘13일 총선에서 투표했냐’고 묻자 송중기는 과도한 관심에 대한 고통부터 호소했다.
“솔직히 속상한 일도 있어요. 제 가족이 너무 노출되면서, 저희 집으로 찾아오는 팬들까지 생기다보니, 전 여자친구 사진까지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좀 속상해요. 제가 감당해야 할 몫인 건 알지만 가족까지 힘들어하는 건. 그런 차원에서 투표 행위는 개인적인 것이니….” 더 대답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들려 주제를 돌렸다. 최근 송중기가 박근혜 대통령과 한식문화관 개관식에 참석한 일을 물었다.
“대통령 만나니 좀 긴장을 되더군요. 저도 모르게 ‘처음 뵙겠습니다’라고 말했는데 생각해보니 군대 가기 전 어린이날 행사 때 박 대통령을 뵌 적이 있었죠. 마침 박 대통령이 ‘우리 예전에 봤었잖아요’라고 말하셔서…. 무척 죄송했습니다.”
정부 이야기가 나온 김에 ‘태양의 후예’가 군국주의를 부추긴다는 비판에 대한 생각도 물었다. “그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요. 누군가 그렇게 느꼈다면 그 의견을 존중합니다. 그렇게 비판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는 해석을 그렇게 안 해요 사명감, 책임감, 애국심이 뭘까요? 유시진처럼 누구를 구하고 작전을 수행하고. 그런 부분이 거창하게 국가라는 개념보다는 ‘약속’ 차원이라고 봐요. 그 약속이란 것이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 제 가족들, 나아가 국가, 인류의 평화가 될 수도 있고요.”
송중기도 벌써 9년 차 배우가 됐다. 자칫 꽃미남 배우로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을까?
“‘꽃미남 배우’란 타이틀은 버리고 싶지 않아요. 배우에게 외모가 주는 부분은 커요. 연기 만 잘한다고 다는 아니에요. 앞으로 피부 관리도 열심히 하고 노화 현상도 최대한 줄이려 노력 많이 할 겁니다.(웃음) 다만 ‘꽃미남’이란 이미지가 제가 맡은 배역에서 맞지 않을 땐 과감히 버려야겠죠.”
간담회는 예상보다 길게 1시간 이상 이어졌다. 송중기는 인터뷰 중 “전 연기 욕심이 많다”는 말을 3번이나 했다.
“신인시절은 다양한 역할을 해보자는 것이 목표였죠. 빨리 주연배우가 돼야겠다는 생각은 안했어요. 급히 올라가 부족한 모습을 보이기보다는 많이 배워야 한다고 봤죠. 연기 욕심이 많아서 많은 작품을 해보자는 것은 여전히 목표에요. 그런 의미에서 차기작 영화 ‘군함도’는 큰 동기 부여가 된다고 봐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꼭 해보고 싶었거든요. 개인적으로 배우 에드워드 노튼을 좋아해요. 초기작을 보면 굉장히 서늘한 모습을 보여주죠. 저 역시 제 안에 그런 면이 있다고 봐요.”
‘군함도’에서도 독립군으로 나오니 또 군인 역이 맞다고 생각하는 걸까.
“저도 제대 후 군인 역할을 할지도 몰랐어요. 그냥 스토리만 봐요. 줄거리를 보고 이후 캐릭터를 보죠. 독립군 역할이지만 유시진과는 다를 거예요. 장르건, 역할이던, 배역의 크기건 가리지 않습니다. ‘성균관 스캔들’부터 ‘늑대소년’, ‘태후’까지, 단지 그 역할이 좋아서 출연료, 분량 등을 다 떠나서 맡았던 작품들이에요. 주인공이든 아니든 저 스스로 소중하게 생각한 역할을 해야 대중들에게 피드백도 받는다고 봐요.”
배우로서 자신감이 커진 듯 보였다. 배우로써 진화된 부분을 자세히 설명해달라고 했다.
“몇일 전 ‘태양의 후예’를 보는데 방송 끝나고 바로 영화 ‘늑대소년’이 방영되더군요. 지금 봐도 잘 만들었더군요.(웃음) 늑대소년 철수와 유시진 사이에는 군대가 있어요. 군대에 있는 동안 되새긴 말이 있죠. 손현주 선배의 조언이에요. 연예인으로 살아온 저에게 ‘일반 사병과 몸을 부대끼며 2년을 지내보면 배우를 떠나 젊은 청년 송중기에게 큰 도움이 될거다’라고 하셨죠. 배우로서 얻을 것도 많을 거란 손현주 선배의 말이 정말 맞더군요. 군대에서 인간 송중기로써 배운 점이 많아요. 나에게는 스트레스인 일이 어떤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점도 알게 됐고…. 이런 것이 제 연기에 묻어나지 않나 싶어요.”
1시간 이상 진지한 인터뷰 끝에 여성 팬들이 가장 궁금해 할 질문을 꺼냈다. 송중기의 이상형은 누구일까? 최근 대한민국 남성들의 로망으로 통하는 걸그룹 AOA 설현은 공개적으로 자신의 이상형을 ‘송중기’로 지목해 화제가 됐다.
“제 이상형은 변함없어요. 현명한 여자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지 않나 싶습니다.” 여성 팬들이여. 현명해집시다. 김윤종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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