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역사’ 아이돌 영화계서 이만하면 ‘엄지 척’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5일 03시 00분


빅뱅 탄생 10주년 기념 다큐영화 ‘빅뱅 메이드’를 보고, 왕년의 젝키빠가 빅뱅빠에게…

지난달 30일 개봉한 ‘빅뱅 메이드’에는 빅뱅이 지나온 10년과 150만 명이 열광한 월드투어 콘서트 실황이 고스란히 담겼다. CGV 제공
지난달 30일 개봉한 ‘빅뱅 메이드’에는 빅뱅이 지나온 10년과 150만 명이 열광한 월드투어 콘서트 실황이 고스란히 담겼다. CGV 제공
안녕, ‘빅뱅 빠(팬을 지칭하는 인터넷 신조어)’들아. 반말해서 미안. 나도 한때 ‘젝키(젝스키스) 빠’였다 보니 반가워서, 그만. 이젠 30대에 접어든 애 엄마지만, 그래도 우리는 ‘우주적 시공간’을 넘어 이어지는 게 있잖니? ‘시그널’(tvN 드라마)의 무전기처럼.

먼저 축하해. 너희 오빠들 영화 나왔더라? 이름도 쌈빡한 ‘빅뱅 메이드’. 보자, 지난달 30일 개봉해 나흘 만에(3일 기준) 2만5000명이 넘었네. 와, 열심히들 보러 갔구나. 관객 수 10만 명 넘으면 게릴라 콘서트도 연다며? 더 분발하렴.

영화관에 앉았는데 기분이 묘하더라. 아련히 ‘응답하는 1998’. 솜털도 뽀송했던 초딩 6학년 시절이 떠올랐어. 비밀의 ‘특별 시사회’가 우리 집 안방에서 열렸더랬지. 당대 최고 아이돌(H.O.T.는 아니야!) 젝스키스가 출연한 ‘세븐틴’을 보려고 소녀 4인은 분연히 떨쳐 일어나…. 왜 비밀이었냐고? 아니, 어이없게 무려 15세 관람가였다고! 이게 말이나 되니, 흑흑. 그때 목숨 걸고 언니의 비디오테이프 훔쳐왔던 ‘꽥꽥이’는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1998년 개봉한 ‘세븐틴’은 당대 최고 아이돌 젝스키스가 출연해 큰 기대를 모았지만 흥행 성적은 저조했다. 동아일보DB
1998년 개봉한 ‘세븐틴’은 당대 최고 아이돌 젝스키스가 출연해 큰 기대를 모았지만 흥행 성적은 저조했다. 동아일보DB
영화는 어땠냐고? 솔직히 100점 만점에 ‘세븐틴’(17점)도 아까웠다. 어린 눈에도 엄청 ‘후졌어’. 개연성도 맥락도 없었어. 나중에 들은 얘기론 젝키 멤버들도 쪽대본만 봐서 뭔 내용인지 몰랐대. 게다가, 알지, 우리 수원 오빠? 발 연기의 대가. 관객이 5만2389명(서울 기준)이나 든 것도 기적이지 싶어. 그래서일까. 솔직히 너희 오빠 영화도 별 기대 안 했어. 이 나이에 ‘아이돌’은 무슨. 이미 ‘아이 돌’이 더 중요한, 아줌마가 되어서일까.

그런데 어머, 어떻게 이런 반전이. 영화보다 청심환 찾을 뻔했다. 지드래곤 왜 이렇게 멋지니. 공연 내내 근사한 퍼포먼스는 둘째. 무대를 내려와 탈진해 쓰러지는 장면에선 횡격막이 찌릿. 솔직히 관심 없던 대성까지. 도대체 이 영화가 왜 칸에 초대받지 못한 거야?

뭣보다 데뷔 10주년 작품을 다큐멘터리로 택한 영리함에 박수를. 이건 감히 아이돌 영화 20년 역사에 최고의 성과라고 ‘엄지 척’ 하고 싶다. “이게 학교니, 빌어먹을 감옥이지” 같은 모골이 송연한 대사를 내뿜던 젝키 오빠는 건드리지 말아 주렴. 2200년 배경 SF영화 ‘평화의 시대’에 지구를 대표하는 축구선수로 출연했던 H.O.T. “팬도 봐주기 힘든 영화”란 혹평을 받았던 ‘꽃미남 연쇄테러 사건’의 슈퍼주니어. 찍었다 하면 ‘흑역사’였던 아이돌 영화계에 빅뱅이 새로운 장을 열어젖힌 셈이지.

기술적 진보도 그냥 넘어갈 순 없지. 장비가 얼마나 좋던지 현장 분위기가 숨소리까지 살아 있더라. ‘레드 에픽 드래곤 6k’란 카메라는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쓰는 거라며? 미래 유망 영화기술이 집약됐다고 미래창조과학부 공무원들까지 시사회를 가졌다더군. 게다가 결정적 한 방. 스크린 옆 양 벽면에도 영상이 펼쳐지는 ‘스크린X’ 기술까지. 팬들의 야광봉이 온몸을 휘감으며 일렁일 땐 벌떡 일어나 춤출 뻔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씁쓸함도 감출 수 없었어. 이런 아이돌 영화, 결국엔 너희 같은 팬들의 지갑이 타깃일 테니. 니들도 알지? 보이그룹, 걸그룹 순식간에 훅 가는 거. 우리 오빠들 3년 만에 해체됐던 애긴 꺼내지 않을게, 흑흑.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선 오빠들 누나들 계속 보고 싶으면 돈이 있어야 한단다.

그래도 ‘빅뱅 메이드’는 이만하면 됐지 싶어. 스타성에만 기대지 않고 이리 공들였으면 돈 좀 쓸 만하지, 뭐. 지드래곤이 그랬던가. “롤링스톤스처럼 50, 60세 돼서도 무대하고 싶다”고. 그래, 이런 만듦새면 니들이 환갑 때 ‘빠’ 하고 있어도 말리지 않을게. 아이돌 회사에도 부탁 한 말씀. 제발, 요 정도는 만들어 놓고 보러 오라고 해주세요. 우리한테 돈 맡겨 놓은 건 아니잖아요.

참, 16년 만에 재결성한 우리 젝키 오빠들. 빅뱅과 같은 소속사 YG 식구잖아. 내가 뭐랬니. 우린 우주적 시공간을 넘어 이어져 있다니깐. 혹 ‘세븐틴 2’라도?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빅뱅#빅뱅 메이드#젝키#세븐틴
  • 좋아요
    1
  • 슬퍼요
    1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1
  • 슬퍼요
    1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