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훈 감독은 인터뷰 내내 진지했다. 그러다 분위기가 너무 딱딱해진다 싶으면 불쑥 싱거운 농담을 던졌다. 그가 영화 속에서 보여준 관객과의 ‘밀당’(밀고 당기기)을 떠올리게 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실제로도 굉장히 유머러스한 사람 아닐까?’
영화 ‘끝까지 간다’(2014년)와 최근 개봉 6일 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한 ‘터널’을 모두 본 관객이라면 김성훈 감독(45)을 이렇게 오해할 수 있다. 완벽한 뺑소니를 위해 시신을 어머니 관 속에 숨기는 ‘끝까지 간다’ 속 건수(이선균), 당장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익살을 떠는 ‘터널’의 정수(하정우)를 보며 관객들은 연신 웃음이 터진다. 두 영화 모두 어쩐지 웃으면 안 될 것 같은 처절하고 극한 상황이건만, 피식 웃게 된다.
그러나 영화와는 다르게 김 감독은 꽤 진지한 사람이었다. 모자를 푹 눌러 쓴 얼굴엔 웃음기 하나 없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나는 말로 웃기는 사람이 아니고 글로 웃기는 사람” “어떻게 하면 관객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사람”이라고 몹시 차분한 목소리로 본인을 소개했다.
그는 ‘끝까지…’ 이후 2년 3개월 만에 ‘터널’을 내놨다. 연이어 흥행에 성공하면서 ‘장르 비틀기의 귀재’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자칫 뻔해지기 쉬운 비리 형사, 재난 상황에 갇힌 남자 이야기를 예상을 뒤엎는 전개로 긴장감 있게 풀어나간다. 그 스타일을 유감없이 발휘해 ‘끝까지…’는 칸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고, ‘터널’은 해외 유수 영화제에 초청받았다.
그는 이런 평가에 대해 “단지 뻔한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일 뿐”이라며 “같은 얘기라도 조금 더 재밌게 표현하려 노력하다 보니 그런 것 같다”고 말한다.
“‘터널’에서 세현(배두나)은 남편의 사고 소식을 대형마트 무빙워크 위에서 접해요. 그러곤 가던 길을 거슬러 올라가며 뉴스를 다시 확인하죠. 집에서 요리하다 사고 소식을 듣고 쨍그랑 접시를 깨거나, 길 건너다 충격적인 소식을 접한 주인공 앞에 차들이 끼익하고 멈춰 서는…. 이런 건 너무 뻔하잖아요.”
그가 감독의 길을 걷게 된 것도 ‘뻔한 삶’이 싫어서다. “28세 때 군대 제대는 했는데, 보통 직장 들어가서 규격화된 삶을 살기는 싫은 거예요. 좀 더 놀고 싶었어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영화를 찍어보자고 한 거죠.”
감독이 된 후 계속 즐겁기만 했던 건 아니다. 2006년 데뷔작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으로는 흥행 실패를 맛봤고 이후 7년의 긴 공백이 있었다. 그때 그는 ‘겉멋을 버리자. 나는 안 좋아해도 관객은 좋아하겠지 하는 건방은 부리지 말자’는 뼈아픈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졌단다.
그런 고민 덕분일까. 그는 극한의 상황에 일단 주인공을 던져놓고 사건을 풀어가는 본인의 장기이자 특유의 스타일을 찾았다. ‘터널’에서도 관객들이 주인공에 대해 파악도 하기 전, 영화 시작 5분 만에 다짜고짜 터널을 무너뜨린다. “솔직히 전 그런 표현법이 제 스타일인지도 몰랐어요. 스태프가 얘기해줘서 알았지(웃음). 이렇게 작품을 찍으면서 저를 알아가는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영화를 찍고 싶은지 그에게 물었다. “그런 거 없어요! 정말로요. 저한텐 ‘놀이터’ 같은 이곳에서 즐겁게 일하고 싶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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