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완벽해 보이고 싶었다”던 그녀는 반쯤 헝클어뜨린 머리를 한 채로 카메라 앞에 섰다. 흩어진 머리카락 한 가닥조차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하는 듯했다."
인터뷰 전 화보를 진행한 기자는 촬영이 끝나자마자 그녀의 ‘나이스한 애티튜드’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보통 여자 연예인들은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들다, 아침엔 얼굴이 붓는다”며 오전 촬영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 방송인 박은지(33)는 오전 7시가 채 되기도 전부터 헤어와 메이크업 손질을 받고 카메라 앞에 섰다. 촬영장의 그녀는 한마디로 ‘물 만난 고기’였다. 아니, 분위기를 리드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꼬박 반나절 이상 소요되는 커버 촬영은 그녀 덕에 예상보다 두 시간이나 일찍 끝이 났다. 그녀의 ‘나이스함’은 인터뷰 때도 이어졌다. 준비한 질문을 ‘척’ 하고 던지면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툭’ 하고 풀어나갔다고나 할까. 가끔 서두가 긴 질문을 하면 핵심을 정리해 간추리고는 “이런 점이 궁금하신 거죠?” 하고 되묻기도 했다.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말투. 게다가 막힘도 없었다. 여자 진행자가 극히 드문 방송가에서 대세 MC로 통하는 박은지다웠다.
그녀는 일본의 글로벌 민간 기상 회사인 ‘웨더뉴스’의 웨더 자키로 처음 방송 일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1년 가까이 기상 뉴스를 전하던 그녀는 2005년 MBC 공채 기상캐스터로 국내 방송가에 발을 디디며 ‘미녀 기상캐스터’로 이름을 날렸다. 지난 2012년 프리랜서로 전향한 후부터는 보폭을 넓혀 다양한 장르의 방송 프로그램들을 소화해내는 전문 방송인으로 활약 중이다. 최근에는 SBS 인기 드라마 <질투의 화신>에도 얼굴을 비치고 있다. 드라마는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기상캐스터의 삼각 로맨스를 그리는데, 박은지는 여자 주인공인 ‘표나리(공효진 분)’를 의식하며 괴롭히는 아나운서 박진 역할을 맡았다. 극 중에선 ‘아나운서’라는 옷을 입은 그녀지만, 여주인공 기상캐스터의 모습에서 언뜻 박은지의 모습이 비친다.
▼ 요즘 출연하는 드라마 <질투의 화신>에 대한 반응이 뜨거워요.
비중 있는 역할은 아니지만 드라마가 잘된다고 하니 영광이에요. 사실 드라마 기획 단계에서 작가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거든요. 기상 뉴스를 취재하는 방식을 비롯해 제가 겪었던 여러 에피소드를 말씀드렸죠. 그래서인지 항상 설레는 마음으로 대본을 받아보고 있어요. 여자 주인공에게 더 애착이 가고요. ▼ 어쩐지 여주인공에게 은지 씨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요.
몇몇 장면들은 실제로 제가 겪었던 일들과 비슷해요. 드라마라는 특성상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극적으로 전개되긴 하지만요. 기상캐스터의 패션을 둘러싸고 ‘의상이 야하다’ ‘엉덩이 뽕 착용한 것 아니냐’ 등의 말이 나오는 장면이 특히 그래요. 한때 저도 몸에 꽉 끼는 옷을 입고 기상 뉴스를 전하다가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었거든요. 엉덩이 패드를 착용한 게 아니었는데 괜히 이슈가 되어서 한동안 속상했어요.
▼ 기상캐스터로 활동할 때 은지 씨의 남다른 의상은 늘 화제를 모았어요.
원래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았어요. 대학에서 의상디자인을 전공했고요. 기상캐스터는 방송국에 소속된 스타일리스트와 일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저는 지인 소개로 여배우의 스타일링을 담당하는 분께 의상을 부탁드렸죠. 덕분에 톱스타가 입는 고가의 의상을 입을 기회가 생겼고, 핏이 좋은 옷을 입으니 화면에 예쁘게 나오면서 자연스레 주목을 받았던 것 같아요. 다른 방송 관계자분들도 “은지 씨 스타일리스트 소개 좀 해줘” 하고 부탁하는 경우가 있었으니까요. 그땐 ‘튀게 입어야지’ 하는 생각보다는 의상으로 날씨를 표현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내일은 저처럼 입으시면 됩니다’라는 일종의 표현이죠.
▼ 블로그를 보고 놀랐어요. 패션과 뷰티에 관한 방대한 자료들을 축적했더군요.
공을 들인 보람이 있네요(웃음). 블로그는 제 취향을 고스란히 담아놓은 공간이에요. 처음엔 팬들과 소통을 하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이게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더라고요. 모르는 게 생기면 다른 블로거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그래도 모를 땐 ‘네이버 지식IN’에 질문하면서 배워나갔어요. 공부를 많이 했죠. 작년부터는 유튜브에 ‘egee beauty’라는 채널도 만들어서 저만의 뷰티 팁을 담고 있어요. 처음엔 영상을 편집하시는 분께 맡겼는데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이 전부 편집이 됐더라고요. 결국 기술을 배워서 직접 운영 중이죠. 밤을 꼬박 새운 적이 되게 많은데 제가 좋아하는 분야라서 그런지 늘 설레고 재미있어요.
▼ 책임감이 굉장히 강한 타입 같아요. 스스로 세워놓은 목표를 완수하려고 하는 강한 의지가 느껴진달까요.
학교 다닐 때부터 누군가에게 일을 맡기기보다는 직접 해서 평가받는 것에 재미와 짜릿함을 느꼈어요. 평가가 좋지 못하더라도 좌절하기보단 ‘다음엔 더 잘해야지’ 하고 덤벼드는 타입이었죠. 방송 일에 임할 때도 똑같아요. 한 번도 허투루 한 적이 없어요. 그런 순간들이 모여서 오늘의 저를 만들었고, 또 내일의 저를 만든다고 생각해요. 언젠가 “이건 박은지가 아니면 안 돼”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 축 처지고 우울한 날은 없나요.
왜 없겠어요. 단지 티를 안 낼 뿐이죠. 연예인이라면 누구나 느낄 거예요.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사람은 일이 안 들어올 때 그 시기가 가혹하게 느껴지거든요. 저 역시 힘들었던 적이 있는데 그 시기가 지나고 나서야 ‘일이 많건 적건 나는 계속 내 매력을 계발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블로그나 유튜브 같은 개인 매체를 운영하는 것도 그런 노력 중 하나죠.
▼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게 은지 씨에겐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기상캐스터는 보도국에 소속돼 있다 보니 할 수 있는 일이 날씨 방송 외에는 굉장히 제한적이었어요. 다른 일을 해보고 싶어서 고민하다가 결국 프리랜서를 선언한 거죠. 덕분에 활동 영역은 넓어졌는데,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져요. ▼ 프리랜서로 전향하고 나서 했던 가장 큰 고민은 뭐예요.
MBC 〈나는 가수다2〉에 보조 MC로 투입됐는데 객석에서 여자분들을 인터뷰하려고 하면 다들 피하는 분위기더라고요. 그때 느꼈죠. 제 이미지가 남자들이 좋아하는 캐릭터였다는 걸요. 여성분들과는 날씨 이외에 공감대가 없었던 거예요. 모두가 친근하게 대하는 김원희 선배를 보면서 부러웠어요. 일에서는 완벽해지고 싶은 게 박은지지만, 현실의 박은지는 평범해요. 마트에서 고기를 잔뜩 사다 래핑해두고 출출할 때마다 구워 먹는 식탐왕의 모습이며, 스트레스를 받으면 가까운 사람들에게 툴툴거리는 모습까지. 남들에게 보여주긴 싫지만 그게 진짜 제 모습이죠. 조금씩 친숙함을 쌓아가다 보면 언젠가 이웃집 언니같이 무엇이든 물어보고 싶은 방송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 이제는 사랑을 만나야 할 시기 아닌가요.
결혼을 해야 할 시기죠(웃음). 대부분을 스스로 해내야 속이 풀리는 성격이지만, 결혼을 한다면 제가 마음을 기대어 쉴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연예인이라는 직업 탓에 뾰족해진 저를 동그랗게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요. 아시죠? 저 책임감 하나는 끝내주는 거. ‘이웃집 언니’ 같은 모습에서 ‘이웃집 아줌마’로 진화할 제 모습이 저도 기대돼요.
인터뷰를 마치고 인사를 나누는데 박은지는 “원고를 쓰다 더 궁금한 점이 생기면 언제든지 전화하라”며 싱긋 웃었다. ‘무엇이든 물어볼 수 있는 이웃집 언니’가 되고 싶다던 그녀의 목표는 이미 완성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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