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그리고 TOP

  • 여성동아
  • 입력 2016년 9월 29일 15시 21분


일본의 떠오르는 신예 작가 코헤이 나와가 만들었다는 푸른 빛깔의 보타이를 매고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김환기의 작품 앞에 섰다. 그러자 미술에 대한 탑의 진심 어린 애정이 보였다.


아시아의 팝 아이콘 빅뱅의 탑(29·본명 최승현)이 미술품 큐레이터로 변신했다. 그는 오는 10월 3일 홍콩에서 열리는 소더비 특별경매에 큐레이터의 자격으로 참여한다. 탑은 세계적인 미술품 경매 회사 소더비와의 콜래보레이션으로 지난 1년 동안 이번 경매를 준비해왔다. 소더비가 엘튼 존, 에릭 클랩튼 등 팝의 거장들과 함께 경매를 진행한 적은 있지만, 아시아의 아이돌 스타와 진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9월 19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는 탑과 소더비 스페셜리스트들이 함께하는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소더비 아시아 의장인 패티 웡은 “단순히 팝 스타라는 이유로 탑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탑이 SNS로 자유롭게 정보를 얻는 ‘젊은 콜렉터’라서 협업하게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술품 경매에 팝 아이돌을 내세워 이용한다는 시선을 불식시키기는 어려웠다. 실마리를 찾은 건 오히려 탑이었다. 당초 주최 측은 기자들의 질의응답 없이 간담회를 마무리할 계획이었으나, 그는 자청해 기자들의 질문에 시종일관 진지한 표정으로 미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저처럼 어린 콜렉터를 믿고 프로젝트를 추진해주신 것에 감사하고 영광스럽습니다. 어려운 여건에서 창작하는 예술가를 돕고자 하는 마음에서 한 작품 한 작품 신중하게 골랐습니다.”

그가 경매를 위해 직접 선택한 작품은 모두 28점. 최소 추정가만 1백30억(9천만 홍콩달러)원에 달한다. 탑은 앤디 워홀, 키스 해링 같은 서양 팝아티스트들의 작품 옆에 김환기· 백남준 등 한국 작가의 작품들을 나란히 걸었다. 여기에 아시아의 떠오르는 신진 작가들의 작품도 포함시켰다.

“아이 같은 단순한 마음으로 작품을 바라봤어요. 유명한 작품이라고 무조건 선택한 게 아니라 순전히 제가 갖고 싶고, 또 영감을 주는 작품들 위주로 골랐습니다. 예를 들어 ‘장 미셸 바스키아’ 작가라고 하면 왕관이 있는 그림들을 떠올리지만, 제 취향에는 맞지 않았어요. 왕관 그림은 없어도 제게 긍정적이고 발랄한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작품을 선택했죠.”


그는 어릴 적부터 이것저것을 수집하는 것이 취미였다. 4세 때부터는 블록을, 커서는 운동화를, 요즘은 디자인 작품들과 유화를 모으고 있다. 작년 ‘리움’에서 열린 양혜규 개인전에는 그가 모은 의자 컬렉션이 소개되기도 했다. 사실 그는 상당히 예술적인 환경에서 자랐다. 그의 외조부의 외삼촌은 현대 미술의 거장으로 꼽히는 김환기 화백이고, 이모부의 아버지는 한국 근대 미술을 대표하는 이인성 화백이다. 어머니와 이모들도 모두 미술에 조예가 깊었다. 그는 이번 경매를 위해 마련된 도록의 서문에서 “가족들은 내가 미술과 관련된 아티스트가 되길 바랐지만 나는 직접 그리기보다는 작품을 보는 것이 더 좋았다. 내가 뮤지션이 되는 것도 그다지 반기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했다. 음악으로 아주 성공해서 그들의 작품을 모두 사야겠다고”라고 속내를 밝히기도 했다. 이번 경매에는 탑에게 남다른 영향을 끼쳤을 김환기 화백의 작품 한 점도 출품됐다.

“어려서부터 김환기 화백의 작품은 제게 많은 영감을 줬기 때문에 이번 프로젝트에도 꼭 넣고 싶었어요. 소더비의 수많은 관계자들께서도 그의 작품을 넣는 것이 이번 경매에 큰 의미가 있을 거라고 말씀해주셨고요. 김 화백이 1968년에 쓴 일기장에는 이런 글이 담겨져 있어요. ‘선이냐 점이냐. 나는 점이 더 개성적인 것 같다.’ 그 후로는 본격적으로 점화를 그리기 시작하셨고, 그의 대표작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가 탄생했죠. 제가 이번 경매를 위해 고른 회화 ‘비상(flight)’은 미니멀로 가기 직전인 1960년대 초에 그려진 작품이에요. 저는 여기에 쓰인 김 화백의 블루톤을 무척 좋아해요. 김 화백은 ‘내 회화의 블루는 서양의 블루가 아닌 청색’이라고 말했어요. 예전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는데 계속 접하고 공부하다보니 이해가 되더라고요. 그 외에도 한국의 도자기와 하늘, 그리고 새를 표현한 것에서 고국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는 것 같아 무척 마음에 들어요.”

이번 경매를 통한 수익금의 일부는 아시아의 신진 예술가를 후원하는 아시아 문화위원회(Asian Cultural Council)에 기부될 예정이다. 미술품을 거래하는 경매에 참여하는 것을 고민하던 탑이 개런티 없이 재능 기부 형식으로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것도 이 때문. 일본의 유명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와 코헤이 나와도 학생 시절 ACC로부터 장학금을 지원받았다. 탑과 깊은 교류를 나누고 있는 두 작가도 이 소식을 듣고 흔쾌히 경매에 자신들의 신작을 내놨다. 코헤이 나와의 ‘PixCellating T.O.P(DOOM DADA)’와 무라카미 다카시의 ‘To sleep, or not to sleep-that is the question’은 모두 탑과의 콜래보레이션으로 만들어진 작품들이다.

“무라카미 다카시의 참여가 확정된 후 바로 다음 날 제가 쓰던 베개를 세탁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보내줬어요. 베개 위에 무라카미의 대표 아이콘인 웃는 꽃 그림을 그려서 아크릴 박스에 넣어 보내달라고 했죠. 피카소의 작품이 유행하던 1910년대에 전시에 출품하려다 거절당했던 마르셀 뒤샹의 ‘샘’이라는 작품을 오마주해보고 싶은 마음에서 만들게 됐어요. 어린 제가 현대 미술에 던진 귀여운 반항인 셈이죠(웃음).”

기자간담회를 마치고 난 후 그는 기자들과 함께 프리뷰 전시 하이라이트 공간에 한참 머물렀다. 블랙 슈트에 일본의 유명 조형예술가 코헤이 나와가 만들었다는 푸른 빛깔의 보타이를 맨 그가 김환기 화백의 작품 앞에 섰다. 미술을 향한 자신의 순수한 사랑을 증명이라도 해보이려는 것처럼 말이다.

“김환기 화백의 일기장에서 ‘다른 거장들의 회화 안에는 음악이 있는 것 같소. 나는 어떤 노래를 부를까요. 나는 그 노래를 계속 찾아갈 것이오’ 라는 글을 봤어요. 미술을 하는 분이 회화 작품 안에서 음악을 느꼈다는 것이 감동적으로 다가왔죠. 저 역시 미술로부터 영감을 받아 그것을 온 몸으로 표현하는 사람이니까요. 미술은 음악과 마찬가지로 그리 다가가기 어려운 것이 아니에요. 작품을 보며 느끼고 싶은 감정을 느끼면 되는 거고, 또 그것을 표현한 것이 다시 미술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꼭 아티스트를 꿈꾸는 친구들이 아니더라도 저처럼 젊은 친구들이 작품을 통해 아름다움과 감동을 느끼면 좋겠고, 앞으로도 이런 프로젝트들이 활발히 진행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진 김도균
사진 제공 홍장현
디자인 김영화

editor 정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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