甲에서 乙로 내려온 극중 주인공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13일 03시 00분


재벌 2세 -의사 -변호사 가고… 평범해진 드라마속 직업

최근 드라마 속 주인공으로 안쓰러운 처지의 평범한 인물이 늘어나고 있다. 위쪽부터 ‘혼술남녀’의 노량진 학원강사, ‘질투의 화신’의 비정규직 기상캐스터, ‘우리 갑순이’의 공무원 준비생 커플. tvN·SBS 제공
최근 드라마 속 주인공으로 안쓰러운 처지의 평범한 인물이 늘어나고 있다. 위쪽부터 ‘혼술남녀’의 노량진 학원강사, ‘질투의 화신’의 비정규직 기상캐스터, ‘우리 갑순이’의 공무원 준비생 커플. tvN·SBS 제공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보면서 화려한 주인공의 세계처럼 자신의 현실보다 더 나은 삶을 꿈꾼다. 돈을 물 쓰듯 하면서도 여자에게 다정다감한 재벌 2세, 흰 가운을 입고 생명을 살리는 의사, 의뢰인을 위해서라면 온갖 고된 일도 마다하지 않는 정의로운 변호사 등 ‘비범한 인물’이 대부분이다. 최근 방영된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조금 다르다. 평범한 ‘을(乙)’을 전면에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재벌 2세, 실장님, 의사, 변호사 등 ‘대리만족형’보다는 ‘공감형’ 주인공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tvN ‘혼술남녀’의 주인공은 변두리 입시학원에서 노량진 학원가에 갓 입성한 신입 강사 박하나(박하선)다. 그는 ‘학생 수는 곧 능력’으로 통하는 노량진에서 스타 강사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살아남기 힘든 미생(未生)이다. 극 중 27세인 그는 “이 나이가 되면 버젓한 직장인이 돼 있을 줄 알았는데 불안하긴 마찬가지”라며 신세를 한탄한다. 남자 주인공도 스타 강사이긴 하지만 교수의 꿈을 이루지 못해 좌절한 상처가 있다.

 뉴스의 말미를 장식하는 기상캐스터도 드라마 속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SBS ‘질투의 화신’ 속 기상캐스터 표나리(공효진)는 아름다운 외모에 화려한 옷차림을 한 방송인이 아닌 회당 7만 원의 수당, 100만 원가량의 급여를 받는 비정규직 방송국 근로자다. 정규직이 받는 파란색 출입증 대신 비정규직을 뜻하는 빨간색 출입증을 목에 건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나를 무시하는 이 원수 같은 방송사에서 한 푼이라도 더 뜯어낼 거야.”

  ‘질투의 화신’은 평균 시청률 12.3%(닐슨코리아)를 기록하며 수목드라마 중 시청률 1위를 차지하고 했다. 해당 드라마 관계자는 “평범하고 소박하지만 직업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는 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우자는 게 기획 의도”라며 “화려한 모습보다는 현실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인물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SBS 주말드라마 ‘우리 갑순이’의 남녀 주인공도 모두 공무원 시험 준비생으로 부모에게 얹혀 산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에 대해 “화려한 TV 속 세상을 보면서 느꼈던 자괴감에 대한 응답”이라고 지적했다.

 박상주 한국드라마협회 사무국장은 “고용 불안, 헬조선 등 사회적 분위기 탓에 공감형 드라마를 찾는다”며 “시청자들은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은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희망을 찾는 것을 보며 위안을 얻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을’의 처지에서 부조리한 사회 현실에 분노하는 여론이 높을수록 이에 호응하는 저항·분노형 캐릭터가 ‘팔리는 아이템’이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은영 대중문화평론가는 “그동안 드라마가 다루지 않았던 청춘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건 분명 대중의 호응이 있기 때문”이라며 “사람들의 공감의 기저에는 저항과 분노의 감정도 녹아들어 있다”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혼술남녀#질투의 화신#우리 갑순이#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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