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리어프리 영화제 여는 김수정 대표
‘영화 키즈’ 미련 남아 대학원 공부… 의미있는 영화 고민하다 뛰어들어
김수정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대표(46)는 초등학생 시절 친구 덕에 많은 영화를 접할 수 있었다. 대구 중구 교동의 친구 한옥 집에는 방 2개를 터서 만든 비디오테이프 창고가 있었다. 친구 아버지는 일본에서 비디오테이프를 수입해 한국에 유통하는 일을 했다. 집 바로 뒤에 있던 친구 아버지의 사무실에는 비디오를 볼 수 있는 작은 시사실이 있었다. 김 대표는 이 시사실을 놀이터처럼 드나들었다.
시사실에서 소녀들은 서로 팔짱을 끼고 앉아 ‘캐논볼’이나 ‘사제출마’ 등 청룽(成龍) 영화를 주로 봤다. 공포영화의 고전인 ‘엑소시스트’도 이곳에서 처음 봤다. 자막도 없는 원본이었지만 영화가 끝난 뒤 부모님이 찾으러 올 때까지 시사실에서 공포에 달달 떨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친구 손 붙잡고 영화를 참 많이도 봤죠. 당시 영화를 보며 짜릿했던 기억은 많았지만 그때만 해도 영화판에서 밥 먹고 살 줄은 몰랐죠.”
김 대표는 이화여대 과학교육과에서 화학을 전공했다. 졸업 뒤엔 화학 전공과 관련된 대학원 입학 준비도 했지만 “이 길이 내 길이 맞나” 하는 고민이 떠나지 않았다. 초등학생 때부터 극장을 기웃거렸던 기억으로 영화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했다.
“처음엔 대학원 안 가고 영화 특수효과 회사에서 일하려 했어요. 그런데 삼성영상사업단에서 일하던 언니가 특수효과는 남자들이 하는 일이라며 반대했죠. 차라리 영화를 정식으로 공부해보자는 마음으로 동국대 대학원 영화과에 들어갔습니다.”
대학원을 졸업한 김 대표는 코아아트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아트선재센터에서 일하며 경력을 쌓았다. 주로 프로그램 기획과 홍보 업무를 맡았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원에서 함께 공부했던 학우들과 만난 자리에서 김 대표는 일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선후배들과 ‘우리가 원하는 영화는 무엇일까’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어요. 나이가 들었을 때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으면서 영화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언지 고민했죠. 그러다 배리어프리 영화를 떠올렸어요.”
배리어프리(Barrier Free)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나 노인이 건물을 편하게 이용하도록 계단이나 문턱 등 장애물을 최소화한다는 뜻으로, 주로 건축업계에서 쓰이는 말이다. 김 대표는 이를 영화에 도입하기로 했다. 영화의 화면을 음성으로 설명해주거나 대사와 모든 소리 정보를 한글 자막으로 넣어 시각·청각 장애인을 위한 전용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다.
배리어프리 버전으로 만든 영화가 모이면 1년에 한 번 영화제를 열었다. 올해 배리어프리 영화제는 10일부터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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