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관상’의 제작사와 연출자 한재림 감독의 소송이 영화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남기고 있다.
많게는 100억 원 이상의 돈이 투입되는 영화 한 편을 만드는 과정에서 총 지휘자인 감독에 부여된 책임이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고민과 문제를 제기했다는 사실에서 의미를 더한다.
2013년 9월11일 개봉해 누적관객 913만 명을 동원한 ‘관상’은 한국영화에 사극 바람을 일으킨 동시에 ‘역학’을 매력적인 대중문화 콘텐츠로 주목받게 한 출발이 된 작품이다.
지금도 IPTV 등 부가판권 시장에서 인기를 얻는 ‘관상’은 흥행 이후에도 영화계에 새로운 이슈를 던지면서 주목받고 있다.
○ 법원, 한재림 감독의 추가 5000만원 요구 ‘기각’
서울고등법원(제8민사부)은 17일 ‘관상’의 제작사 주피터필름이 한재림 감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를 기각했다.
동시에 법원은 한재림 감독이 제작사에 요구한 추가 흥행성공보수금 청구 역시 기각했다. 법원이 어느 한 쪽의 편도 들어주지 않은 셈이다.
이번 소송은 ‘돈 갈등’이 아니다. 영화 제작에 있어 제작사와 감독이 계약서에서 합의한 약속대로 서로에게 부여된 책임을 지켜야 한다는 문제 제기다.
문제의 발단은 약속된 촬영 기간이 지연되면서 시작됐다.
‘관상’은 당초 촬영 기간을 ‘4~5개월’로 정하고 출발했다. 하지만 촬영이 늦어지면서 기간은 7개월로 늘어났다. 이에 따른 추가 비용 15억5000만원이 발생했다.
사실 영화 제작 현장에서 ‘촬영 지연’과 ‘제작비 추가’는 비일비재한 문제다. 하지만 그에 따른 책임은 전적으로 제작사의 몫이 된다. 이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관상’ 제작사가 법에 판단을 맡긴 이유다.
제작사는 촬영 전 한재림 감독과 체결한 ‘감독고용계약’을 기준 삼아 “감독이 계약서에서 정한 예산 및 일정 준수 의무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한재림 감독은 제작사가 약속한 행성공보수금(제작사 수익 중 2%)을 요구하는 소송으로 맞섰다.
1심 판결에 따라 제작사는 지난해 3월7일 한재림 감독에 흥행보수금 1억8000만원을 지급했다.
하지만 제작사는 손해배상에 대한 책임만은 다시 묻겠다면서 항소를 진행했고, 한재림 감독 역시 흥행보수금의 책정 범위를 확대 적용해 달라며 5000만원을 추가 요구했다. 17일 법원이 내놓은 판결은 양 측의 주장을 모두 기각한 것이다.
○ 한국영화 제작 시스템 돌아보는 계기
영화계에서는 승·패소 여부를 이번 재판 진행된 사실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영화 촬영 현장에서 불거지는 리스크에 대한 책임을, 작품에 참여한 핵심 주체들이 나눠 맡아야 한다는 주장을 처음 공론화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화 제작사들 사이에서는 이번 소송이 향후 한국영화 제작 환경을 긍정적으로 이끄는 기준점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는다.
한 영화 제작자는 18일 “시간과 예산을 철저히 안배해 오차를 줄이는 할리우드 시스템에 공감하고 부러워하면서도 정작 한국영화 현장에서는 제작비 초과 등 리스크는 전부 제작사의 몫이 된다”며 “작품을 완성하는 데 참여한 다양한 주체가 책임감을 나눠 가져야 한다는 공감대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사실 ‘관상’ 제작사가 소송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일부에서는 반대의 여론이 존재했다. 영화가 이미 흥행했고, 제작사도 전혀 손해를 입지 않은 점을 거론하며 ‘좋은 게 좋은 것 아니겠느냐’는 반응도 나왔다.
하지만 이런 반대 여론을 감수하면서까지 제작사가 소송에 돌입한 이유는 ‘부당한 관행을 바로 잡겠다’는 의지다.
이런 뜻을 분명히 하기 위해 ‘관상’ 제작사 대표는 소송에 돌입하기 전 아름다운재단에 영화 흥행 수익 50억원을 먼저 기부했다. 이는 아름다운재단의 단일 기부액으로는 최고가다.
제작사 주피터필름은 18일 “영화 제작사가 존폐를 걸고 진행하는 영화 제작 사업에 있어 영화감독은 제작비나 흥행 실패에 대한 어떠한 금전적인 책임도 부담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예술성, 작품성을 이유로 약속된 계약 계약상 의무를 위반하는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건전한 한국영화 발전을 위한 초석을 마련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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