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공효진의 일탈

  • 여성동아
  • 입력 2017년 4월 14일 13시 29분


드라마에서는 늘 캔디 같은 모습으로 다가오지만 스크린에서 공효진은 결이 다른 캐릭터를 선호한다. 최근 개봉한 영화 <싱글라이더>에서도 그랬다. 그것은 그녀에게 새로운 도전이자 나름의 일탈이며 ‘힐링’의 기회이기도 하다.


1999년 영화 <여고괴담2>로 연예계에 데뷔한 이후 배우 공효진(37) 은 스크린보다 TV 드라마로 많은 사랑을 받으며 정상의 자리를 지켜 왔다. 그녀의 가장 큰 매력은 ‘공블리(공효진과 러블리를 합친 말)’라 는 별명이 말해주듯 사랑스러움에 있다. <최고의 사랑> <주군의 태 양> <질투의 화신>은 ‘꾸밈없고 소탈한’ 그녀의 매력이 빛을 발한 대 표적인 드라마였다.

이런 그녀가 스크린에서 전혀 다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영 화 <미씽: 사라진 여자>(이하 <미씽>)에서는 아픈 상처를 간직한 중 국인 보모 역으로 열연한 데 이어 2월 22일 개봉된 <싱글라이더>에 서는 증권회사 지점장인 남편 재훈(이병헌)의 권유로 아들과 함께 호 주에서 생활하는 우아한 주부 수진 역을 맡은 것.

영화는 안정된 삶을 살던 재훈이 부실채권 사건으로 나락으로 떨어진 뒤 가족을 찾아 호 주로 떠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이 시대 가장들의 외로움과 고뇌를 대변한다.

공효진 씨의 아버지가 영화를 보고 눈물을 많이 흘리셨다고 들었어요.
이번 영화는 3050세대 남자들이 깊이 공감할 만한 내용이라 감정이 더 북받치셨던 것 같아요.
아버지도 저를 비롯한 가족들을 호주에 보 내고 기러기 아빠로 지내신 적이 있거든요. 당시의 외로운 상황과 감 정이 생각나 진짜 슬프셨대요.

어머니도 호주에서 지내실 때 녹록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저와 동생을 데리고 호주로 가서 자리 잡느라 알게 모르게 많이 고생 하셨어요. 엄마를 생각하면 그때 혼자 정리할 수 있는 짐이 아니었는 데 어떻게 이사했을까 싶고, 영어도 잘 못 하는 데다 호주는 자동차가 우리와 달리 좌측통행하는 나라여서 저희를 학교에 바래다주시며 종 종 애를 태우셨던 기억이 나요. 여자는 아이를 키우면 용감해진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웃음).

수진이라는 인물을 어떤 감정으로 연기했나요.

남편도, 아이도 없어 수진의 감정을 잘 표현해낼 수 있을까 싶었는데 감독님이 “수진은 ‘백화점 식품관에서 장 보고 밥 먹는 그런 여자’일 것”이라고 힌트를 주셔서 이미지를 떠올리기가 쉬웠어요. ‘예중·예 고를 거쳐 음대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한 뒤 조건 맞춰 선봐서 결혼한 여자,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취미 생활을 즐기는 여유로운 엄마’요.

연기하면서 힘든 점은 없었나요.
딱 붙는 터틀넥 톱을 입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 바이올린을 닦는 것이 쉽지 않더라고요. 특히 수진이 호주에서 시립교향악단 오디 션을 보러 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신을 찍을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진짜 바이올리니스트처럼 손을 떨며 연주하는 흉내를 내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바이올린 지도 선생님이 악기를 조율하 는 모습이라도 멋스럽게 해보라며 열심히 가르쳐주셨는데, 다행히 그 장면은 그럴듯하게 나왔더라고요(웃음).

영화가 이병헌 씨 중심으로 흘러서 서운하진 않았나요.
당연하다고 여겼어요. 이 영화는 제가 돋보이기보다 남자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하기 때문에 제 캐릭터가 두드러 져서 그 흐름을 방해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큰 부담 없이 편하게 묻어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웃음).

같은 배우로서 이병헌 씨의 연기는 어땠습니까.
과연 ‘연기의 신’이시더라고요.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려 하기보다 감독님과 의견을 교환하면서 전체적인 조화에 신경 쓰는 모습도 무 척 겸손해 보였고요.

호주 유학파가 영어를 못 하는 척 연기하는 것도 고역이었겠어요.
첫 촬영을 호주에서 시작했는데, 아무리 20년 만에 갔어도 3일 있으 면 입이 풀리고 현지인과 대화가 가능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열흘이 지나도 영어가 쉽게 나오지 않더라고요. 간단한 대화는 괜찮았는데 연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는 크리스(극에서 공효진이 호주에서 사귄 동네 친구)가 제게 말을 시키는 게 피곤했어요. 크리스가 굉장 히 유머러스한 사람인데, 웃을 타이밍이 맞나 계속 생각해야 했거든 요. 그럼에도 그 친구가 제 이야기를 다 들어줬어요. 참 친절했죠. ‘미 드(미국 드라마)’를 보면서 영어를 다시 익혀야겠어요.

영어를 열심히 배워서 해외에 진출해볼 생각은 없나요.
이병헌 선배에게 많은 에피소드를 들었는데,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연기한다는 건 정말 보통 힘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배 가 ‘거기서는 나도 신인이야’ 하며 얘기하실 때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그 힘든 과정을 다 견디고 해외 무대에서 꾸준히 활동하 시는 걸 보면 제가 다 뿌듯해요.

호주에서 살았던 동네도 다시 가봤나요.

일부러 찾아가진 않았어요. 20년이 지나니까 다 변해서 여기가 거기 였나 싶은 데도 많고, 이왕이면 새로운 곳에 가보고 싶더라고요. 엄 마는 호주에서 지낸 시간을 다 기억하시던데 저는 기억이 또렷하지 않아요. 그땐 추억에 연연할 나이가 아니었고, 얼른 어른이 되고 싶어하던 때여서 그런가 봐요(웃음).

언제 호주로 유학을 갔나요.

16세 때요. 당시 한 학년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해서 같은 반 호 주 친구들이 저보다 어렸어요. 사춘기여서 예민했고 성격도 소극적 이어서 학교생활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죠. 좀 더 적극적으로 친구 를 사귀고 영어를 배웠다면 지금도 호주 친구들과 SNS로 연락하고 여행도 가고 그랬을 거예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친했던 친구들과 연 락이 다 끊겼어요.

그때는 어떤 직업을 꿈꿨나요.
초등학교 때부터 제가 유달리 옷을 좋아했다고 엄마가 그러시더라고 요. 양말을 잘라서 민소매 원피스 모양의 옷을 만들어 인형에게 입히 고, 종이 인형 놀이도 엄청 좋아했대요. 호주에서 유학할 때도 패션 공부를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호주는 패션과 전혀 관련이 없더라고요. 잘못된 선택이었죠.

그래서 뉴욕으로 다시 이사를 가려다가 외환 위기 사태가 터지는 바람에 한국으로 돌아온 거예요. 한국 고등학교 에 복학하려고 기다리다 우연히 모델 에이전시 관계자의 눈에 들어 모델 일을 시작하게 됐고요. 연예계에 관심도 없었고 저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는데, 그 관계자가 “키가 몇이니?” 하 고 물으면서 오디션을 보러 오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시작한 잡지 모델 활동이 연예계와 연을 맺는 발판이 됐죠.


감각적인 패셔니스타가 된 노하우 좀 알려주세요.

옷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해요. 관심이 많아야 많이 보고, 많이 입어 보고 도전도 해볼 수 있거든요. 여러 가지 옷을 입어봐야 자신의 체형에 어울리는 스타일도 찾을 수 있고요. 그런데 사람들은 다양한 시도 를 해보지 않고 ‘난 앞가르마가 안 어울려’ ‘앞머리가 없으면 안 돼! ’ 하 는 식으로 스스로 제한을 두죠. 그런 제약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워 지면 훨씬 더 멋쟁이가 될 수 있는데 말이죠. 유행만 따라가니까 다 똑같아지는 거예요. 용감해야 패션 센스가 좋아질 수 있어요.

영화보다 드라마 팬들의 충성도가 높아 보여요.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은 저라는 배우에 대해 관대해요. 심지어 <질투의 화신>의 표나리처럼 양다리를 걸치는 여자일지언정, ‘역시 잘하네! ’ ‘어떤 상대 배우와 호흡을 맞춰도 잘 어울려! ’ 하고 제게 지 지를 보내주시죠. 하지만 영화는 덜 관대하다고 생각했어요. 스코어 가 그걸 말해주더라고요. 관객에게 제 선택을 이해시키기도 힘들었 고요.

<러브픽션>(2012)에서 왜 ‘겨털(겨드랑이 털)’이 나오게 했느 냐고 불평하시는 분들이 꽤 있었거든요. 그런데 <미씽> 이후로는 제 가 어떤 캐릭터를 맡든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제 뜻을 헤아려주신다 는 느낌이 들어요. <미씽>에서는 나쁘게 볼 수도 있는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제가 영화를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바가 관객에게 고스란 히 전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이번 영화도 관객이 공감해줄지 걱정이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제 선택을 이해해주시지 않을까 생각해요.

드라마에서 늘 선하고 꿋꿋한 캐릭터를 연기하는데, 나름의 이유가 있나요.
드라마 시청자들이 제게 늘 관대하니까 그분들이 원하는 걸 보여주 고 싶어요. 그래서 항상 긍정적인 에너지나 희망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는 드라마를 선택하죠. 대신 너무 착하고 모범적이고 이상적인 인 물을 연기해서 가끔은 지칠 때도 있어요. 모든 걸 용서하고 참아내는 역할을 할 땐 ‘이런 사람이 있을까? 난 못 참을 것 같은데! ’ 하며 저 자 신에게 짜증을 내기도 해요. 특히 <질투의 화신>의 이화신 캐릭터는 정말 싫었어요. 그런 데서 오는 답답함을 드라마가 끝난 뒤 머리를 과 감히 자르거나 영화에서 기존의 이미지와 다른 캐릭터에 도전하는 걸로 푸는 것 같아요(웃음).

앞으로 어떤 아내, 어떤 엄마가 되기를 꿈꾸나요.
결혼과 육아는 현실이라고 생각해서 꿈을 꾸지 않아요. 친구들이 꿈 꾸지 말고 운명을 받아들이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어린아이를 왜 그 렇게 많은 학원에 보내느냐고 물으면 친구들이 비웃어요. “나중에 너 민망해진다. 말하지 마라” 하면서요. 그 친구들에게 호언장담했어요. “아들이든, 딸이든 4~5세 때부터 서핑을 가르치겠다”고요. 서핑 대회에서 1위 하는 사람들은 5세 때부터 서핑을 시작했더라고요. 7세 에 시작한 1등은 없대요. 학교에 다니기 싫으면 강원도 양양에 가서 서핑을 배우라고 할 거예요. 남자아이면 헤어스타일을 단발머리로 기르게 하고 싶어요.

다음 작품에서도 엄마 역할에 도전할 건가요.
아역 배우와 촬영할 때는 포기해야 하는 게 많더라고요. 제 감정이나 컨디션보다 아이의 그것이 더 중요하거든요. 다음에는 오롯이 제 컨 디션이 최상으로 발휘될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어요.


사진제공 워너브라더스코리아 디자인 김영화

editor 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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