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라드 말고 다른 음악도 할 줄 아는 가수로 이별 노래만으론 부족…인생 얘기 많이 담아 남친 조정석이 만들어준 곡도 앨범에 실었죠
노래의 수명은 짧고, 트렌드는 종잡을 수 없이 빠르게 바뀐다. 장르의 쏠림현상은 더욱 심화하고 있다. 이런 가요계에서 ‘15년차 여성 솔로가수’가 존재감을 갖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여자가수는 남자가수처럼 오랫동안 지지해주는 열성 팬도 적다.
최근 5집 ‘스트로크’를 발표한 거미(박지연·36)는 ‘친구라도 될 걸 그랬어’ ‘기억상실’ ‘미안해요’ 등 다양한 분위기의 히트곡을 가졌다. SBS ‘보컬전쟁:신의 목소리’, MBC ‘일밤-복면가왕’ 등 음악경연프로그램과 ‘태양의 후예’ ‘구르미 그린 달빛’ 등 드라마 OST로도 대중에 친숙해졌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15년을 ‘버텨온’ 거미는 예능프로그램과 드라마로 얻은 대중성을 동력 삼아 통속적인 발라드로 ‘꽃길’을 걸을 수 있겠지만, 그는 자신의 길을 택했다. ‘스트로크’는 9년 만에 낸 정규앨범이고, ‘솔의 여왕’ ‘R&B 여제’라는 수식어에 부합하는 듯 진한 솔이 담긴 노래들이 많다.
“15년째 활동 중인데 내 색깔이 담긴 정규앨범을 안 낸다는 게 마음이 무거웠다. 책임감과 의무감이 있었다. 발라드에 안주하지 않고 여러 장르를 담아보려 정규앨범을 기획했다.”
앨범 제목을 ‘스트로크’(stroke)로 지은 것도, 자기 색깔로 승부해야 한다는 의지다. ‘스트로크’는 (글·그림의)‘획을 긋다’, ‘품다’란 뜻이다.
“안정적으로 발라드만 할 수 있고, 그런 걸 원하시는 분도 있지만 나는 이렇게 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상황(트렌드)을 좇아가다보면 내 음악을 못하고 좋은 음악도 못 들려줄 것 같아 오히려 불안했다.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또 다양한 음악을 찾는 사람을 위해서라도, ‘여자가수가 이렇게 다양한 음악을 할 수 있구나’ ‘음악으로 대중을 끌고 갈 수 있구나’ 하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음악으로 획을 긋고, 음악으로 대중을 품고 싶다.”
거미가 획을 긋는 작업에 여러 ‘남자’들이 도왔다. 리쌍의 길이 앨범의 총괄 프로듀서를 맡아 타이틀곡 ‘아이 아이 요’를 비롯해 다수의 곡을 만들었다. 오랜 친구인 휘성은 자작곡 ‘러빙 유’를 선물했고, 하림은 ‘남자의 정석’에 코러스로 참여했다. ‘나갈까’는 남자친구인 조정석이 작곡하고 기타까지 쳤다.
“(조정석은)음악적 재능이 뛰어나고 관심도 많아 늘 내가 음반 작업할 때 모니터링을 해준다. 평소 만들어둔 곡인데, 이번 앨범에 맞을 것 같아서 수록하게 됐다.”
평소 이별의 정서를 담은 노래를 많이 부른 거미의 이번 앨범에 인생 이야기가 많은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다양한 연령대 팬들이 공연장을 찾은 뒤 집으로 돌아갈 때 가슴에 노래 하나쯤 남겨드리고 싶은데, 이별 노래로는 좀 부족한 것 같았다.”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자신의 음악을 하고, 또 ‘연애’보다 ‘인생’을 노래할 수 있는 건 베테랑의 여유로 보이지만 그는 “음악의 위대함을 새삼 느꼈다”고 했다.
“자만하거나 겸손하려 하지 않은 적 없었지만, 그래도 ‘나도 이제 베테랑이지 않느냐’는 생각이 있었나보더라. 이번 앨범 작업하면서 음악엔 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고 노력한다고 되는 게 음악이 아니다. 더 많이 경험하고 시도해봐야겠다는 생각이다. 이런 걸 느끼지 못했다면 비슷한 감성, 똑같은 기교로 노래하지 않았을까. 이번 작업에 감사하다.”
● 거미
▲본명 박지연 ▲1981년 4월8일생 ▲2000년 동덕여대 실용음악과 졸업 ▲2003년 ‘그대 돌아오면’으로 데뷔 ▲‘기억상실’ ‘아니’ ‘착한아이’ ‘미안해요’ 등 발표 ▲2013년 YG엔터테인먼트에서 씨제스엔터테인먼트로 이적 ▲배우 조정석과 2013년부터 교제중 ▲엠넷 ‘슈퍼스타K 2016’ 심사위원 ▲2015년 9월∼11월 MBC ‘일밤-복면가왕’ ‘소녀의 순정 코스모스’로 제13∼16대 가왕으로 큰 주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