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택시운전사’의 독일인 배우 토마스 크레치만은 “21살 때 동독에서 서독으로 넘어오며 느꼈던 권력의 억압”을 떠올리며 촬영에 임했다고 했다. ‘택시운전사’를 촬영하며 언어 장벽에 어려움도 겪었지만 “다음에는 더 잘 할 것”이라며 웃는다. 사진제공|쇼박스
■ 영화 ‘택시운전사’ 독일 기자역 맡은 토마스 크레치만
철저히 고립됐던 도시. 그 안에서 벌어진 항쟁과 무참한 학살극.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카메라를 부여잡고 진실을 담아내려 애썼던 이방인의 기자가 있었다. 독일 제1공영방송(ARD-NDR) 소속 기자였던 위르겐 힌츠페터. 지난해 1월 세상을 떠난 그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시민항쟁과 이를 무자비하게 진압한 세력의 폭력을 다큐멘터리에 담아 널리 알린 인물이다. 그가 한 편의 영화 속에서 그 처절했던 순간을 한 사람의 배우를 통해 간접 증언하고 나섰다.
영광스러운 역할…5.18 광주항쟁 자료 찾아 공부 송강호는 한국 최고 배우, 덕분에 여유롭게 촬영 리듬 어려운 한국말…다음엔 더 잘 할 자신 있다
그 임무를 맡은 배우는 독일 출신으로 할리우드에서 활약 중인 토마스 크레치만(55)이다. 그가 영화 ‘택시운전사’(제작 더 램프)의 8월2일 개봉을 앞두고 내한해 25일 한국 기자들을 만났다.
토마스 크레치만은 2차 세계대전 유대인 피아니스트의 고난을 그린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2002년작 ‘피아니스트’를 비롯해 ‘작전명 발키리’ ‘킹콩’ ‘원티드’ 등을 통해 한국 관객에게도 낯익다. ‘택시운전사’가 아니었다면 1980년 5월 광주에 대해 알지 못했을 그는 대체 왜 낯선 땅, 한국에서 그 아픔을 영화로 전하는 데 동참했을까. 그것도 실제 고통스런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실존인물을 연기했을까.
“이번 역할을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배우는 대본대로 연기하는 사람일뿐이다. 실존인물을 존중하고 그의 모습을 솔직하게 표현해야 할 책임감이 크다.”
어쨌든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만큼, 게다가 광주에 관한 이야기를 전혀 몰랐던 만큼 그는 다양한 정보를 얻으려 노력했다. 위르겐 힌츠페터가 제작한 다큐멘터리를 보기도 한 그는 연출자 장훈 감독으로부터도 많은 자료를 얻어 공부했다.
독일 출신 할리우드 배우 토마스 크레치만. 사진제공|쇼박스 이처럼 배우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려는 그는 역사에 얽힌 개인적 경험도 지니고 있다. 옛 동독 출신인 그는 1983년 21살 때 무려 네 개의 국경을 넘어 서독으로 넘어왔다. 그는 “한 체제의 권력이 어떻게 사람들을 억압하고 관리하는지”를 체험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광주의 이야기를 펼쳐냈다.
그런 과정에서 언어의 장벽에 부딪혔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미국은 물론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러시아 등에서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각국 언어의 리듬”을 따르며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한국에서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고 말했다.
“문장의 시작과 끝을 대체 몰랐다. 상대배우의 대사 중간에 치고 들어가기도 했다. 또 문화적 차이가 주는 어려움도 있었다. 그래서 항상 불안했고, 내가 맞게 연기하는지 늘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했다.”
“다음에 불러주면 그땐 더 잘 할 것”이라고 너스레를 떤 토마스 크레치만은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올드보이’ ‘박쥐’ 등을 보며 박찬욱 감독의 팬이 됐다는 그는 ‘택시운전사’ 촬영현장을 찾아온 박 감독과 우정을 다지기도 했다. 사진을 소재 삼아 대화를 나누고 식사도 함께했다. 그들 사이에 ‘택시운전사’의 또 다른 배우 송강호도 있었다.
토마스 크레치만은 송강호가 “명실상부한 한국 최고의 배우”라는 말에 “그런 말이 전혀 놀랍지 않을 만큼 뛰어난 배우”라며 찬사를 보냈다. 특히 “가볍고 재미있게 보이는 모습에서 깊이 있는 모습으로 전환하는 재능은 정말 감동적이다”고 말했다. 그런 배우끼리 서로를 ‘눈으로 알아보는’ 마음으로써 송강호와는 언어와 소통의 큰 문제없이 “여유롭고 재미있게 촬영할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