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쳤어’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원조 걸크러시 손담비가 고단했던 연습생 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의 상실감, 그리고 연극 무대의 감동을 이야기한다.
만약 이 연극을 보고 웃음보가 터지지 않는다면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거나 공감 능력에 문제가 있을지 모른다. 서울 종로구 동숭아트센터에서 연일 전석 매진을 기록 중인 〈스페셜 라이어〉를 두고 하는 얘기다. 국내 오픈 런 공연의 시초이자 아시아 최장 공연 기록을 가진 〈라이어〉의 탄생 20주년을 기념하는 이 작품은 가수 겸 배우 손담비(34)가 데뷔 후 처음 도전한 연극이기도 하다.
극 중에서 손담비는 두 집 살림을 하는 택시 운전사의 섹시한 부인 바바라 스미스로 등장해 또 다른 부인 메리 스미스와는 상반된 매력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무대를 압도하는 춤과 가창력, 〈빛과 그림자〉 〈미세스 캅 2〉 등 여러 드라마를 통해 검증된 연기력까지 갖춘 그에겐 그동안 뮤지컬 출연 제의가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뮤지컬이 아닌 연극과 먼저 연을 맺은 그를 만났다.
▼뮤지컬보다 연극에 먼저 발을 들인 건 의외네요. 뮤지컬보다는 오롯이 연기로만 승부할 수 있는 연극을 해보고 싶었어요. 첫 연극은 재미있는 작품이길 바랐는데 마침 〈스페셜 라이어〉에서 출연 제의가 들어와 바로 이거다 싶었죠.
▼직접 경험한 연극의 매력은 뭔가요. 드라마와 달리 연극은 매회 연기하는 느낌도 다르고 관객의 반응도 다르잖아요. 그래서 하면 할수록 재미있어요. 처음에는 긴장을 많이 했는데 갈수록 연기 호흡이 좋아지는 느낌이에요. 무대도 점점 편해져 이제는 어떤 부분에서 관객이 좋아하는지, 어떤 점을 강조할 때 무대가 사는지도 알겠더라고요. 선배님들에게 많이 배우면서 관객들 못지않게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가장 많은 깨달음을 준 선배는 누군가요. 첫 무대부터 〈라이어〉와 함께한 안내상 선배님요. 안내상 선배님은 웃음 포인트를 정확히 꿰고 계시고 연기의 강약을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도 잘 아시거든요. 선배님이 디테일에 대한 조언을 많이 해주셔서 연기가 늘고 있는 느낌이에요.
▼참한 메리가 아닌 섹시한 바바라 역을 맡은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가수로 활동할 때는 섹시한 모습을 많이 보여드렸지만 연기자로서는 섹시한 캐릭터를 한 적이 없어요. 〈미세스 캅 2〉에서는 털털한 형사 역을 했고, 〈가족끼리 왜 이래〉에서는 철부지 같은 역을 했었죠. 섹시한 캐릭터나 부잣집 딸 역할이 많이 들어왔지만 이미지를 바꿔보고 싶어서 일부러 마다한 거예요. 그런데 이번에는 바바라 스미스에게 끌렸어요. 섹시하기만 한 캐릭터가 아니라 바보 같은 구석도 있고 남편한테 잘 보이려고 애쓰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자거든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을 것 같아요. 연기하면서 선배들이 애드리브를 많이 하세요. 특히 제가 “왜 그래? 뭐 하는 짓이야?”라며 막 화를 내면 택시 운전사 존 스미스 역을 맡은 이종혁 오빠나 원기준 오빠가 애드리브로 제 노래인 ‘미쳤어’를 막 춤추면서 부르는데 그 장면에서 빵 터지더라고요(웃음).
▼연기하면서 힘든 점은 없나요. 드라마보다 연기 호흡이 훨씬 빨라 여러 명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면 박자를 놓치기 십상이더라고요. 처음 연습할 때는 대사를 치고받는 과정이 너무 빠르게 전개돼 박자를 타기가 힘들었어요. 근데 이 작품을 하면 할수록 빠른 진행과 빠른 호흡을 통해 관객에게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것이 연극의 묘미라는 생각이 들어요.
▼체력 관리를 어떻게 하고 있나요. 제가 원래 다른 사람보다 기초대사량이 많고 체력이 강한 편이에요. 어릴 때부터 운동을 꾸준히 해서 근육량이 많거든요.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10년간 수영을 하고, 그 중간에 시작한 테니스도 8년간 했어요. 연습생으로 지낸 4년 동안에도 춤 연습과 근육 운동을 줄기차게 했고요. 원래 다이내믹한 운동을 굉장히 좋아해서 서핑이나 스케이트보드 같은 야외 스포츠를 즐겨요. 한동안 헬스도 꾸준히 했고요. 지금은 넉 달째 필라테스를 하고 있는데 근육량이 많아선지 같이 운동을 시작해도 남보다 빨리 체형이 예뻐지더라고요.
▼보디라인이 예쁜 연예인으로 손꼽히는데 남모르는 콤플렉스가 있나요. 넓은 어깨요. 성장판이 닫히기 전에 접영을 하도 해서 어깨가 넓어졌거든요. 그래서 얼굴이 작아 보이는 효과가 있긴 하지만 어릴 땐 콤플렉스가 심해서 어깨를 만날 움츠리고 다녔어요. 지금은 다시 어깨가 많이 펴졌는데 다 필라테스 덕분이에요. 정적인 동작으로 근육을 늘이고, 다리를 펼칠 때 고통이 따르지만 그만큼 효과는 확실하게 나타나요. 어깨만 펴진 게 아니라 내장근도 생기고 틀어졌던 골반과 거북목도 교정됐어요.
▼다이어트도 하나요. 굶는 걸로 살을 뺄 생각은 없어요. 예전에 별의별 다이어트를 다 해봤는데 몸도 상하고 요요 현상도 빨리 나타나더라고요. 저는 먹고 싶은 걸 다 먹으면서 운동으로 체중 조절을 해요. 적게 움직여도 지방이 많이 소모되는 체질이기도 하고. 30대가 되니 식사를 소홀히 하면 체력이 달리더라고요(웃음).
▼평소에도 오늘처럼 캐주얼하게 입나요. 가수로 무대에 설 때는 앨범 콘셉트에 맞게 입으려고 노력하지만 사적인 자리나 작품 시사회에 갈 때는 편한 옷을 즐겨 입어요.
▼첫인상은 새침해 보였는데 실제 성격은 털털함 그 자체인 것 같아요. 〈미세스 캅 2〉에서 연기한 형사 캐릭터가 제 성격과 가장 비슷해요. 그때 입은 의상의 80%가 제 옷이었어요. 하하. 아직도 저를 새침하게 보고 선뜻 다가오기 힘들어하는 선배들이 있어서 작품을 할 때는 주로 제가 먼저 다가가 친해지려고 하죠.
▼어떻게 가요계에 데뷔하게 됐나요. 제가 서울 명일여고를 나왔는데 그 당시 연예기획사 관계자들이 학교 앞에서 명함을 주는 게 유행이었어요. 저도 그렇게 캐스팅이 됐는데, 고등학교 때는 엄마가 심하게 반대하셨어요. 저는 연예인이 되고 싶었는데 엄마는 “아직은 이르다. 후회할 수도 있다. 대학 가서 하라”고 하셨죠. 그 때문에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엄두를 못 내다가 20세 때부터 24세까지 연습생 생활을 하고 2007년에 데뷔했어요.
▼처음부터 솔로 가수로 데뷔할 계획이었나요. 연습생일 땐 그룹으로 데뷔할 준비를 하다가 솔로로 빠진 케이스죠. 원래 남장 여자 콘셉트로 데뷔하려고 연습생 기간 4년 동안 파워풀한 춤만 연습했어요. 솔로로 데뷔해서도 보이시한 이미지를 가져가려고 트레이닝복 입고 춤추고 그랬어요. 그런데 첫 앨범과 두 번째 앨범이 연달아 망해서 세 번째 앨범을 낼 땐 섹시 콘셉트로 바꿨어요. 그때 터진 노래가 ‘미쳤어’예요. ‘미쳤어’로 큰 사랑을 받으면서 대중이 좋아하는 코드가 ‘섹시’라는 걸 알았죠. 남장 여자는 ‘센 언니’를 좋아하는 지금이나 맞을 콘셉트였는데 제가 너무 앞서갔다 싶어요.
▼‘미쳤어’가 인기를 얻기 전에는 힘들었겠네요. 많이 괴롭고 힘들었죠. 데뷔도 못 하다가 20대 중반에 겨우 꿈을 이뤘는데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으니까요. 연습생 시절에도 가시밭길이었어요. 춤도 노래 실력도 톱클래스가 아니었거든요. 소속사에 들어가기 전에는 춤이나 노래 지도를 받은 적이 없어 연습생이 되고서 기초부터 배웠어요. 연습생을 대상으로 매월 월말 평가가 진행됐는데 경쟁이 아주 치열해서 잠시도 긴장을 풀 수 없었어요.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정말 죽을힘을 다해 연습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다른 연습생보다 늦게 시작했으니 10배는 더 열심히 해도 될까 말까라는 생각으로 4년 내내 연습실에서 살다시피 했죠.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적도 있나요. 제가 연습생 생활을 할 때 아버지가 아프셔서 가정 형편이 안 좋았어요. 갑자기 건강이 악화돼 4년간 병석에 누워 계셨거든요. 그러다 몸 상태가 나아지셨는데 3년 전 돌아가셨어요. 제가 외동딸이어서인지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어요.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했어요. 2년간 공백기를 가졌죠. 데뷔 이래 그렇게 긴 시간을 통으로 쉰 건 처음이었어요. 돌아보면 그동안 많은 일을 겪으며 느낀 다양한 감정들이 저를 성장시킨 원천인 것 같아요.
▼결혼은 언제쯤 할 생각인가요. 부모님이 두 분 다 늦은 나이에 결혼하셨어요. 저도 결혼을 완전 늦게 하겠다는 주의인데 어머니가 제 결혼식을 빨리 보고 싶다고 하셔서 걱정이에요. 상대가 있어야 시집을 갈 거 아니에요. 하하.
▼어떤 사람과 결혼하고 싶나요. 연예계에 데뷔한 후 계속 일만 해왔고 외동딸이기 때문에 저를 많이 이해해주는 사람이면 결혼해도 좋을 것 같아요. 근데 나이가 들수록 굳이 연애를 해야 할까 싶어요. 누구랑 사는 게 약간 불편할 것 같은 생각도 들고요.
▼사람을 사귈 때 가장 중시하는 것이 뭔가요. 인성요. 제가 약간 고지식해서 시간 약속을 안 지키고 인간 됨됨이가 별로인 사람에겐 몰입이 안 돼요. 작품을 할 때도 상대 배우가 좋은 사람이면 연기가 잘되더라고요.
그의 차기작은 6월 둘째 주부터 촬영이 시작된 영화 〈형사 2〉로 결정됐다. 권상우, 성동일, 이광수가 출연하는 이 작품에서 맡은 매력적인 홍일점 역할을 위해 그는 헤어스타일을 단발머리로 바꿨다. 팀워크가 너무 좋아 전편보다 더 재미있는 작품이 탄생할 것 같다는 그에게 올해 소망을 묻자 ‘워커홀릭’다운 대답이 돌아온다.
“연기적으로 한 단계 더 성숙해지고 싶어요. 영화 출연은 처음이라 이번 작품을 계기로 배우로서 다양한 도전을 해보고 싶어요. 그래서 나날이 성장해가는 배우가 되는 것이 꿈이에요. 저를 응원해주는 많은 분들과 제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배우요.”
손담비는 영화 촬영을 하며 8월부터 이어지는 〈스페셜 라이어〉의 전국 대도시 순회공연에도 나설 예정이다. 〈스페셜 라이어〉는 8월 12~13일 부산, 19~20일 광주, 25~27일 대구, 9월 15~16일 인천에서 공연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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