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고 복수하고, 영화가 치우쳐 있어 내년 첫 작품은 3대 이야기 그린 ‘행복’ 김홍신 소설에 감명받아 영화화 작업도”
80세의 노장은 여전히 열정적이었다. 521편의 영화에 출연한 화려한 경력에 대한 만족, 느닷없이 닥친 폐암 3기 판정에 따른 투병의 낯은 신성일에게서 드러나지 않았다. 15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그는 “2019년까지 계획이 꽉 찼다”고 의욕을 보였다.
올해 영화제 한국영화회고전 주인공인 신성일은 12일 개막식부터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1960년 ‘로맨스 빠빠’로 데뷔해 57년간 배우로 살아왔지만 영화를 향한 열정은 오히려 더 뜨거워지는 듯 보였다. 한 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에서도 그는 한 번도 의자에 앉지 않고 일어선 채 이야기를 풀어냈다.
“앞날 설계가 다 돼있다. 죽어서 어디에 묻힐 지까지 정해놨으니까. 하하! 내년에 ‘행복’이란 영화를 시작한다. 요즘 한국영화는 너무 잔인하지 않나. 사람 죽이고, 분노하고, 사회비판하면서 복수만 한다. 치우쳐있다. 그래서 따뜻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
‘행복’은 조부모와 손자까지 등장하는 3대의 이야기다. “나와 윤정희가 조부모를 맡고, 그 다음 세대로 안성기와 박중훈, 손자손녀로 팔팔하게 뛰는 젊은 연기자들을 생각하고 있다. 시나리오가 수정되면 배우들과 구체적으로 대화할 생각이다.”
신성일은 얼마 전 읽은 김홍신의 소설 ‘바람이 그린 그림’에 감명 받아 영화화 작업도 시작했다. 김홍신과는 비슷한 시기 국회의원을 하면서 ‘형님, 아우’하는 사이. 신성일은 “깨끗한 멜로인데도 서스펜스가 있다”며 “따뜻하고 애정 넘치는 영화가 될 것 같다”고 했다.
신성일은 ‘한국영화의 역사’로 불러도 무방한 배우다. 1960년대 청춘스타의 상징이고, 미남배우의 대표다. 1967년 한 해에 주연한 영화가 무려 51편. 배우 엄앵란과 결혼한 1964년에 두 사람이 함께한 영화도 26편이나 된다.
올해 회고전에서는 신성일의 대표작 ‘맨발의 청춘’ ‘길소뜸’ 등 8편이 상영되고 있다. 덕분에 오랜만에 극장에서 ‘별들의 고향’을 다시 봤다는 신성일은 “이장호 감독이 나한테 얼마나 키스신을 많이 시켰는지 새삼 놀라웠다”며 웃었다.
출연작이 500여 편에 이르다보니 자신의 영화를 전부 기억하지 못할 것 같다는 질문에 그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이름부터 꺼냈다.
“전두환이 등장하고 문화정치는 아무것도 없었다. 5·18로 사람들이 많은 피를 흘렸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라니 도저히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온통 TV에만 집중한 정책을 펴서 영화는 완전 말살되고 말았다.”
일이 끊긴 뒤 그는 명지대학교 대학원에서 2년간 학생을 가르쳤다. 자신의 출연작을 소개할 때도 많아 자연히 작품별 제작연도까지 외울 수밖에 없었고, 그 기억은 “지금도 그대로”라고 했다. 그런 신성일이 뽑은 자신의 최고작은 이만희 감독의 ‘만추’다.
“올해 나이 여든이다. 이젠 사는 것 보다 이웃에 신세지지 않는 게 중요하다. 항암치료 받을 때 옆 사람들은 쓰러지고 먹지도 못하더라. 다행히 오랫동안 체력 다지고 운동해온 덕에 의사가 기적이라고 할 만큼 괜찮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