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만들어가는 동안 빚어지는 많은 갈등과 충돌을 “우선 술부터 마시며 풀어간다”는 최민식은 영화 ‘침묵’ 속 모든 것을 지닌
재벌그룹 회장처럼 “용의주도하면 피곤해서 못 산다”며 너털웃음을 웃었다. 그런 어우러짐의 현장을 그는 좋아한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 ‘세 편의 인생작’으로 말하는 최민식
다양성 영화의 가치 확립 시킨 ‘해피엔드’ 18년 흘러 ‘침묵’으로 정지우 감독과 재회 개인적으론 ‘파이란’ 가장 애착가는 작품 올드보이는 ‘作에 참여한 배우’ 느낌 안겨줘
흥행배우? 수치에 연연했다간 뜬구름 돼 현실 안주할때 가장 큰 자극은 바로 ‘사람’
1975년 처음 세상에 나온 삼중당문고는 무엇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숱한 동서양의 문학적 고전을 맛보게 하며 까까머리와 단발머리 소년소녀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중학교 검은 교복 호주머니에 꼭 들어맞던/…/방학중에 쌓아놓고 읽었던’(장정일의 시 ‘삼중당문고’ 중에서) 삼중당문고를, 배우 최민식(55)도 떠올렸다. 그는 “삼중당문고가 안겨준 느낌처럼 촌스러움 속에서 진솔하게 다가오는 이야기”, 사람끼리 교감하는 감성의 이야기가 좋다고 부연했다.
그리고 그는 인터뷰 내내 사람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내가 문을 걸어 잠그고 남을 문전박대하는 피곤한 삶”을 피하기 위해 온전히 자신을 열어 사람을 받아들이려는 노력에 관해 말했다.
그런 그에게 연기인생에 가장 강렬하게 남은 세 작품을 꼽아달라고 어렵게 부탁했다. 역시 사람과 사람으로 이어지는 관계 속에서 부단히 “추스르고 곧추세우라”며 그를 내몰아간 작품들이었다.
최민식이 꼽은 세 편의 영화를 통해 ‘배우 최민식’의 이야기를 들었다.
영화 ‘해피엔드’에서의 최민식. 사진제공|명필름 ● 영화 ‘해피엔드’(1999년·감독 정지우)
실직한 은행원과 성공한 커리어우먼인 아내. 그리고 아내의 첫사랑. 다시 사랑에 빠져든 아내와 하릴없는 일상에 젖어 들어가는 은행원, 사랑에 집착하는 첫사랑은 결국 각기 꿈꾸는 ‘해피엔드’와 욕망에 파열음을 낸다.
최민식은 “다양한 영화”에 대한 가치를 처음으로 확립시켜준 작품으로 기억한다. “확고한 논리를 지닌 감독으로서 정지우”를 이 작품으로 처음 만나기도 했다. 정지우 감독과 맺은 인연은 18년의 세월이 흐른 뒤 영화 ‘침묵’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감독의 연출력 역시 고스란히 18년의 시간을 채웠다고 그는 말한다.
부침 없는 삶이 어디 있을까. 최민식은 “징글징글하다”는 표현을 여러 번 썼다. “나태해질 때, 널브러질 때, 다시 일어나 몇 걸음 가고 또 몇 걸음을 가는” 시간이 “징글징글”하다고 그는 말했다.
1986년 연극무대로 데뷔한 이후 꾸준히 걸어온 연기인생을 두고 하는 말이다. ‘쿠숑’이라는 캐릭터로 대중에게 존재감을 각인시킨 1990년 KBS 2TV 주말극 ‘야망의 세월’부터 최근작 ‘침묵’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쌓인 숱한 작품 사이에서 그는 부대끼고 또 뒹굴었다.
물론 그 모든 부대낌과 뒹굶이 대중적으로 성과를 냈던 건 아니다. 그 안에는 1700만 관객이라는 ‘대박’을 터뜨린 ‘명량’에서부터 관객의 가슴에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하고 극장 간판을 내린 작품도 있다.
다만 그는 그런 흥행 수치에 “연연해했다가는 자칫 뜬구름이 된다”고 말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허상”의 위험을 가리키는 것인데, 그렇더라도 상업영화를 주된 무대로 삼는 배우에게 이는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 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더욱이 그는 ‘야망의 세월’ 이후 1994년 MBC 주말극 ‘서울의 달’, 또 3년 뒤 영화 ‘넘버3’로 이어지는 굴곡의 개인적 흥행사를 겪지 않았던가. 1998년 말 개봉한 ‘쉬리’ 이후 본격적인 대중성을 얻기까지 이런 부침이 마냥 “뜬구름”과 “허상”만은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영화 ‘파이란’ 스틸컷. 사진제공|튜브엔터테인먼트 ● 영화 ‘파이란’(2001년·감독 송해성)
배 한 척을 사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소박한 꿈을 지닌 동네 ‘삼류건달’. 건네받은 한 통의 편지는 그의 인생을 뒤바꾸고 만다. 중국에서 흘러들어온 여인 ‘백란(파이란)’이 남긴 편지를 좇아 가슴 쓰린 길을 떠나는 사내가 회한의 담배 한 대를 피우려 켜지지 않는 라이터를 연신 켜대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꺼이꺼이 흘리는 눈물은 최민식 연기의 또 다른 백미이며, 이 영화의 아련한 핵심이다.
최민식은 “가장 애착하는 작품”으로 ‘파이란’을 꼽는다. “문학적 결을 지닌 작품으로 깊은 여운을 남겼다”는 설명을 덧붙이는 그는 여전히 이런 감성의 영화를 꿈꾸고 있다.
2001년 4월의 어느 날, 최민식은 서울 종로의 작은 극장 씨네코아 앞에 서 있었다. 자신의 영화 ‘파이란’이 개봉하는 날이었다. 극장 앞에서는 이미 개봉해 흥행가도를 달리는 ‘친구’의 홍보를 위해 검은 교복 차림의 젊은이들이 영화 전단을 지나는 이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그에 비하면 ‘파이란’의 시작은 초라했고, 결국 흥행에도 실패했다. “내게 충실해서 만든 영화”였지만 “시원하게 말아 먹고는 추풍낙엽처럼 간판이 떨어져 나간” 영화가 되고 말았다.
또 한 번의 부대낌과 뒹굶이 허망하게 잊혀져가던 때, ‘파이란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파사모)이 생겨났다. 그리고 영화가 남긴 진한 여운을 깊이깊이 마음으로 받아 안으려는 이들도 늘어났다. 영화가 새롭게 인정받기 시작하며 뒤늦게나마 관객과 교감하기 시작한 것이다.
작은 규모의 영화여서 “홍보비도 없어 내가 인터뷰하는 게 홍보의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비로소 영화로 “포만감을 느꼈고, 결과보다는 어떻게 작업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는 계기가 됐다.
그래서 그는 “매너리즘을 가장 경계한다”고 말한다. “매너리즘에 빠질 때가 가장 힘들다”는 최민식은 “무엇이든 쉽게 가려고 하면 이상해지기 시작하고, 더 이상 배우로서 내보일 게 없게 된다”며 스스로를 경고하곤 한다.
그가 그렇게 현실에 안주하려는 때 자극을 주는 존재, 바로 ‘사람’이다. ‘파이란’을 전후로 만일 배우 최민식이 달라져 보인다면 그것 역시 사람에게서 배우고, “보약”과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던 덕분이다.
영화 ‘올드보이’에서의 최민식. 사진제공|쇼이스트·CJ엔터테인먼트 ● 영화 ‘올드보이’(2003년·감독 박찬욱)
‘오늘만 대충 수습하며 산다’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오대수가 맞닥뜨린 현실 그리고 숨겨진 진실. 15년의 감금생활 끝에 복수를 향하며 그 진실을 파헤쳐가는 사이 드러나는, 되풀이되는 삶의 비극.
최민식은 이 영화의 “클래식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촬영하는 내내 연출자 박찬욱 감독과 끊임없는 대화를 이어가며 “영화에 참여한 또 다른 한 구성원으로서 배우라는 느낌을 안겨줬다”고 그는 설명한다.
개봉한 해, 칸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올드보이’의 프로듀서로 최민식과 영광을 함께한 이는 영화 ‘침묵’의 제작사 용필름의 임승용 대표다. 최민식은 “옛 전우를 다시 만난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최민식 역시 ‘침묵’을 통해 18년 만에 다시 만난 정지우 감독도 그랬다. 그는 정 감독이 “기본은 여전히 지닌 채 더 논리적이고 더 치밀해지고 영글어졌다”고 말했다. 그 한편으로 정 감독이 “유연해졌다”고 말하는 그는 18년의 시간을 무색케 하는 많은 대화를 나누는 동안 “형용할 수 없는 짠함”을 느꼈다. “이제 몸을 풀었으니 (그와)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으로 “조연이라도 할 수 있다”고 말을 이었다.
정말 ‘조연도 가능하냐?’고 묻자 “극중 정확히 기능할 수 있는 캐릭터라면”이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언제까지나 대장만 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살겠느냐”면서 “이젠 젊은 친구들이 소대장도 하고 중대장도 해야 한다. 우린 그저 보급관 역할에 머물러도 되지 않겠느냐”며 웃는다. 오히려 그보다는 “어우렁더우렁 어울리는 게 중요하다”는 그는 “그런 유연함으로 다가오는, 프로페셔널한 후배들”이 믿음직스럽다고 말한다.
자신을 그렇게 “찔러주는 보약이 된다”는 후배들을 바라보면 “선배들 눈초리가 무서웠고, 그들을 쫓아가기에만 바빴던” 지난 시절을 돌아보게도 된다. “선배가 내 나이 때 나처럼 했느냐?”며 후배들이 보이지 않게 자신을 찔러올 때 다시 한 번 “일어나 몇 걸음 나아가고 또 몇 걸음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
그런 그에게 ‘멋지게 나이 드는 법’에 관해 물었다. 이런 답이 돌아왔다.
“갈수록 생각이 많아지고 잡념이 많아지는데, 불혹(不惑·세상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이 흐려지지 않는다는 나이 40)? 지천명(知天命, 나이 50에 하늘의 뜻을 안다)? 누가 그러더냐? 날 추스르고 곧추세우는 게 얼마나 힘든데…. 하하! 내게 부끄럽지 않게 나이 먹고 싶다.”
● 최민식
▲1962년 4월27일생 ▲1989년 동국대 연극영화과 졸업 ▲1988년 영화 ‘수증기’로 스크린 데뷔 ▲1990년 연극 ‘에쿠우스’, KBS 2TV ‘야망의 세월’로 KBS 연기대상 신인상 ▲1992년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으로 대종상·청룡상 등 남우조연상 ▲1994년 MBC ‘서울의 달’ ▲1997년 영화 ‘넘버3’, 연극 ‘택시 드리벌’로 서울연극제 연기상 ▲1999년 ‘쉬리’로 대종상·청룡상 남우주연상 ▲2001년 ‘파이란’으로 대종상·청룡상·영평상 등 남우주연상 ▲2003년 ‘올드보이’로 대종상·영평상·대한민국영화대상 등 남우주연상, 이후 ‘악마를 보았다’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 ‘명량’ 등으로 올해의 영화상 등 다수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