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히어로물 지향…B급 유머 가득 초능력은 장치 불과…철거민 문제 담아 연 감독 “도시개발 문제에 초현실 그려”
좀비를 넘어 이번에는 초능력이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설정이 전부는 아니다.
2년 전 여름 극장가에 좀비 열풍을 일으키며 1100만 관객을 동원한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이 초능력 소재의 ‘염력’(제작 레드피터)으로 돌아왔다. 흥행의 기쁨을 뒤로하고 곧장 새로운 작업에 돌입한 끝에 불과 1년6개월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31일 개봉하는 ‘염력’은 ‘부산행’ 감독의 새로운 도전으로 기획부터 주목받았고, 최근 미국 유력 비평사이트 로튼토마토가 뽑은 ‘2018년 기대작 20편’에 한국영화로는 유일하게 선정돼 기대를 더욱 높였다. 23일 서울 용산CGV에서 진행된 시사회에도 영화계 안팎의 관심이 집중됐다.
‘염력’은 우연히 초능력을 갖게 된 평범한 남자(류승룡)를 내세워 한국형 히어로물을 지향한다. 하지만 이런 설정은 ‘장치’에 불과하다. 이날 시사회에서 베일을 벗은 영화는 도시개발에 떠밀리는 철거민, 이들을 향한 공권력의 부당한 진압, 폭력적인 건설사 용역업체가 한 데 뒤섞인 이야기로 채워졌다. 2009년 용산 재개발 과정에서 일어난 ‘용산참사’가 연상될 수밖에 없는 설정과 상황이 영화 내내 이어진다.
시사회 직후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관련 질문을 받은 연상호 감독도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감독은 “‘부산행’도 그랬지만 초현실을 다룰 때는 한국 사회와 현실적인 문제 안에서 그려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이번에 초능력을 다루면서 한국 근대화 과정에서 계속 있었고, 지금도 벌어지는 도시개발과 그 시스템의 문제를 넣고 싶었다”고 밝혔다.
때문에 ‘염력’은 비판과 풍자의 시선도 상당하다. 앞서 ‘부산행’에서 세월호 참사 등을 비틀어 차용한 감독의 시선이 이번에도 이어지는 셈이다.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은 대부분 ‘B급 코미디’의 개성으로 무장했다. 류승룡은 “어느 영화 촬영장보다 유쾌하게 찍었다”며 “특수효과가 필요한 장면도 낚싯줄을 이용하는 등 아날로그적으로 촬영했다”고 말했다.
‘부산행’처럼 보는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은 없지만 연상호 감독은 ‘염력’을 통해 또 다른 매력을 관객에 선사한다. 할리우드 히어로물에서 익숙하게 봐왔고, 때문에 관객의 눈높이가 한없이 높아진 초능력과 히어로 소재를 다루면서도 세련된 모습보다 촌스럽고 우직한 개성을 유지한다. 영화에서 류승룡은 초능력을 가졌음에도 하늘을 나는 일조차 버겁게 그려진다.
‘염력’을 시작으로 2월 설 연휴 극장가 흥행경쟁의 닻이 오른다.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 ‘흥부’, ‘골든슬럼버’ 등 어느 해보다 다양한 장르 영화가 ‘염력’과 함께 격전을 벌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