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은 가라” 그래미에 핀 흰 장미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30일 03시 00분


‘타임스 업’ 운동 상징 꽃 달고 참가자들 양성평등 무언의 촉구
“그는 독이든 음식 먹을까 겁내”… 힐러리, 콩트 등장해 트럼프 조롱
브루노 마스, 올해의 앨범 등 6관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래미 어워즈에서 2년 연속 직격탄을 맞았다.

28일 밤(현지 시간) 미국 뉴욕 매디슨스퀘어가든에서 열린 제60회 그래미 어워즈에서는 트럼프가 코미디의 소재로 등장했다. 대통령선거 때 그의 경쟁자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장관이 이끌었다.

클린턴은 시상식의 콩트 코너에 등장했다. 콩트 내용은 내년 그래미 ‘최우수 낭독 앨범’ 부문에 출품할 작품의 낭독자를 선정하는 가상 오디션. 낭독 작품은 트럼프의 치부를 고발해 화제가 된 책 ‘화염과 분노’였다. 음악가 존 레전드 등에 이어 등장한 클린턴은 책 속의 다음 문장을 읽었다.

“그(트럼프)는 오랫동안 독이 든 음식을 먹을까 두려워했다. 맥도널드에서 먹기를 그가 즐기는 이유. 그가 올지 아무도 모르거니와 음식이 안전하게도 이미 조리돼 있다는 것.”

낭독이 끝나기 무섭게 시상식 진행을 맡은 코미디언 제임스 코든은 “바로 이거!”라고 외쳤다. 클린턴은 “그럼 그래미는 떼어 놓은 당상인 것이냐”며 반색했다.

시상식 직후 트럼프 진영은 분노했다.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는 트위터에 “가짜 뉴스로 된 책을 그래미에서 낭독하다니 마치 대선 패배에 주는 최고의 위로상 같았다”고 썼다. 트럼프와 그래미의 악연은 2년째다. 지난해 2월, 트럼프 취임 직후 열린 제59회 시상식에서도 가수와 진행자의 반(反)트럼프 발언과 퍼포먼스가 이어졌다.

이날 시상식의 화두는 차별과 폭력에 대한 반대였다. 출연자들은 옷깃에 ‘흰 장미’를 달고 등장했다. 흰 장미는 성폭력과 성차별 실태를 고발하며 최근 미국에서 일어난 ‘타임스 업(Time‘s Up·시간이 다 됐다)’ 운동의 상징이다. 시상식에서 가수 겸 배우 저넬 모네이는 “감히 우리의 입을 막으려는 이들에게 딱 두 마디 해주겠다. ‘(불평등을 되갚을) 시간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나온 가수 케샤는 성폭력 가해 혐의를 받는 음악 제작자 닥터 루크를 향한 곡 ‘Praying’을 부른 다음 신디 로퍼, 카밀라 카베요 등 동료 여가수들과 포옹을 나눴다.

재즈 분야 후보로 시상식에 참석한 미국 유명 트롬본 연주자 앨런 퍼버는 이날 행사 직후 본보와의 국제전화 인터뷰에서 “흰 장미 물결은 주최 측이나 특정단체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전파된 메시지에 참석자들이 자발적으로 호응한 결과였다”고 말했다. 그는 “매디슨스퀘어가든 근처에 자동화기로 중무장한 군경이 배치됐으며 입장권 검사를 다섯 차례나 했다. 지난해에 비해 경비가 훨씬 더 삼엄해졌다”고도 전했다.

래퍼 켄드릭 러마는 축하무대에서 인종차별을 비판했다. 무용수 수십 명이 러마의 랩에 맞춰 총성과 함께 쓰러져 죽는 시늉을 했다. 코미디언 데이브 샤펠은 “미국에서 흑인의 솔직한 발언을 지켜보는 것보다 무서운 일은 미국에서 솔직한 흑인이 된다는 것”이라며 러마를 거들었다.

수상 결과에서는 힙합음악을 덜 대우하는 그래미의 경향이 반영됐다. 래퍼 제이지와 러마가 각각 8개와 7개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팝스타 브루노 마스에게 ‘올해의 앨범’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노래’ 등 트로피 6개가 돌아갔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그래미 어워즈#도널드 트럼프#브루노 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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