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각계 유명 인사의 성추행을 폭로하는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확산하는 가운데, 일부 성추행 피해자들이 ‘미투’에 대한 선정적 소비를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
학계에서 공개적인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선언을 처음 한 것으로 알려진 한양대학교 대학원생 A 씨는 21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서 “지지와 위로에는 진심으로 감사드리지만, 미투를 선정적으로 소비하는 모습은 너무 괴롭다”고 토로했다.
지난 1월 말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교수와 강사에게서 성희롱과 성추행을 당한 사실을 폭로해 주목받은 A 씨는 “그러한 글을 올린 건 제게 절박한 마음이고 마지막 수단이었다”고 호소했다.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배우 조민기(53)의 성추행을 폭로한 신인 연극배우 송하늘 씨도 “제가 피해자라는 사실은 잊었는지 계속해서 더 자극적인 증언만을 이끌어내려는 기자분들의 태도가 저를 더욱 힘들게 했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송 씨는 일부 언론을 향해 “무엇을 위한 취재이고 누구를 위한 언론인가. 언론 또한 피해자를 또 다시 숨게 만드는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일침을 가했다.
A 씨는 대학원 입학 후 B 교수 연구실에서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B 교수와 친한 C 강사로부터 ‘열렬한 관계가 되자, 뜨거운 얘기를 하자, 뜨거운 관계가 되자’는 등 성희롱과 성추행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B 교수에게 이 사실을 털어놨지만 돌아온 건 ‘질책’과 ‘함구’ 지시였으며, 그 이후 심지어 B 교수도 성희롱 가해자가 됐다고 폭로했다.
송 씨는 청주대학교 예술대학 연극학과 재학 시절 교수였던 조민기의 오피스텔 등에서 수차례 성희롱과 성추행을 당했다고 털어놨다. 송 씨는 자신 외에도 많은 여학생들이 피해자였다고 주장했다.
A 씨와 송 씨는 전혀 다른 곳에서 각각 다른 사람에게 성추행을 당했지만, 그동안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선 “학계의 폐쇄적인 분위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송 씨는 “예술대학에서 배우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조민기 교수는 절대적인 권력이었고 큰 벽이었기에 그 누구도 항의하거나 고발하지 못했다. 연예인이자 성공한 배우인 그 사람은 예술대 캠퍼스의 왕이었으니까”라고 말했다.
그는 “수차례 주위에 상담을 했지만 ‘그러게 그 자리에는 왜 갔느냐’, ‘왜 가만히 있었느냐’ 하는 물음과 질책뿐이었다. 교내에서 조 교수의 관심을 받는다는 건 소위 질투를 받을만한 일이었고 유난히 조 교수에게 자주 불려갔던 여학생들은 꽃뱀 취급까지 받아야 했다”며 “‘네 몸은 네가 잘 간수해라’, ‘그러니까 네가 조심해라’라는 충고들이 비수처럼 꽂혔다”고 그간의 고통을 호소했다.
A 씨 역시 ‘왜 그만두지 않고 계속 당하고 있었느냐’는 가혹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며 “살아가는 일이 그렇게 가벼운 것일 수 없다. 그리고 한국은 정말 좁다. 떠나면 그 일을 완전히 떠나게 되는 거다. 다른 일을 해야 되는 거다. 누가 자기 자신이 그렇게 노력한 것을 쉽게 떠날 수가 있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문제를 제기한 대학원생이 공부를 계속하려면 다른 교수님이 받아주셔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받아줄 분이 안 나서게 되는 경우가 정말 많다”며 “그럼 논문도 제출할 수가 없고 학업을 계속할 수가 없다. 학내 기관에 진정을 한다고 해도 학내 기관에서 그 교수님께 함부로 대할 수가 없다. 공정한 조사를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A 씨는 조민기 성추행 논란에 대해서도 “‘학교에서 힘은, 권력은 분위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이 모두 있는 앞에서 테이블 아래로 손을 내려서 여학생 손을 만지는 등 굉장히 잘못을 해도 다들 투명인간처럼 있는다”며 “누구 하나 그 사람을 제지하지 않고, 다들 오히려 당황해하는 피해자한테 가만히 있으라는 식으로 아무 일이 없다는 듯이 행동을 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두려움에 애써 침묵을 지키고 있는 피해자들을 향해 “지금 어디선가 쓸쓸한 눈으로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신다. 저도 물론 지금도 힘들고 아직 갈 길 남았다”면서 “하지만 정말 전보다 숨을 쉬는 것 같다.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절대 포기하지 말길 정말 간절히 말씀드리고 응원 드리고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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