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이야기의 결말만은 아닐 터이다. 수많은 상징과 은유가 포함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들여다보는 이들이 스스로 그 결론을 맺어주길 바라는 ‘열린 결말’로서 갈무리하기도 한다. 한 편의 영화가 관객에게 안겨주는 진한 여운이 발원하는 또 하나의 지점, 마지막 장면, 바로 ‘라스트 씬’(Last Scene)이다. 그래서 ‘라스트 씬’은 어쩌면 한 편의 영화가 드러내려는 모든 것이 담긴, 단 하나의 장면일지 모른다. 때로는 ‘에필로그’로서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경우도 많아서 ‘라스트 씬’의 여운은 더욱 깊고 커지기도 한다. 표기법상 맞는 표현인 ‘라스트 신’이 아닌 ‘라스트 씬’이라 쓰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식민의 시대, 한반도 남반부와 북반부를 각각 상징하는 도시는 경성과 평양이었다. 두 도시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자존심은 운동장에서 격돌했다. 운동장은 나라를 빼앗긴 아픔 속에서 민족적 자부심으로 단합을 꿈꾼 마당이기도 했다. 1929년 경평축구대항전은 그렇게 시작됐다.
● ‘빙구(氷球)’의 추억 그리고 ‘우리의 소원’
하지만 축구만 했던 건 아니었다. 백구구락부와 연광구락부도 있었다. 각기 경성과 평양을 대표하는 빙상단체였다. 경평축구 못지않게 두 팀은 치열한 경쟁의식을 드러냈다. 1932년 1월18일 자 동아일보는 그 치열함을 아래와 같이 보도했다.
‘경평대항 빙상 경기는 예정대로 16일 오전 10시 대동강상 연광정하에서 개최되엇다. 염려되는 일기도 전야로부터 온도가 내려 얼음도 조아지기 때문에 경기는 원만히 진행되엇다. 관중은 무려 일만여명을 돌파하얏다. 오후 5시 대항전을 맞추니 성적은 대접전의 끝에 사십대 삼십구로 경성 백구활빙구락부팀이 승첩하얏다.’
경평의 젊은이들은 또 빙구, 즉 아이스하키로도 맞붙었다. 동아일보는 1964년 9월10일 자에서 “6·25 동란 전에 가졌던 경평 대항 아이스하키전이 부활하였다. 9일 동대문 실내 링크에서 열린 제2회 경평전은 40세 이상의 왕년 선수로 구성된 OB전에서 서울팀이 3대2로 이겼고, 현역전은 평양팀이 연장전 끝에 7대6으로 신승하였다”고 썼다. 제1회 경평 대항 아이스하키전은 보도처럼 해방 직후 서울에서 열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을 바라보는 시선에 절묘함을 더했다. 적어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며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는 ‘당위’를 전혀 의심해보지 않은 이들의 눈에는 그랬다. 나아가 또 하나의 감동을 기대하게도 했다.
하지만 대학생인 딸아이는 도발적으로 물었다.
“통일을 굳이 해야 해?”
“응? …? 원래 하나의 민족이고, 원래 하나의 나라였으니까….”
‘그런 논리가 어디 있느냐’는 듯한 눈빛으로 의심을 거두지 않은 아이는 “그냥 지금 이대로, 다만 평화를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라고 되물었다. 입을 다물고 말았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만을 되뇌며 살아왔던 가치는 더 이상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는 것을, 도발적인 질문의 저의는 냉정하게 지적하고 있었다. “남북 단일팀 때문에 일부 남측 선수들이 올림픽 무대에서 뛰지 못하게 될 것이다”는 주장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았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을까.
권력을 사유화한 혐의로 국민으로부터 파면당한 전직 대통령은 “통일은 대박”이라고 외쳤다. 실천의 의지 없는 레토릭에 불과했던 것임이 이미 드러났지만, ‘한 민족, 한 나라’ 운운함 역시 구체성과 설득력이 현저하게 결여된 답변으로, 도발적 질문의 저의에는 들릴 것이었다.
의지와 저의 사이의 간극은 대체 어디서부터 벌어진 것일까.
● 경계의 현실
“우리 공화국에선 왜 이런 걸 못 만드나 몰라.”
북한군 중사 오경필은 남한 병장 이수혁이 내민 초코파이를 한 입에 넣고는 오물거리며 말했다. 두 개의 부드러운 비스킷 반죽에 초콜릿을 입히고 이를 마시멜로로 붙인 초코파이의 달콤함에 오경필은 반하고 말았다.
이수혁은 남몰래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오가며 북한군 오경필, 정우진에게 초코파이를 건넸다. 그 사이 이수혁의 졸병인 일병 남성식도 합류했다. 이들은 북한군 초소에 모여들어 술잔을 나눴고 김광석의 노래를 함께 들으며 닭싸움도 했다, 이수혁과 남성식은 오경필과 정우진에게 도색잡지와 지포라이터를 선물했다. 오경필과 정우진에게 자본주의를 전파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다. 초코파이도 그저 달콤한 간식에 불과할 뿐이었다.
하지만 거기에 어떤 형태로든 의도가 들씌워지는 순간은 기어이 찾아오고야 말아서, 초코파이를 건넨 자와 받아든 자 사이에는 어쩔 수 없는 경계가 그어지고 만다. “내 꿈은 말야, 언젠가 우리 공화국이 남조선보다 훨씬 더 맛있는 과자를 만드는 기야!”라며 강하게 맞서는 오경필의 말은, “형이고 뭐고 다 필요 없어 결국 우린 적이야”라는 이수혁의 말은 그 경계의 비극적 현실을 인식하게 한다.
이런 현실 위에서 “통일을 굳이 해야 하느냐”는 질문은 정말 도발적인 것인가.
지난해 3월 통일연구원이 내놓은 ‘남북통합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통일의 필요성에 20대의 38.9%만이 공감했다. 공감의 정도는 나이가 많을수록 높아서 30대 51.7%, 50대 65.3%, 60대 이상 71%였다. 하지만 온라인매체 프레시안이 올해 1월31일 이 조사를 인용해 내놓은 보도 내용을 살펴보면 얘기는 좀 달라진다. 일부 요약하면 이렇다.
“통일을 위한 세금 인상을 감수하겠느냐는 물음에 20대 9.7%, 30대 16.3%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럼 50대와 60대는? 각각 19.1%, 22.4%였다. ‘통일을 위해서라면 내가 좀 못살아도 된다’는 사람은 20대와 30대 각각 8.0%, 9.6%, 50대와 60대 이상도 13.1%, 15.8%였다.”
이 조사를 벌인 박주화 박사는 프레시안을 통해 “통일을 위해 개인의 희생은 어렵지만 통일이 필요하다는 기성세대의 통일의식이 20∼30대의 통일의식보다 나은 점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래서 어쩌면 “통일을 굳이 해야 하느냐”는 질문은 이제 경계가 얼마나 뚜렷해졌는지 더욱 냉철하고 솔직하게 들여다봐야 하는 건 아니냐고 묻고 있는지 모른다. “통일을 굳이 해야 하느냐”고 물음으로써 어쩌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맹목적인 것처럼만 보이는 가치에서 이제 한 걸음 떨어져 경계를 허물기 위한 좀 더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내놓으라고 채근하는 것이 아닐까.
어쨌든 경계는 현실 위의 선이다. 이수혁과 오경필과 남성식과 정우진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무표정이거나 의미 모를 미소이거나 제각각 표정을 지으며 정면을 바라보는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엔딩 타이틀은 바로 그 경계의 현실을 또렷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현실의 경계는 쉽게 허물어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2월14일 오후 일본에 맞서 링크 위에 선 ‘코리아’팀의 역사적 올림픽 첫 골은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발걸음의 시작이 될 수도 있으리라.“통일을 굳이 해야 하느냐”고 물은 딸아이는 어느새 첫 골에 날아갈 듯 환호하고 있었다.
■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박찬욱 감독의 2000년도 작품.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Joint Security Area)의 북한군 초소에서 벌어진 총격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려는 중립국 감독위원회 책임수사관 소피(이영애)의 노력 속에 이수혁, 남성식, 오경필, 정우진이라는 남북한 네 명의 병사들의 이야기를 펼쳐 놓았다. 남북한 병사들의 우정과 비극적 결말이라는 외피 속에 분단의 차갑고 아픈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낸 수작으로 꼽힌다. 송강호, 이병헌, 김태우, 신하균이 호흡을 맞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