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후배 김숙과 ‘비보티비’ 개국 ‘김생민의 영수증’ 히트시켜 지상파로 웹예능 ‘판벌려’ 등 손대면 모두 대박 후배들 빛내는 ‘그림자 리더십’ 훈훈
송은이(45)가 방송가 ‘미다스의 손’으로 주목받고 있다. 콘텐츠 기획자로서 실력을 드러내면서 얻은 수식어다. 엔터테인먼트업계 어느 분야보다 세상 변화에 민감하고 유행도 빠른 방송·예능가에서 요즘 단연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이라는 사실에 이견을 갖기 어렵다.
송은이는 올해 데뷔 25년째에 접어든 예능인이다. 개그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꾸준히 방송 활동을 해왔지만, 쇼 버라이어티 등 요즘 예능의 ‘주류’에서는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그를 둘러싼 상황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콘텐츠 기획자로서 인정받기 시작하면서다. ‘40대 개그우먼은 설 자리가 없다’는 방송가 편견에 맞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 성공적인 행보를 걷고 있다.
● 편견과 한계를 스스로 허문 실력자
송은이를 향한 방송가의 관심이 증폭된 계기는 지난해 방송된 KBS 2TV ‘김생민의 영수증’이다. 팟캐스트 ‘송은이·김숙의 비밀보장’의 한 코너로 출발한 이 프로그램은 인기를 더하면서 지상파 방송에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됐다. 온라인 히트상품을 지상파가 ‘모셔간’ 경우다.
‘비밀보장’을 비롯해 ‘김생민의 영수증’, 올해 1월 나온 웹예능 ‘판벌려’는 전부 송은이의 아이디어다. 특히 ‘판벌려’ 출연자인 김신영·신봉선·안영미·김영희는 송은이와 함께 ‘셀럽파이브’라는 이름의 걸그룹까지 결성했다. 이들은 지상파 음악프로그램 무대에 올라 화제를 뿌렸고, 재미있는 콘셉트와 음악으로 행사업계 섭외 1순위로 떠올랐다. 이처럼 송은이는 콘텐츠가 하나의 플랫폼에서만 소비되지 않고, 다양한 채널을 통해 광범위하게 퍼지도록 설계해 영향력을 빠르게 키우고 있다.
기획자로 나선 송은이의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다. 40대 중반에 접어든 개그우먼의 무대가 좁아지는 현실이 그를 움직이게 했다. 송은이는 과거 인터뷰에서 “출연할 프로그램이 없다면 직접 채널을 만들어 대중 앞에 서고 싶었다”고 말했다. 방송사 개편마다 마음 졸이거나, 제작진이 자신을 찾아주기만 기다리지 않고 직접 움직여 기회를 마련하겠다는 의지다. 일종의 ‘자력갱생’인 셈이다.
송은이는 2015년 김숙과 함께 모바일 방송국 ‘비보티비’를 개국해 기획자로 본격 나섰다. 지난해에는 제작사 ‘콘텐츠랩 비보’를 설립해 제작까지 맡고 있다. 이렇게 내놓은 ‘비밀보장’, ‘쇼핑왕 누이’ ‘나는 급스타다’와 같은 웹예능은 다채널을 즐기는 10∼30대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
● ‘그림자 리더십’…성공의 또 다른 비밀
송은이는 전면에 나서기보다 뒤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쪽에 가깝다. 송은이의 공채 2년 후배인 김숙은 ‘비밀보장’을 진행하면서 다시 존재감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김생민도 마찬가지. 데뷔하고 20년 동안 대표작이 없었지만 송은이의 주도 아래 만든 ‘영수증’이 크게 인기를 얻으면서 이젠 ‘대세’로 통한다.
때문에 그의 주변 사람들은 송은이의 행보를 두고 ‘그림자 리더십’이라고 평가한다. 자신이 돋보이기보다 후배에 길을 터주는 쪽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런 송은이가 김숙, 김생민에 이어 올해는 “박지선과 안영미가 주목받도록 하겠다”고 선언한 사실은 이목을 끌기 충분하다.
송은이는 경험이 풍부하면서도 같은 고민을 가진 후배들의 목소리도 적극 수용한다. 최근 내놓은 ‘판벌려’가 이런 경우. 김신영이 일본 오사카 토미오카 고등학교 댄스부의 ‘칼군무’에 관심을 두자 이를 프로그램으로 만들자고 제안했고, 셀럽파이브가 탄생했다. 5명의 개그우먼이 일본 댄스팀의 춤을 따라하는, 어찌 보면 단순한 콘셉트이지만 그만의 독특한 매력은 그대로 웹예능을 즐기는 10∼20대를 자극했다.
대중이 좋아하는 걸 간파하는 ‘촉’은 기획자가 갖춰야 할 능력이다. 송은이와 함께 작업한 KBS 예능국 안상은 PD는 “송은이는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걸 다 알고 있을 만큼 굉장히 트렌디하다”며 “송은이라면 미국 인기 TV쇼 ‘코난쇼’ 같은 형식의 프로그램도 거뜬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