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리턴’에 출연했던 봉태규(37)는 요즘 작품이 끝났는데도 여전히 ‘핫’하다. 11년 만에 드라마에 복귀해 연기한 사학재벌가 아들 김학범의 파장 덕분이다. 22일 마지막 회에서 김학범이 죽음을 맞는 장면에선 “나 자신도 울컥했다”는 그를 최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 김학범, 악행보다 ‘의외성’이 시청자 사로잡아
봉태규가 꼽은 김학범의 키워드는 ‘의외성’이다.
“처음엔 악행을 저지를 때 반응이 올 줄 알았습니다. 5, 6회에서 15신을 출연하는데, 시신을 유기하고 친구를 절벽에서 밀어버리거든요. 예상치 못하게 터진 건 다음 7회였죠. 자기가 죽인 친구 장례식장에서 오열하는 장면이었어요.”
사실 대본 상에는 ‘학범이 오열하고 부축해 실려 나간다’는 지문이 전부였다. 와 닿지 않았던 봉태규는 연출자인 주동민 PD에게 “악어의 눈물을 흘려야 하느냐”고 물었다. 주 PD는 “슬퍼해서 누가 봐도 이상한 장면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결국 이 장면이 시청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는 “처음엔 이게 무슨 반응이지? 왜 이 장면을 좋아하지? 싶었어요.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모두의 예상을 깨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었어요. 김학범이 기존 악역의 패턴을 깼던거죠.”
●독특한 캐릭터는 현장의 산물
이런 김학범의 탄생에 수시로 캐릭터를 토론하는 현장 분위기가 한몫했다.
“악어의 눈물을 흘릴 때도 그렇고, 연미정 시체를 묻을 때 김학범이 이런 대사를 해요. ‘미정이 누나가 정말 예쁜데. 내 첫 사랑이었잖아.’ 이것도 주동민 감독님과 얘기해서 만든 대사에요. 굳이 그 대사를 내뱉을 거라고는 상상을 못했는데 감독님이 ‘학범이가 여기서 뭘 했을 것 같아?’라고 질문을 던지곤 했습니다. 그래서 대본을 볼 때마다 그런 것을 염두에 뒀고, 결국 시청자가 볼 때 굉장한 사이코로 보이는 인물이 탄생한 거죠.”
그는 김학범이 폭력성을 드러낼 때 최대한 힘을 빼고 연기를 했다고 말한다. “김학범은 싸움을 잘 해서가 아니라, 당해본 적이 없어서 폭력의 무서움을 모르는 인물이거든요. 그래서 시신을 보고 웃으며 얘기하고, 사람을 헬멧으로 때리는 데도 거리낌이 없어요.”
오히려 힘이 들어간 건 ‘악벤저스’ 친구들과 얘기할 때. “악역을 살리기 위한 게 아니라, 친구라서 세게 말하는 거예요. 남자들은 흔히 친구를 만나면 쓸데없는 얘기를 굉장히 진지하게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사람을 죽였다는 얘기여서 더 이질적으로 보였던 거죠.”
●‘영국 유학파 신학대 교수’ 김학범의 디테일
봉태규에 따르면 김학범은 원래 백수였다.
“감독님과 논의하던 중 직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어요. 그래서 ‘사학재벌 아들이면 교수 한 자리는 맡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나왔고 무용과 연극영화 등을 생각하다 영국 유학파 출신 신학대 교수가 됐죠. 그래서 중간 중간 영어 단어를 내뱉어요. ‘잭팟’ ‘이머전시’ 같은…. 정말 짧은 단어지만 자세히 들어보시면 영국식 발음을 살리려 애썼어요. 제 아내가 영국에서 유학했거든요(웃음).”
김학범의 휴대폰 벨소리 ‘내게 강 같은 평화’는 주 PD가 후반 작업 때 삽입했다. 수트는 일부러 피했다.
“다른 악벤저스 친구들이 수트를 입을 테니까. 학범이가 디제잉도 취미로 하고 음악을 좋아하는 캐릭터거든요. 그리고 재벌들에게는 명품이란 개념이 없대요. 그냥 다 똑같은 옷일 뿐. 그래서 운동화도 ‘반스’ 같은 브랜드도 섞어서 신고 디테일을 살리려고 했어요. 차에는 돈을 쏟지만 옷에는 신경을 안 쓰는 느낌이죠.”
짧게 깎은 머리와 안경은 어린 나이에 교수가 된 인물의 고루함과 고지식함을 살리기 위한 설정이다. 또 악역에게 어울리지 않는 사회비판적 발언 역시 이런 설정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야, 우리. 그렇게 나쁘게 살지 않았어. 지금 TV에 나오는 영감들 먹물들처럼 우리가 여자애들한테 양아치 짓을 했냐? 아니면 그 아줌마처럼 대통령 앞세워서 나랏돈 해먹고 우리가 그랬냐? 야! 지금 나가 봐도 나쁜 새끼들이 얼마나 많은데. 막말로 우리가 사람을 죽인 것도…. 죽였지.” (23회 오태석(신성록)과 대화 중 ‘미투 운동’과 ‘국정 농단’을 암시하는 발언)
●17년 만에 새로운 캐릭터, 자신감 얻어
봉태규는 임상수 감독의 영화 ‘눈물’(2001)로 데뷔했다. 강렬한 캐릭터로 주목 받았지만 이후 어리버리하거나 코믹한 역할을 주로 맡아왔다. 그는 “새로운 역할을 맡기까지 17년 정도가 걸렸고, 기존의 이미지가 무너지는 데 2주가 걸렸다”며 “학범을 연기하면서 지레짐작으로 한계를 그어놓지 말자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봉태규는 그간 뜻하지 않은 이유로 4개의 영화가 엎어지면서 자연스레 일이 줄어들었다. 그런 봉태규를 대중에 앞에 다시 서게 만든 건 SBS 드라마국에 쌓여있던 프로필이다. “사실 얼굴이 알려진 배우가 프로필로 캐스팅되는 건 드물잖아요. 저도 종영 후 캐스팅 과정을 들었는데, 드라마국에 쌓인 프로필 서류 가장 꼭대기에 제 프로필이 되게 삐딱하게 있었대요. 그걸 우연히 본 감독님이 ‘봉태규가 있었지’라고 기억해낸 거죠. 우연이 겹쳐서 하게 된 거예요.”
●차기작은 ‘슈퍼맨이 돌아왔다’, 팟캐스트 ‘우리는 꽤나 진지합니다’
봉태규는 4월 아들 시하와 함께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할 예정이다. 김학범 이후의 다음 활동이 무엇이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우선은 ‘슈퍼맨’을 재밌게 할 거고, 제가 개인적으로 했던 팟캐스트를 다시 시작하고 싶어요. ‘우리는 꽤나 진지합니다’라는 제목인데, 드라마 하느라 잠시 접었어요. 팟캐스트를 하면서 배우로서 선택받는 입장에만 있다가 내가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 본다는 게 무척 즐거웠어요. ‘슈돌’과 팟캐스트 시즌2를 시작해서 자리 잡게 하는 게 다음 계획이에요. 또 좋은 작품이 있다면 망설이지 않고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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