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3월 김정일 국방위원장(가운데)이 초청한 연회에서 남편 신상옥 감독(오른쪽)과 상봉한 배우 최은희 씨. 동아일보DB
16일 향년 92세로 별세한 원로 배우 최은희 씨(본명 최경순)는 납북과 망명으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산 배우다.
1947년 ‘새로운 맹서’로 스크린에 데뷔한 고인은 김지미, 엄앵란과 함께 1950~1960년대 원조 트로이카로 떠올랐다. 1953년 다큐멘터리 영화 ‘코리아’에 출연하며 신상옥 감독(1926∼2006)과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가 1976년 이혼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78년, 고인은 안양영화예술학교 교류 사업차 방문한 홍콩에서 돌연 북한으로 납치됐다. 생전 고인의 인터뷰에 따르면, 평양 남포항에서 고인을 마중 나온 김정일이 최 씨에게 건넨 첫마디는 “최 선생. 내레 김정일입네다”였다. 김정일이 납치를 지시한 장본인임을 스스로 인정한 것.
고인은 생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납치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김 위원장이 저녁 식사에 초대했는데 내가 슬퍼하니까 ‘최 선생, 나 좀 보시오. 난쟁이 똥자루 같지 않습네까’라고 해 웃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납북 5년째인 1983년 김정일로부터 연회에 초대받은 고인은 그 자리에서 신 감독과 재회했다. 신 감독은 고인이 납북된 그해 7월 사라진 최은희를 찾으러 홍콩에 갔다가 북한으로 끌려갔다.
김정일은 두 사람을 만난 자리에서 “두 분이 꼭 필요하니까 데려와라, 그쪽 애들이 당신을 따로 가둬놓아서 죄수처럼 취급해 가지고 그래서 서로 오해도 생기고…”, “왜 우리(북한) 영화는 맨날 나오는 것이 반복하는 게 많고, 도대체 왜 장면 장면마다 자꾸 초상난 집처럼 우는 것만 찍게 만드나” 등의 발언을 했다. 납치가 본인의 지시임을 다시 한 번 인정한 것.
두 사람은 이후 김정일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돌아오지 않는 밀사’, ‘탈출기’, ‘사랑 사랑 내사랑’ 등 17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고인은 1985년 ‘소금’으로 모스크바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두 사람은 영화 ‘춘향전’에 쓸 부속품을 구하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갔다가 그곳 성당에서 다시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다.
이후 두 사람은 1986년 베를린영화제 참석 뒤 오스트리아 빈에서 미국 대사관에 진입해 극적으로 망명에 성공했다. 이후 미국에서 체류하다 1989년 귀국했다. 11년 만이었다.
고인은 2007년 출간한 자서전 ‘최은희의 고백’ 서문에서 “500년을 산 것처럼 길고 모진 시절이었다”고 회고했다. 또 “김정일은 나에게 온갖 배려와 친절을 베풀었지만 그에 대한 원망의 감정을 지울 수가 없었다”고 적었다.
이 부부의 납북 사건은 한때 ‘자진 월북설’까지 제기되며 논란이 많았지만, 영화와 연극에 관심이 많았던 김정일이 영화산업에 주력했으나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자 1978년 이들을 납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의 장남인 영화감독 신정균 씨(55)는 지난 2016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생전에 자주 ‘김정일은 영화 욕심이 정말 대단했다’고 하셨다. 북한에서 ‘탈출기’(1984년)를 찍을 때 김정일에게 ‘기차 충돌 장면이 필요한데 미니어처로는 실감이 안 난다’고 했더니 진짜 달리는 기차에 다이너마이트를 싣고 충돌하게 했다더라”고 전했다.
또 “아버지가 ‘소금’(1985년)을 찍다 바람 부는 장면이 필요하다고 하자 김정일이 그 자리에서 헬리콥터까지 동원할 정도로 김정일의 영화에 대한 집착이 남달랐다고 하더라”며 김정일의 영화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전했다.
신 감독 부부는 북한으로 납치된 후 영화를 찍는 과정에서 김정일과 만날 때마다 목숨을 걸고 몰래 일부 대화 내용을 녹음했고, 이는 지난 2016년 9월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연인과 독재자’(감독 로스 아담, 로버트 캐넌)에 고스란히 담겼다. 김정일의 육성이 담긴 부분은 전체 98분 러닝타임 중 4분 남짓으로 주로 김정일이 부부를 납북한 이유와 소회 등을 얘기한 것이다.
김정일은 지난 2011년 사망했다. 당시 최 씨는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저와 남편(고 신상옥 영화감독)을 납치했던 걸 떠올리면 분하지만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안 됐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며 “김정일 위원장이 잘 대해줬는데…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이어 “탈출 후 북에서 ‘다시 오지 않겠냐’고 제안했는데 거절했고 이후에는 북과 어떤 연락도 취한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천주교 신자인 최 씨는 “저세상에서 김 위원장이 남편(신상옥 감독)을 만나면 신 감독이 ‘잘못을 뉘우치고 함께 기도하자’고 할 것 같다”고도 했다.
한편 고인은 16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아들 신정균 감독은 “5년 전부터 신장 투석을 받아오시던 중 노환으로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장례는 고인의 생전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12호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9일 오전, 장지는 경기도 안성 천주교공원묘지로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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