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위원장 블란쳇 “성차별 함께 대응” 미투운동 촉발 두버네이 감독도 참석 70년간 황금종려상 여성감독 단 두 명 올핸 여성 심사위원 5명, 수상작 관심
여성연대의 힘이 칸 국제영화제에서 다시 한번 확인됐다. 지구상에서 분명 소수가 아닌데도 꼭 영화산업 안에서는 소수가 된다는 날선 비판과 함께 “성평등을 위해 앞으로 연대해 나가겠다”는 선언이 나왔다.
9일 개막한(이하 한국시간) 제71회 칸 국제영화제가 13일까지 첫 주말을 숨 가쁘게 달려왔다. 영화제 전반부 최대 하이라이트는 여성 영화인들의 연대와 도전을 향한 외침이다. 칸 역사에 기록될 명장면까지 연출됐다.
13일 오전 1시 영화제 주상영관인 뤼미에르 대극장 레드카펫에서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빅이벤트가 펼쳐졌다. 배우와 감독, 작가, 제작자, 편집자, 배급담당자 등 영화 산업에 있어서 분야를 망라한 여성영화인 82명이 동시에 레드카펫에 올랐고, 이들은 함께 도열해 여성연대를 선언했다. 지난해 할리우드에서 촉발된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전 세계로 확대되면서 여성연대에 힘이 실린 분위기가 이번 칸 국제영화제를 기점으로 새로운 시대를 향한 도전을 더욱 확고히 하겠다는 영화인들의 단단한 결의가 느껴진 명장면이었다.
82명의 여성영화인은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걸스 오브 더 선’의 공식상영 레드카펫을 ‘선언’의 무대로 활용했다. 여성감독인 에바 허슨이 연출한 이 영화는 쿠르드족 여성 부대원들의 이야기. 이에 맞춰 영화제 심사위원장인 배우 케이트 블란쳇과 크리스틴 스튜어트 등 82명은 레드카펫 위에 함께 올랐다. 미투 운동을 촉발시킨 할리우드 영화감독 에바 두버네이도 참석했다.
이들이 레드카펫을 꽉 채운 장면은 그 자체로도 장관이지만, 이들이 내놓은 성명은 더 큰 메시지로 다가왔다. 미리 준비한 A4 1장 분량의 성명서를 낭독한 케이트 블란쳇은 “영화 산업에서 여성은 여전히 소수의 위치”라며 “여성으로서 우리 모두는 도전에 직면해 있고, 그에 맞서 여성끼리 연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1946년 출범한 칸 국제영화제는 그간 여성감독 등 여성영화인을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남성 편향적이란 시선은 이제 ‘비판’의 대상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이번 성명 발표에서도 케이트 블란쳇은 오랜 칸의 역사를 통해 1688명의 남성감독이 뤼미에르 대극장을 올라갔지만 여성감독은 82명뿐이었다고 강조했다. 영화제가 지나온 70년간의 역사에서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여성감독은 1993년 영화 ‘피아노’의 제인 캠피온이 유일하다. 2년 전 명예황금종려상을 받은 벨기에 감독 아그네스 바르다 감독까지 더하면 두 명이다.
때문에 올해 경쟁부문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9명 가운데 심사위원장인 케이트 블란쳇을 포함해 5명이 여성영화인으로 채워진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여성연대의 외침까지 더해지자, 칸에서 만난 영화인들은 5명의 여성 심사위원들이 발휘할 섬세함이 올해 수상작(자)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