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영화·공연·유통 사업까지 한국 엔터업계의 대표적인 ‘중국통’ 내년엔 中 CCTV와 대형 프로젝트 비결? 시스템보다 신뢰 쌓기 노력
활발한 사회 참여…소신 말한 것뿐 정치권행? 양복 없어 못 가요 하하! 난 음악가, 언젠간 음악만 할 것
긴 머리 휘날리며 걸크러시 매력을 발산하는 ‘엽기적인 그녀’였지만 죽은 남자친구를 잊지 못하는 애잔함을 보여준 전지현 주연의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 ‘아이 빌리브’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한국은 물론 중국까지 강타한 ‘엽기적인 그녀’ 흥행에 중요한 역할을 한 작곡가 김형석.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그의 이름을 입력하면 ‘작곡가’뿐 아니라 ‘기업인’이란 소개가 나온다. 김광석 ‘사랑이라는 이유로’, 김건모 ‘아름다운 이별’, 박정현 ‘편지할게요’ 등 주옥같은 발라드 곡들을 빚어낸 작곡가로 그를 알고 있는 이들에게는 ‘기업인’이란 수식어가 낯설 수 있다. 현재 그는 코스피 상장사인 종합콘텐츠기업 키위미디어그룹의 회장, ‘기업인’이다.
김형석은 그냥 ‘기업인’이 아니라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기업가다. 한국과 중국을 오가고, 음악과 영화를 넘나들며, 팝아티스트와 유통까지 영역을 확장하는 개척자이다. 동시에 키위미디어그룹의 1대 주주인 키위컴퍼니 회장이고, 음악아카데미 케이노트 원장이다. 키위미디어그룹은 콘텐츠사업본부, 영화사업본부, 공연사업본부, 유통사업본부 등을 통해 다양한 사업을 영위한다. 아시아경제TV와 키위미디어그룹USA 등이 계열사다. 지난해 이효리가 4년 만에 가수로 컴백하면서 ‘이효리 소속사’로 관심을 모았고, 영화 ‘범죄도시’ ‘대장 김창수’ ‘기억의 밤’의 투자배급사로 업계의 주목을 끌었다. 올해는 ‘악인전’ ‘유체이탈자’ ‘바디스내치’ ‘헝그리’ 등 4편의 영화를 투자하고 배급할 예정이다.
김형석을 엔터기업의 리더로서 바라본다면 그에게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엔터업계의 대표적인 ‘중국통’이란 점이다. 김형석은 지난 몇 년간 ‘한한령’이라는 엄혹한 상황에서도 중국 엔터시장에서 ‘파워맨’의 영향력을 꾸준히 확장시켜나갔다. 2010년 ‘중국판 슈퍼스타K’로 불린 후난TV 오디션프로그램 ‘슈퍼보이스’, 2015년 한중합작 아이돌 발굴·육성프로젝트 ‘슈퍼아이돌’에 잇달아 총괄 프로듀서를 맡으면서 현지 음악업계 파워맨으로 주목받았다. 특히 ‘슈퍼아이돌’은 당시 동시간대 시청률 3위, 인터넷 홈페이지 누적 조회수는 1억3000만 회에 이르는 등 큰 인기를 모았다. ‘중국판 프로듀스 101’으로 알려진 아이치이 웹예능 ‘우상연습생’에서 우승하며 현지에서 특급인기를 누리는 차이쉬쿤은 김형석이 키워낸 인재다. 현재 김형석은 상하이와 베이징에 잇달아 음악아카데미 ‘케이노트’ 문을 열며 현지 가수 지망생들에게 체계화된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차이쉬쿤도 그 트레이닝 시스템 속에서 탄생했다.
꾸준히 중국과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중국 1위 부동산개발회사 뤼디(綠地)그룹과 파트너십을 맺은 김형석은 아카데미사업을 넘어 연말에는 콘텐츠 제작으로 중국 엔터테인먼트 시장에 진출할 예정이다. 최근 서울 성수동 그의 음악작업실에서 만난 김형석은 “중국은 사업 파트너와 신뢰관계(콴시)를 구축하는 데 4∼5년이 필요하다. 진짜 가족이라고 느끼면 모든 걸 믿고 맡긴다”고 현지 공략 이야기를 들려줬다.
-‘한한령 정국’에도 꾸준히 중국을 왕래한 것으로 안다.
“주춤한 모습 보여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사드 냉한기’에도 더 깊이 들어갔다. 문화는 개인의 파워가 중요한 분야다. 그래서 더 신뢰를 쌓도록 노력했다. 중국은 녹록한 시장이 아니다. 중국인들은 시스템보다는 내 옆에 둘 ‘신뢰 있는 사람’을 중요시한다.”
-한한령이 해제될 거란 기대가 높다.
“7월 무렵부터 교류의 폭이 확대될 것이라 전망한다. 중국은 56개 부족으로 이뤄진 다민족 국가다. 역사적으로 내전도 많았다.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 열려 있다.”
-중국의 불확실성을 우려하는 이들이 많다.
“중국시장에서 신뢰가 있는 사람, 영향력이 있는 사람과 현지에 법인을 내서, 직접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장치를 하고, 오랜 시간을 두고 신뢰를 갖추도록 노력하면 될 것이다.”
-중국진출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당부가 있다면.
“우리는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하다. 중국시장이 크다고 무턱대고 접근하지 말고, 그들과 마음과 신뢰를 쌓도록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
-앞으로 역할도 많아질 것 같다.
“중국과 한국이 같이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 내년 중국에서 많이 활동할 것 같은데 한국과 어떻게 연결시킬까, 상생할 수 있는 가교가 되고 싶다.”
-중국에서 우리 콘텐츠의 저작권이 보호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우리 정부가 지원하는 민간단체가 중국의 민간단체와 연합해 퍼블리시티권을 보호받도록 해야 한다. 중국도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다. 콘텐츠 발전 속도도 빠르다. 우리는 위기의식을 갖고 중국시장을 봐야 한다.”
김형석은 내년 해외 거장들과 함께 중국 CCTV의 대형 음악프로젝트에 참가한다. 중국 전통음악을 현대화하는 작업으로, 김형석은 중국 전통극단과 협업해 케이팝과의 융합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번 작업은 작가로서 폭이 넓어질 기회이기도 하고, 양국의 음악과 문화가 서로 융합하면 어떤 색깔이 나올까 호기심도 있다. 케이팝의 현지 진출만이 정답도 아니고 현지 음악과 융합만이 정답도 아니다. 이 기회를 잘 살려 우리 음악을 현지에 알리고, 현지 음악과 융합시키며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김형석은 지난해 12월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 당시, 중국의 중앙음악학원 원장인 위펑과 협업해 ‘한·중 수교 25주년 기념공연’을 지휘했다. 앞서 2015년에 이어 최근 또다시 ‘통일송’ 프로젝트를 맡았고, 제주 4.3추모식에서 유족 합창단과 공연을 함께했다. 평소 SNS를 통해 정치, 사회적 발언도 자주 해왔다. -정치·사회 참여가 활발한데.
“정치에는 관심이 없고, 옳고 그름의 문제에 대한 소신을 이야기했다. 불합리한 게 사실이었으니까.”
-정치권의 영입 제안이 많은 줄로 아는데.
“제안이 오지만, (그 제안을)안 받는다. 나는 음악인이다. 깜냥도 안 되지만 아침에 일어나기도 힘들고, 양복도 없고. 하하.”
김형석은 정치권의 러브콜에 분명하게 선을 긋기도 했지만, 현재 그는 하루를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 쓸 만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김형석은 현재 9월 데뷔를 목표로 하는 걸그룹 ‘키위걸스’(가칭) 론칭을 지휘하고 있다. 다양한 방송콘텐츠 제작도 준비중이다.
김형석은 팝아티스트와 실용음악과 출신 신인 작곡가들의 활동무대와 권리를 찾게 해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 ‘팝앤팝’이라는 팝 아티스트 에이전시를 운영하는 김형석은 “재작년부터 팝 아티스트들과 친분이 생겨, 음악과 결합하면 좋은 콘텐츠 나오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들의 권리가 잘 보호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고 에이전시를 설립하게 됐다”고 했다. 팝앤팝에는 현재 약 80명이 소속돼 있다.
아울러 대학에서 실용음악과 교수로 재직하며 졸업생들의 진로에 고민이 많았던 그는 신인 작곡가들의 곡을 대중에 소개하는 미디어 역할도 하고 있다. 전국 이마트 매장에 흘러나오는 음악을 제작하는 김형석은 이들로부터 곡을 받아 심사를 거쳐 매장에 들려주고 있다. 창작자는 이를 통해 수익을 얻을 수 있다.
-하는 일이 많고 다양한데 모두 잘 이끄는 게 신기할 정도다.
“일마다 다 좋은 파트너들이 있기에 가능하다. 나는 그저 큰 그림만 본다. 나만 잘 정리해서 가면 된다. 나의 영감을 잘 구현해주시기 위해 우리 구성원들이 발로 뛰고 있다. 그분들이 고맙다. 많은 일을 하지만, 사실 다 음악과 관련된 일이다.”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가 있나.
“지금 하는 일을 잘 해내는 것이 목표다. 그리고 65세쯤이 되어서는 음악만 하고 싶다. 나는 원래 비즈니스맨이 아니다.”
● 김형석
▲ 1966년 9월27일생 ▲ 한양대 작곡과 학사 ▲ 김광석 ‘너에게’를 시작으로 김혜림 ‘날 위한 이별’, 베이비복스 ‘킬러’, 엄정화 ‘하늘만 허락한 사랑’, 언니쓰 ‘맞지?’ 등 작곡 ▲ 1998년 대우그룹 투자받아 제작자로 첫발 ▲ 김원준 ‘쇼’ 음반 제작해 큰 성공, 이후 인순이 김현성 김조한 엑스틴 조앤 성시경 등의 음반 제작 ▲ KBS 가요대상 작곡상(1997), SBS 가요대전 작곡상(1998), 2012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국무총리 표창(2012) ▲ 2010년 배우 서진호와 결혼 ▲ KAC 한국예술원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