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피해 고발을 넘어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로 나아가는 영화 ‘허스토리’가 남다른 위엄을 갖추고 관객과의 만남을 준비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성노예 피해 여성, 그들이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도록 돕는 이들의 이야기가 과거를 딛고 평화의 시대로 나아가는 현재 한반도 상황과 어우러지면서 감성과 이성을 동시에 자극한다.
27일 개봉하는 ‘허스토리’(제작 수필름)는 위안부 피해 여성과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벌인 재판 실화를 담았다. 극의 화자이자 관객 마음을 대변하는 주인공 김희애를 중심으로 김해숙과 예수정 그리고 김선영과 이유영 등 주연부터 조연까지 출연진 대부분은 여배우다. 이들은 전쟁이 남긴 고통과 피해의 역사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최근 몇 년간 비슷한 소재 영화가 이어졌지만 ‘허스토리’의 울림은 그 파장이 깊다.
영화는 10명의 피해 여성이 1992년부터 1998년까지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를 오가면서 벌인 23번의 재판을 다룬다. 부산지역 여성 경제인들의 도움으로 용기를 낸 이들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내고 각자의 경험을 증언한다.
‘허스토리’는 전쟁에서 여성이 겪은 참혹한 피해를 고발하면서도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과거 상처에 괴로워하는 극중 김해숙이 “더는 전쟁이 일어나면 안 된다. 평화가 필요하다”고 절규하는 모습은 영화를 상징하는 장면이다.
무엇보다 ‘허스토리’는 최근 한반도 평화의 분위기와 어우러지면서 감동을 배로 높인다. 지난달 남북정상회담과 12일 북미정상회담으로 무르익는 평화의 분위기와도 절묘하게 맞물린다. 상처를 딛고 반전을 넘어 평화의 시대로 나아가자는 메시지가 영화와 현실을 넘나든다.
민규동 감독은 “영화를 만들어온 지난 20년간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것 같은 부채의식을 안고 왔다”며 “더는 미룰 수 없어 1940년대 배경의 시나리오 3편을 완성했고,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작은 승리의 역사인 관부재판을 먼저 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실화에 충실한 영화는 극적인 재미도 놓치지 않는다. 출연진 모두 빈틈없는 연기로 극의 완성도를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김희애의 활약은 압권이다. 성공한 사업가이자 넘치는 의욕과 카리스마를 지닌 김희애는 누구도 시키지 않은 재판을 6년간 이끌면서 극중 인물들은 물론 관객까지 사로잡는다.
“실존 이야기여서 꼭 하고 싶었다”는 김희애는 “누구의 엄마나 이모가 아닌, 자신의 인생을 찾으려 고군분투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감사한 마음으로 촬영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