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울 것 같던 태풍도 비껴갔다. 그런 뒤 평화의 기운이 다시 온 천지를 감싸며 휘영청 떠오른 보름달의 풍성함을 채울 모양이다. 차례상을 물리고 난 뒤 맞는 소박한 밥상 위에도 풍족한 마음만은 넉넉하다.
30대의 물오른 시절을 활기찬 연기활동으로 보내며 여전히 대중의 사랑을 받는 세 명의 남자도 흥미로운 이야기로 명절의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영화 ‘명당’의 조승우, ‘안시성’의 조인성 그리고 ‘협상’의 현빈이 그 주인공이다. 제각각 다른 색깔과 매력으로 19일부터 나란히 스크린에 나서고 있는 세 남자는 치열한 흥행 경쟁으로 관객 앞에 다채로운 영화 밥상을 차려낸다.
스포츠동아가 만난 이들 세 남자가 각기 설레는 표정과 말로써 초가을 명절의 풍성함을 더해준다.
배우 조인성(37)에게 고구려 장수 양만춘은 거대한 도전이나 다름없다. 역사에 기록된 실존인물을 연기하는 일은 배우에게 상당한 압박과 부담을 안기기 때문이다. 그래도 조인성은 억눌리지 않았다.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대로 충실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안시성’은 1400여년 전 고대 전투를 스크린에 옮긴다. 여러 한계를 딛고 오직 지략으로 당나라 대군에 맞서 승리를 거둔 안시성 양만춘의 승리 드라마다. 양만춘을 연기한 조인성은 “범상치 않은 인물로 만들고 싶어 고민했지만 결국 괴로움 없는, 자유로운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판단 아래 연기했다”고 밝혔다. 조인성은 ‘안시성’을 통해 배우로서 무게감을 더한다. 그동안 다양한 연기 실험을 해왔지만 앞선 활동과 비교해 단연 눈에 띄는 도전이다. 200억 원대 블록버스터란 사실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야망은 내려놓고 기본에 충실하는 데 집중했다”고도 했다.
지난해 설 연휴에 그는 영화 ‘더 킹’으로 주목받았다. 흥행에도 성공했다. 이후 여러 제안을 받았지만 모두 거절하고 ‘안시성’을 택했다. 올해는 추석에 관객 앞에 선다.
“고구려 역사에 관심이 갔다. 한국영화 사극이라고 하면 조선시대가 많지 않나. 그런 면에서 나조차 깜빡 잊고 있던 고구려의 역사를 다룬 점이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국사 시간에 배운 양만춘을 향한 개인적인 호기심이 컸고, 도전의식도 발동했다.”
‘안시성’에는 총 네 번의 대규모 전투가 등장한다. 기마민족의 후예 고구려 전투답게 기마전은 물론 현란한 공성전도 펼쳐진다. 조인성은 경남 함양과 강원도 고성의 7만평 부지에 마련된 세트에서 전투 장면을 소화했다. “모래바람을 일으키는 전투신을 찍을 땐 눈을 뜨기가 어려웠다”는 그는 “자주 안약을 넣다보니 영화에서 눈동자가 맑게 표현됐다”고도 했다.
조인성은 촬영장 밖에서도 리더 역할에 충실했다. 함께 출연한 배성우, 박병은, 엄태구, 남주혁 등 선후배 배우들을 아우르는 일도 그의 몫이었다. 평소에도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편안하게 일상생활을 보내는 친화력 덕분에 동료배우들과 더 끈끈한 신뢰를 나눌 수 있었다.
“영화에서도 안시성민과 성주 양만춘의 관계가 끈끈하다. 행복지수가 높은 곳이 아니었을까 상상한다. 권위와 권력은 언제든 내려놓을 수 있는 장군이고, 민중의 일에는 낮은 자세로 다가가는 성주이다. 권위를 빼자는 마음으로 임했다.”
■ ‘안시성’ (감독 김광식)
역사 기록이 턱없이 부족한 탓에 허구의 상상력에 기대 완성한 액션사극이다. 고구려 후기인 645년. 20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략해온 당나라 태종에 맞서 극적인 승리를 이끈 88일간의 안시성 전투를 그린다. 시작과 동시에 몰아치는 주필산 전투, 두 번의 공성전, 결말을 장식하는 토산 전투까지 탁월한 완성도를 자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