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나영이 6년 만에 영화로 관객 앞에 섰다. 여기저기서 공백이 꽤 길었다는 시선을 받지만 정작 그는 “하고 싶은 이야기로 관객과 만날 작품을 찾아왔다”고 말했다.
그런 심사숙고의 결과가 영화 ‘뷰티풀 데이즈’이다.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돼 4일 상영되면서 축제의 시작을 알린 작품이다. 영화는 탈북 여성이 중국을 거쳐 남한에 정착하기까지 겪은 20년의 시간을 담아낸다. 비극적인 상처를 겪으면서도 삶을 향해 단단한 의지를 다지는 여인과 그 가족의 이야기다. 이나영은 주인공 엄마 역을 통해 ‘가족’과 ‘이별’, ‘재회’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동료배우 원빈과의 결혼과 출산까지 최근 몇 년간 개인사로 더 주목받은 이나영은 이번 영화를 통해 자신의 이름을 관객에 확실히 재확인시킨다. 굳이 여러 말을 꺼내지 않고도 얼굴과 표정으로 감정을 관객에 전하는 모습에서는 이나영이 제2의 연기 인생을 시작했다는 사실이 짐작된다.
이날 영화제 개막식 직전 이뤄진 기자회견에서 이나영은 “어떤 계획이 있던 건 아니지만 본의 아니게 (복귀까지)시간이 길어졌다”며 “그러는 동안에도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시나리오를 찾아온 끝에 마음에 쏙 드는 ‘뷰티풀 데이즈’를 만났다”고 만족해했다.
연출을 맡은 윤재호 감독을 향한 단단한 신뢰도 드러냈다. 하지만 정작 감독과 제작진은 기존 상업영화와 비교해 턱없이 낮은 제작비로 영화를 완성해야 하는 상황 속에 반신반의하며 이나영에 시나리오를 건넸다고. 뜻밖에도 ‘하고 싶다’는 답변이 곧장 돌아왔다.
영화에서 이나영은 어린 나이에 탈북한 뒤 중국 조선족 남자에게 팔려가 아들을 낳고,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남한에 정착한 인물이다. 영화에선 이름도 없다. 그저 ‘엄마’ ‘너’라고 불릴 뿐이다. 그녀가 겪은 시간은 비극의 연속. 영화는 현재 시점에서 엄마의 모습을 보인 뒤 시계를 14년 전으로 돌리고, 또다시 그로부터 7년 전으로 돌아가 과거를 비춘다.
이나영은 “촬영은 감정 표출이 많은 과거 회상 장면부터 찍기 시작해 현재까지 오는 식으로 진행했다”며 “삶에 통달 아닌 통달을 하면서 담담하고 당당한 엄마가 됐다”고 자신의 역할을 이해했다. 그러면서 “엄마가 살아가기 위해 쌓은 당당함이 내 자신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듯, 관객에게도 전하고 싶다”는 바람도 드러냈다.
특히 이번 영화는 이나영이 실제 엄마가 되고 처음 참여하는 작품이다. 공교롭게도 영화에서도 아들을 둔 엄마의 상황이 쭉 펼쳐진다. 이나영은 “(엄마가 되니)예전엔 상상으로만 표현한 감정을 일부분 공감할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반겼다.
카메라는 중요 고비마다 말없이 밥상을 차리는 이나영의 얼굴을 몇 차례 비춘다. 그간 우리가 알던 그녀가 맞나 싶을 만큼 낯설지만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기도 하다. 윤재호 감독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까지 표정과 분위기로 관객에 전달하는 배우”라고 이나영을 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