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등을 통해 영화 살찌우기를 44년 나의 영화인생 ‘NG 투성이’ 신성일과 새 영화…아직 진행형
“내 영화인생은 NG 같다. 그런 인생에서 얻은 건 감사와 은혜다.”
영화감독 이장호(73)는 44년을 쏟은 자신의 영화인생을 “NG”라는 단어로 은유했다. 1974년 ‘별들의 고향’으로 데뷔해 ‘바람 불어 좋은 날’ 등 1980년대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시대와 세상을 스크린에 담은 감독이지만 “돌아보면 내 뜻대로 만든 작품이 의외로 없고, 결과 또한 뜻대로 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회고전의 주인공인 이장호 감독은 당대 흥행 연출자이자 1980년대 리얼리즘 영화의 선두주자로 인정받는다. 8편의 대표작을 영화제에서 공개하는 감독을 7일 부산에서 만났다. 영화와 함께 쌓은 드라마틱한 삶을, 부연 설명 없이 풀어냈다.
이장호 감독이 한창 활동하던 시기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 만연한 때이다. 촬영을 마친 영화가 사전심의를 통해 무참히 가위질 당하는 일도 빈번했다.
그 시대를 살아낸 감독은 “누구한테 쫓기다보면 필사적인 힘이 생기듯이 내게도 생각지 못한 능력이 만들어졌다”고 돌이키면서 영화 ‘바보 선언’에 얽힌 뒷이야기를 풀어냈다. 1983년 이보희가 주연한 이 영화는 혁신적인 영화기법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한국영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영화를 관두려고 절망하던 때였다. 작품을 망쳐놓고 스스로 도태되자, 그 뒤에 도망치자, 마음먹었다. 그래서 이전과 다른 반리얼리즘으로, 비정상적으로 영화를 비튼 게 ‘바보 선언’이다. 결과는 뜻밖으로 흘렀다. 영화 검열하는 이들이 내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다. 심지어 외국에 소개되는 영화로 뽑히기도 했으니까. 하하!”
그는 왜 영화계를 떠나려 했던 걸까. 역시, 엄혹한 시대의 여파 탓이다.
“전두환은 영화정책을 정말 웃기게 했다. 강제로 분기별로 한 편씩 만들어라, 그래야 외화 수입 쿼터를 주겠다고. 당시 한국영화는 잘 만드는 것보다 빨리 찍는 게 중요했다. 내가 하려던 ‘어둠의 자식들’ 후속편을 정부가 거부하고 노골적으로 반려했다. 정나미가 떨어졌다.”
감독이 지닌 긍정적인 성향은 시대를 뚫고 나온 힘이다. 그는 “속으론 다르게 생각해도 ‘당국의 검열이 내 영화를 잘 편집해준다’고 말하고 다녔다”며 웃음 지었다.
시대는 변했다. 지금은 창작의 자유가 보장되는 세상이다. 하지만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지금이 더 어려운 세상이다. 영화계 풍토가 돈이다. 기획이나 제작이 돈의 논리로 움직인다. 영화 연출가도 돈을 잘 쓸 줄 알아야 가능하다. 이런 말 하면 현실 적응 못하는 감독이라 할지 몰라도, 영화계 전체로 보면 어두운 시대다. 돈으로 움직이면 반드시 위기가 올 텐데. 영화의 미래는 독립영화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후배들과도 자주 교류하는 그는 “미래의 영화감독들에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며 “언젠가부터 후배들이 영상벌레가 돼 가는 것 같다”며 “영상을 넘어 음악과 미술, 문학을 통해 영화를 살찌게 해야 한다”고도 조언했다.
당부할 것도 많고 직언할 것도 많지만 그를 숨쉬게 하는 곳은 ‘현장’이다. 이장호 감독은 곧 새 영화 작업을 시작한다. 배우 신성일과 함께 세대의 이야기를 풀어낼 생각이다. 노장의 행보는 여전히 ‘미래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