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할수록 아픈데 김정현까지 하차 내색 안 했지만, 매일 몇 번씩 흔들려 모든 걸 쏟아부었으니 후회는 없어요 차기작? 잠시 쉬면서 생각해봐야죠
연기자 서현(27)은 하고자 마음먹으면 무슨 일이 생겨도 도중에 포기하거나 물러서지 않는 성격이다. 괴롭고 힘들어도 책임감 때문에 내려놓지 못해 모든 짐을 혼자 짊어지는 것처럼 비쳐질 정도다. 최근 종영한 MBC 드라마 ‘시간’이 서현에게는 끝이 보이지 않는 언덕 같았다. 자신을 컨트롤하는 것도 버거운데 외부 환경까지 그의 어깨를 무겁게 했다. 약 5개월의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가빴던 숨을 차분히 고르고 있다.
서현은 드라마에 몰입하기 위해 다른 활동을 병행하지 않았다. 앞선 드라마 출연 때에는 그룹 소녀시대 활동을 병행했던 탓에 온전히 드라마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갈증이 컸다. 이번에야말로 “모든 것을 걸고 하자”는 각오로 참여했고, 잠시 부모 곁을 떠나 반려견과 지냈다.
“집중력이 분산되는 것에 대한 큰 갈증을 느꼈다. 촬영 때 그 순간만 집중하는 것으로는 인물의 깊이를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을 저만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느껴 부모님께 허락받고 홀로 지냈다. 이렇게 해야만 캐릭터의 감정을 카메라 앞에서 제대로 드러낼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서현이 스스로를 이렇게까지 옭아맨 건 캐릭터 설정 때문이다. 하루아침에 엄마와 동생을 잃고, 믿었던 남자친구에게 배신을 당하고, 운명처럼 만난 사랑하는 사람은 시한부 인생이었다. 서현은 그 어떤 상상력을 발휘해도 캐릭터의 마음을 헤아리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머리로 분석하기보다 인물과 하나 되는 과정”에 충실하고자 노력했다.
그는 “캐릭터의 감정 폭이 넓어 슬픔의 깊이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어려웠다. 너무 몰입하다보니 한없이 우울해졌다. 드라마가 끝나고는 긴장이 풀려 아팠다”면서 “매 순간 허구의 상황을 진짜로 연기하고 싶었다. 성장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순간순간 제 연기에 아쉬움은 컸지만 돌이켜봤을 때 모든 것을 쏟았기에 후회는 남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주인공 김정현이 건강상의 이유로 하차하는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당연히 서현에게 모든 시선이 집중됐다. 서현은 “혼자 끌고 가야하는 부담감” 속에서 “실수하면 이 작품 자체가 망가지고 무너진다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었다.
“현장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내색하지 않고 있었지만 사실은 많이 두려웠다. 심리적, 체력적으로 힘든 상태에서 책임감까지 더해져 무조건 해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아프면 안 된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제가 약해지면 모두가 흔들릴 것 같아 중심을 잡는 데도 정신을 집중했다. 하루에도 몇번씩 정신과 치료를 받고 싶었다.”
서현의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법은 새벽에 드라이브하는 것이다. 운전 얘기에 얼굴을 활짝 편 그는 “운전한 지 3년 정도 됐는데 잘한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주차도, 끼어들기도 잘하고 잘 달린다”며 “영동대교를 노래 들으면서 달리고, 소리도 지르면서 달린다”며 깔깔 웃었다.
“10대 때에는 한 번 실수하면 많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실수를 용납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결과에 목숨을 걸다보니 다음 단계를 시도하는 데 주저하게 됐다. 이제야 느낀 것이지만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려고 한다. 그래야 제가 행복하더라.”
그는 이제 일상에서도 자신을 조금씩 놓아주고 있다. 과거의 서현은 “남들이 보지 않았으면 하는 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아” 자기만의 틀을 만들었다. 예전엔 ‘하면 안 되는 것들’이 더 많았다. 그렇다보니 어느 순간 강박관념을 갖게 됐다. 그래서 ‘안 되는 것’보다 ‘해보자’로 생각을 바꾸고 있다. 그중에 하나가 술이었다.
“최근 ‘시간’ 회식 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술을 많이 마셨다. 그런데 다시는 술을 마시고 싶지 않다. 조금씩 마시는 건 괜찮은데 ‘원샷’만 하면 얼굴부터 발끝까지 빨개지고, 술을 마시는 게 즐겁지도 않고 맛있지도 않다. 틀을 깨고 말고를 떠나 저와 술은 맞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서현은 갑작스러운 변신보다 점진적 변화로 대중에게 자신을 알리고 싶다고 했다. 연기하면서 자신도 몰랐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를 대중도 알아봐주길 바라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할 때마다 제 자아 속의 새로운 모습이 팍팍 튀어나온다. 하하! 지레짐작으로 ‘난 이런 사람이야’라고 했는데, ‘내가 이런 사람이었어?’라고 놀라는 일이 적지 않다. 그래서 연기가 너무 재밌다. 이번에 힘든 캐릭터 맡아 차기작은 시간을 두려고 한다. 젊음의 여유를 느끼면서 제 삶을 좀 되돌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