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침체된 한국영화가 새해 들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유해진과 윤계상이 합작한 ‘말모이’가 분위기 반전을 이끈다. 개봉 첫 날인 9일 12만2457명을 동원한 영화는 연말과 연초 외화와 애니메이션에 내준 박스오피스 정상을 탈환, 흥행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
‘말모이’(감독 엄유나·제작 더램프)가 개봉 초반부터 관객의 관심권에 진입한 데는 주인공인 ‘까막눈’ 판수 역을 맡은 유해진이 만들어내는 정감어린 이야기의 힘이 상당하다.
1940년대 일제의 탄압에 맞서 우리말을 지키려는 이들의 이야기인 영화에서 그는 홀로 어린 두 자녀를 키우는 아버지다.
아들 학비 마련을 위해 소매치기를 하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말 사전을 준비하는 조선어학회에서 일하게 되는 그는 희극과 비극이 교차하는 시대 상황 아래서 극을 풀어낸다. 한글을 모르는 그가 글자를 익히는 과정은 웃음을 만들고, 한글을 익힌 뒤 깨닫게 되는 시대의 아픔을 그리는 과정에서는 또 다른 의미에서 관객의 감성을 자극한다.
우리말 사전 편찬을 위해 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가 벌인 실화에 바탕을 둔 영화는 윤계상을 중심으로 주요 캐릭터가 대부분 실존인물들을 모델로 삼고 있다. 반면 유해진이 연기한 판수는 가상의 인물. 동시에 판수는 극의 화자 역할을 맡으면서 관객이 그대로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통로로도 활약한다.
이를 통해 유해진은 시대의 아픔 속에서 우리말을 지키려는 이들의 목숨을 건 도전은 물론 한글의 의미까지 되새기는 몫을 해낸다.
최근 ‘완벽한 타인’, ‘1987’ 등 영화에서 소시민적인 이야기에 참여해 대부분 흥행으로 이끈 유해진의 매력은 ‘말모이’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시대의 비극에서 한 발 비껴난 듯한 인물이 어떻게 세상에 눈 뜨게 되는지, 그런 자각을 통해 누구도 엄두내지 않은 용기를 내 책임을 다하는 과정을 특유의 소탈한 매력으로 완성한다.
‘말모이’의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맡은 엄유나 감독은 “주인공 판수 역을 구상하면서 유해진이 아닌 다른 배우는 떠오르지 않았다”고 했다. 앞서 엄유나 감독이 시나리오를 써 1000만 관객을 모은 ‘택시운전사’에서 유해진과 작업한 경험이 이번 ‘말모이’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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