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여왕’이었다. 1997년 영화 ‘접속’ 이후 ‘약속’ ‘너는 내 운명’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등으로 관객과 감성을 나눴다. ‘영화나라 흥행공주’라는 별칭으로도 대중적 상징이 됐다. ‘밀양’의 눈물은 2007년 칸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과, ‘칸의 여왕’이라는 수식어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자리를 안겼다. 창간 11주년을 맞은 스포츠동아가 1919년 ‘의리적 구토’ 이후 한국영화 100년을 되돌아보며 영화 전문가 100인에게 ‘최고의 여배우’를 꼽아 달라 했을 때 ‘전도연’(46)의 이름이 맨 앞에 나온 건 우연이 아니다.
-이제 어떻게 불리고 싶나.
“무언가로 불리길 원한 적이 없다. 하하! 나라고 왜 고민을 안 하겠나. 꼭 흥행해야 좋은 영화는 아니지만, 관객에게 사랑받는 작품을 하고 싶지 않겠어? 베일에 싸인 여배우도 아니고. 정말 내가 예전에 ‘영화나라 흥행공주’였다면 그때와 지금, 시나리오를 선택하는 방식이 달라졌을까, 고민한다.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젠 ‘진짜’에 집착하게 된다는 거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제작이나 연출을 해보라는 권유도 있었다. 감독 계약을 하자는 제작자까지. 정말 심각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 결국 연기였다.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그래서 아직도 미련하게 연기하고 있다.”
-‘진짜’에 집착하게 된 건 무엇 때문일까.
“‘밀양’이 시작이었다. 그런 생각이 어쩌면 병이 된다 싶기도 하다. 얼마 전 CF를 찍는데 뭔가 오글거리더라. 내 얼굴 같지 않았다. 예쁜 표정이…, 아! 정말 낯설었다. 그렇다고 시키면 못하느냐! 잘 한다!”
-나이 들어가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은 안 해봤는데…, 영향이 없지 않을 것 같긴 하다.”
-50세가 되어간다는 생각은 어떤가.
“왜 안 하겠어?! 대체 언제 적 전도연이냐. 3년 전부터 체력도 떨어지더라. 그렇게 적응하며 살아야겠지. 여배우로서 위치가 모호한 나이일 것 같다. 공백이 아까워 작품을 좀 많이 하고 싶다. 언젠가는 날 찾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 하지만 그것도 결국 내 자신의 문제일 거다.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마음을 비우느냐….” -언젠가는, 나이 70쯤에는 ‘날’ 찾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은 안 해봤다. 결국 내 자신의 문제일 거다.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마음을 비우느냐…. 그때도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 것 같다.”
-아직은 마음을 안 비웠다는 뜻인가.
“어떻게 비울 수 있나. 사람인데….하하!”
전도연은 15일 여느 때처럼 오전 5시30분에 일어나 아이의 식사와 등굣길을 챙긴 뒤 서울 강남구 논현동 인터뷰 장소에 화장기 없는 얼굴로 나타났다. 그를 만나러 가는 택시 안 라디오에서는 영화 ‘너는 내 운명’ 속 황정민과 함께 부른 주제가가 흘러 나왔다. DJ는 ‘밀양’에 관한 이야기도 전했다. 전도연에게 “이번 만남은 운명인가보다”며 인사를 건넸다. 예의 코웃음으로 화답한 그가 어쩌면 마뜩지 않아 할 질문을 던지기 위한 ‘분위기 조성 차원’이었다.
-고3 때 청소년잡지 모델에서 CF를 거쳐 연기자가 됐다.
“어린 나이였다. 또래에 비해 돈도 많이 벌고 TV로 알려졌다. 연기가 재미있다는 생각을 못했다. 어렸을 때부터 현모양처를 꿈꿨다. 결혼하면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하면서 바뀌었다. 작품적으로 생각 하고, 캐릭터적으로 고민하고. 그저 주어진 대사나 외우는 게 아니었다. 재미있었다.”
-그 시작점은.
“‘해피엔드’. 사실 ‘접속’은 재미보다 너무 힘이 들었다. 뭔가를 하고는 있지만 내 힘듦이나 노동만큼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이전에 방송을 얼마나 했든, 영화로는 신인이었고 데뷔작이었기 때문에 그런 걸 인정받기는 힘든 상황이었던 것 같다.”
-이제 현장에서 허툰 상황을 그냥 넘기지 못할 만큼 치열해졌다.
“현장에서 열심히, 정말 치열하게 소통하려 한다. 어떤 감정으로, 어떻게 찍을 것이고, 어떤 이야기로 어떤 영화를 만들 거라는 얘기를 사전 충분히 나누고 현장에 간다. 그게 안 될 경우 감독이 (나를)납득시키든, (내가)감독을 설득하든 소통은 직접적이어야 한다. 현장에서 나 혼자 잘 한다고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독들이 ‘무서운 배우’라고 하나보다.
“항상 말한다. 준비하고 나오면 안 무섭다고(웃음). 감독이 배우를, 배우가 감독이 무서워 할 일이 뭐가 있나. 각자 열심히 하면 되는데.”
-‘밀양’의 이창동 감독에게도 그랬나.
“데뷔 이후 처음으로 기성의 감독, 내게는 스타감독의 작품인데, 정말 기대를 많이 했다. 그땐 무언가를 100% 알고 해야 하는데 모든 정답은 감독이 쥐고 있다고 생각했다. 와! 이 감독이라면 더욱 더…. 하지만 그는 ‘그냥 느끼는 대로 하라’고만 했다. 대체 뭘? 어떻게? 명확한 설명을 주지 않았다. 턱없이 부족한데. 한 장면을 끝내면 ‘OK’ 소리도 못 들은 채 ‘다음 장면으로’라는 말이 이어지고. 너무 힘들고, 너무 고통스럽고, 너무 원망스러웠다. 이럴 거면 왜 날 캐스팅했느냐 원망하고 화내고…. 촬영 아닐 땐 피해 다녔다. 하하하!”
-어떤 이들은 당신이 ‘직관의 배우, 그래서 타고 난 배우’라고 말한다.
“음…, 음…. 직관이라면 직관이다. 작품과 캐릭터 분석 방식 등 연기를 배운 적이 없다. 시나리오를 읽고 그때그때 느낀 것들에 집중했다. 그러면서 발전하지 않나. 예전엔 모든 걸 알고 연기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게 아니라는 걸 ‘밀양’ 때 알았다. 그 혹독한 시간을 통해…(웃음). 인물을 몸으로 느끼고 부딪쳐야 하는 것 같다.”
그렇게도 고통스러움을 겪은 뒤 한국 ‘여배우’ 최초로 칸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그의 수상은 깊은 의미를 안기지만, ‘여배우’라는 표현에 반감을 지닌 이들 역시 많은 것도 사실이다.
“여배우를 여배우라 하지, 뭐라 하나. 성차별에 관한 문제라면 조심스럽기도 하다. 굳이 나눠 부르려 한다면 난 ‘여배우’이고, 그런 게 필요 없다면 ‘배우’이다.”
-여배우 이전의 자연인으로서 사랑을, 대중은 호기심을 더해 ‘스캔들’로 바라보곤 한다.
“선택의 문제다. 사랑을 할 때 감정에 집중할 뿐이다. 내 느낌을 대중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상관없이 말이다. 그런 시선이 부담스러워 조심스레 감정을 추스른다고 해도 선택인 거다.”
-여전히 사랑 이야기에 마음이 가나.
“좋다, 사랑 이야기. 하지만 이젠 다른 식의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다. 뭐가 올지 모르지만.”
-예능프로그램은 어떤가.
“주변에선 말린다(웃음). 너무 잘할 거 같은데. ‘삼시세끼’ 같은 프로그램이 좋다. 요리, 청소, 빨래, 설거지, 집안일을 좋아한다. 남편은 늙어 고생하니 혹사시키지 말라 한다. 그러면 나는 돌봐 달라 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말라고 얘기한다. 하하!”
-‘밀양’ 직후 결혼했다. ‘현모양처’를 바랐다는데, 결혼은 이른 편이 아니었다.
“남편은 ‘밀양’이 없었다면 우린 이뤄지지 않았을 거라 말한다(웃음). 이 남자 아니면 죽을 것 같아야 하는 게 결혼이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현모양처라는 건 함께 만들어 가야 하는 것 같다. 서로 맞춰가며 잘 사는 것, 그렇게 살고 있다. 행복? 잘 모르겠지만 이 정도면 만족한다. 매일 행복할 수 있나.”
“엄마가 정서적으로 필요한 시기”인 초등학생 아이를 키우는 엄마, 전도연에게 조심스레 세월호에 관한, 세월호로 아이를 떠나보낸 부모의 이야기에 관한 주연 영화 ‘생일’에 대해 물었다. 4월3일 선보이는 영화에 대해 아니 세월호에 대해 그는 짧지 않은 시간 깊은 생각을 밝혔다. “바람 많이 불던 어느 날 팽목항을 찾았다”는 그는 “잊히고 잊혀지는 것”의 어렴풋한 아픔을 떠올렸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야기다. 기억하자.”
<설문>
1. 한국영화 100년, 최고의 작품은?(2편씩 선정) 2. 한국영화 100년, 최고의 감독은?(이하 1인씩 선정) 3. 한국영화 100년, 최고의 남자배우는? 4. 한국영화 100년, 최고의 여배우는?
설문 기간 : 2018년 12월20일~2019년 2월8일 참여자 및 인원 : 감독·제작자(프로듀서 포함)·홍보마케터·평론가 등 영화 전문가 100명 (아래 명단 참조) 대상 작품 : 1919년 10월27일부터 2018년 12월20일까지 개봉 한국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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